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만에 사라진 '꿈의 무대'... 온스테이지의 슬픈 퇴장
[이현파 기자]
▲ 네이버 온스테이지 |
ⓒ 네이버 문화재단 |
"온스테이지가 2023년 11월 16일, 마지막 숨은 음악을 소개하고
2010년부터 13년간 쉼 없이 돌아가던 카메라를 멈춥니다."
오는 11월, 네이버 온스테이지가 13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온스테이지와 함께 진행되었던 지역 프로그램인 '온스테이지 로컬' 역시 함께 서비스를 종료한다. 네이버 온스테이지는 네이버 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인디 뮤지션 창작 지원 사업으로서, 2010년 11월부터 시작된 라이브 영상 콘텐츠다.
'숨은 음악, 세상과 만나다'라는 슬로건에 걸맞게, 온스테이지에서는 대중에게 생소한 인디 뮤지션이 자주 출연한다. 록, 힙합, 재즈, 일렉트로니카, 포크, 국악 등 수많은 장르의 뮤지션에게 문을 열어 놓았다. 인디 뮤지션 뿐 아니라 인지도가 높은 스타 역시 이 무대에 선다. 네이버 온스테이지에 출연하는 아티스트는 기획위원들의 토론을 거쳐 선정되었다. 평론가와 기자, 음악 산업 종사자들이 모여 어떤 아티스트를 큐레이션하고, 무대에 세울 것인지를 의논했다.
아티스트들이 우수한 음향, 영상 환경에서 자신의 매력을 뽐낼 수 있다는 것이 온스테이지의 매력이다. 미니멀한 배경, 그리고 사각형 박스 안에서 노래하고 연주하는 아티스트들의 모습은 온스테이지의 상징이 되었다. 최근 한국 인디신에서 어떤 음악이 떠오르는가 궁금할 때, 혹은 플레이리스트에 새로운 음악을 추가하고 싶을때마다 온스테이지를 찾곤 했다. 때로는 관심이 가기 시작한 아티스트에 대한 확신을 굳히는 무대이기도 했다.
▲ [온스테이지2.0] 김뜻돌 - 삐뽀삐뽀 ⓒ 온스테이지ONSTAGE |
온스테이지는 지금까지 650여 팀의 아티스트를 초대하면서 여러 인상적인 순간을 창출했다. 조회수 1812만 회를 기록한 이날치와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범 내려온다'는 단연 온스테이지 최고의 히트작이다. 생동감 있는 카메라워킹과 함께 두 팀의 개성을 놓치지 않고 담아냈다. 2020년의 김뜻돌은 용접용 안경을 쓰고, 안전모를 쓴 밴드 멤버들과 함께 온스테이지 무대에 올랐다. 대표곡 '삐뽀삐뽀'에 담긴, 일상화된 죽음에 대한 사유가 극대화되었다.
긴 세월이 흐르면서 아티스트의 변화한 모습을 비교한 재미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2012년 스냅백을 쓴 채 'AQUA MAN'을 부르는 빈지노가 그 시절 청춘의 표상이었다면, 2023년 'Monet'을 부르는 빈지노의 모습에선 베테랑 아티스트의 원숙함이 묻어난다.
실리카겔, 잔나비 등 현재 한국 대중음악을 호령하고 있는 밴드들의 풋풋한 모습 역시 모두 온스테이지에 기록되어 있다. 최백호, 박성연 등 전설적인 뮤지션 역시 이 무대를 통해 젊은 음악팬을 만났다. '난 뚱뚱해'를 부르며 기타를 연주하는 블루스 아티스트 최항석의 익살스러움도 빼놓을 수 없다.
때로는 아티스트의 음악에 맞춰 독특한 장소에서 공연이 펼쳐지기도 했다. 숲속에서 사이키델릭한 조명과 함께 '긴 꿈'과 '파도'를 연주하던 새소년의 모습이 좋은 예다. 건물 옥상 위에서 담담하게 기타를 치며 노래하던 도마의 '이유도 없이 나는 섬으로 가네' 영상은 보컬 김도마의 요절 이후 그를 그리워하는 팬들의 추모 공간이 되었다.
▲ 네이버 온스테이지 무대에 오른 한로로 |
ⓒ 네이버 바이브 |
네이버 온스테이지의 운영 주체인 네이버문화재단은 "네이버 온스테이지가 시작한 이후 13년 동안 다양한 라이브 영상 플랫폼이 생겼고 누구나 쉽게 영상 콘텐츠를 제작해 음악팬들과 직접 만날 수 있게 되었다"며, 온스테이지는 맡은 소임을 다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일각에서 수익성 문제로 폐지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되자, 네이버문화재단 측에서는 이번 서비스 종료가 수익성과는 관련이 없다며 일축하기도 했다.
시대의 변화, 플랫폼의 다변화와 함께 온스테이지의 소임은 끝났는가? 온스테이지가 등장한 2010년이나, 2023년이나 여전히 미디어는 다양한 음악을 소개하는 데에 큰 관심이 없다. KBS2 심야 음악 프로그램과 < EBS 스페이스 공감 >을 제외하면, 인디 밴드가 자신의 개성을 뽐낼 수 없는 프로그램이 없다. <슈퍼밴드> <싱 어게인> 등 젊은 뮤지션들이 경쟁하는 프로그램은 있지만, 그중 대부분은 타 뮤지션의 음악을 커버하는 경연의 형식에 그치고 있다.
유튜브의 경우 최근 선을 보인 NPR 타이니 데스크의 한국 버전이 있고, 케이팝 뮤지션들이 우수한 밴드 라이브를 선보이는 '잇츠 라이브' 등의 무대가 있다. 그러나 그중 온스테이지만큼 다양한 음악을 포괄할 수 있는 무대, 돈이 되지 않는 음악을 소개할 수 있는 무대는 없어 보인다.
작별을 알리는 온스테이지의 공식 인스타그램에는 키라라, 하헌진, 박문치, 쿤디판다, 숨비, 스월비, 레이브릭스, 두억시니 등 이 무대를 거친 아티스트들이 일제히 감사를 표했다. '꿈이 사라졌다'며 아쉬움을 표하는 아티스트와 팬도 더러 있었다. 누군가의 로망이었던 무대가 사라진다. 그렇다면 그 다음 로망은 어떤 무대가 담당하게 될까. 온스테이지는 퇴장과 동시에 묵직한 숙제를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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