바이든 '지상전' 놓고 연일 혼선…"하마스 협상력 키워줄 우려"

강태화 2023. 10. 22.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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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8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을 전격 방문했지만, 가자지구 진격을 위한 지상군 투입을 둘러싼 혼선이 가중되고 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이 지상군 투입 시점에 대해 이스라엘은 물론 백악관의 입장과도 다르게 해석될 소지의 언급을 반복하면서 대통령 스스로 혼란을 자초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델라웨어주 세인트 에드먼드 성당 미사에 참석한 뒤 기자들을 만나 질문에 답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백악관 출입 기자단 취재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델라웨어주 세인트 에드먼드 성당 미사에 참석한 뒤 ‘이스라엘 침공 연기를 권장(encourage)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자 “나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고 답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날 답변은 전날 백악관이 번복했던 자신의 발언을 스스로 재차 번복하며 백악관의 공식 입장을 또 다시 뒤집은 의미로 해석될 소지가 있어 주목받고 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0일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합동기지에서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에 탑승하면서 기자들로부터 ‘더 많은 인질이 구출될 때까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 연기를 원하느냐’는 질문을 받자 “그렇다(yes)”고 답했다.

지난 21일(현시지간)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접경에 이스라엘군 장갑차가 배치되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러자 백악관은 지상군 투입을 서두르고 있는 이스라엘의 계획에 바이든 대통령이 제동을 걸겠다는 취지로 해석되는 해당 발언을 즉각 번복했다.

벤 러볼트 공보국장은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 직후 “대통령이 (에어포스원에 오르기 위해 기자단과)멀리 있었다”며 “바이든 대통령은 해당 질문을 ‘더 많은 인질이 구출되기를 원하느냐’로 이해하고 답변한 것”이라고 강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질문을 잘못 알아듣고 긍정의 의미(yes)로 잘못 답했다는 해명이다.

대통령이 의사소통 상의 ‘실수’를 했다고 인정하면서까지 백악관이 발언을 번복한 배경을 두고 전문가 사이에선 “지상군 투입과 인질 문제가 연계될 경우 대(對)하마스 협상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20일(현기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에어포스원 탑승에 앞서 '인질 구출 때까지 지상군 투입이 연기되기를 바라느냐'는 질문에 "그렇다(YES)"고 답했다. 이에 대해 백악관은 즉각 "바이든 대통령이 '인질이 더 많이 구출되기를 바라느냐'는 질문으로 잘못 이해해 나간 답변"이라고 해명했다. AFP=연합뉴스

실제 바이든 대통령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만나 지상군 투입 전에 인질 석방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을 가능성이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네타냐후 총리와의 회담 직후 “미국은 이스라엘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히면서도 “인질 구출은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했다. 인질이 억류된 상태에서 진행되는 지상군 투입 작전에 찬성할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와 관련 블룸버그통신은 “하마스가 인질 일부를 석방할 용의가 있고, 군사 작전을 늦추는 데 반대했던 이스라엘이 미국의 압력을 받고 지상전 계획을 수정하는 데 동의했다”고 보도했다. CNN도 익명의 나토(NATOㆍ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 국방부 장관의 발언을 인용해 “우리가 조언하는 것은 (지상군 투입을) ‘하지 말라(Don’t do it)’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이스라엘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생각하고 전략을 세우라’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백악관이 긴급하게 대통령의 발언을 수습한 직후 바이든 대통령이 재차 백악관의 입장을 뒤집는 듯한 발언을 내놓으면서 바이든 대통령이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될 가능성이 생겼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스라엘과 인질 관련 논의를 한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관련 내용을 추측할 단서를 공개하는 것은 군사 작전을 펼치는 데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8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을 전격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류성엽 21세기군사연구소 전문연구위원은 22일 통화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입장에서 하마스에 인질로 잡힌 자국민의 피해를 감수한 지상군 투입에 동의하는 것은 정치적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며 “그러나 백악관이 대통령 발언까지 번복한 정치적 리스크를 감수한 수습책을 내놨는데, 바이든이 이를 재차 번복하며 사실상의 ‘작전 계획’을 노출한 것은 적군에게 협상 카드와 약점을 미리 공개하는 실책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헤즈볼라는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 논란 속에 오히려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헤즈볼라는 레바논에 근거지를 둔 무장 정파로, 미국이 확전 가능성을 이유로 가장 큰 경계심을 보이는 대상이다. AP통신에 따르면 헤즈볼라의 2인자로 꼽히는 셰이크 나임 카셈은 이날 헤즈볼라 대원 장례식에 참석한 자리에 “헤즈볼라는 이미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투의 중심(heart)에 있다”며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을 진압한다면 역내 다른 저항군들이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했다.

지난 21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불길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대한 지상군 투입을 강조하고 있지만, 미국 내에선 지상군 투입 시점과 관련한 혼선이 지속되고 있다. 연합뉴스

하마스는 아예 바이든 대통령이 사실상의 약점으로 공식화한 인질을 둘러싼 심리전을 가속화하며 이스라엘과 미국을 압박하는 동시에 둘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하마스의 군사조직 알카삼 여단의 대변인 아부 오바이다는 “인도주의적 이유로 인질 2명을 더 풀어주려 했지만, 이스라엘이 거부했다”며 인질을 둘러싼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펼쳤다.

이에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거짓 선전”이라며 부인했다. 나아가 미국의 지상전 투입에 대한 신중한 접근 요구 속에서도 “다음 단계의 전쟁에서 우리 군의 대한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공습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AFP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이날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 이슬람 사원을 공습하는 등 지상군 투입을 위한 사전 작전에 돌입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런 혼선 속에 백악관이 인질 구출을 위해 파견한 특수부대원의 신원을 노출했다는 사실까지 확인되며 논란은 증폭됐다.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의 이스라엘 방문 과정에서 미 육군 특수부대 델타포스 대원들을 만난 사진을 백악관 SNS 계정에 공개하면서 대원들의 얼굴을 모두 노출시켰다. 협상을 진행해야 할 대원들의 신원이 노출될 경우 인질 구출 작전이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백악관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 방문 기간 미 육군의 특수부대 '델타포스' 부대원들을 만난 사진을 공개하며 특수대원들의 얼굴 등 신원을 노출시켰다. 백악관은 수십만명이 해당 사진을 접한 뒤에야 사진을 삭제하고 관련 사실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샘 슈메이트 X @samosaur

백악관은 해당 사진이 수십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한 뒤에야 “우리의 실수와 이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모든 문제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1시간여만에 사진을 삭제했다. 정보 분석가엔 샘 슈메이트는 자신의 X(옛 트위터)에 “바이든 정부의 엄청난 실패”라고 비판했고, 공화당 소속 다이애나 하쉬버거 의원도 이를 재인용해 “심각한 무능”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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