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게 해줘" "벗을래"…프랑스·이란 정반대 히잡 전쟁, 무슨 일 [글로벌 리포트]

이유정 2023. 10. 2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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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개최된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 추모 시위에서 한 여성이 얼굴에 페인팅을 하고 있다. 아미니는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란의 '종교 경찰'에게 붙잡혀 갔다가 사망했다. AP=연합뉴스

최근 이스라엘 전쟁으로 전세계에서 ‘이스라엘 대 팔레스타인’ 맞불 시위가 격렬하게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프랑스에선 해묵고도 민감한 히잡 전쟁이 또다시 점화하고 있다. 이슬람 여성들의 머릿수건인 히잡을 놓고 지난달 말 아멜리 우데아 카스테라 체육부 장관이 “내년도 하계 파리 올림픽에 출전하는 프랑스 선수에겐 스포츠용 히잡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다. 지난 16일(현지시간)엔 발레리 페크레스 일드프랑스 지역의회장이 “축구 등 일부 종목이 아니라 모든 스포츠에 적용할 수 있도록 아예 법으로 못 박아달라”는 서한을 카스테라 장관에게 보냈다는 현지 보도가 나왔다.

최근 몇 년간 프랑스 이슬람 여성 축구선수 모임인 ‘히자베우스’는 “경기 중 히잡을 써선 안 된다”는 프랑스축구협회를 상대로 법정 투쟁을 벌여왔다. 프랑스 최고 행정법원 콩세유데타는 지난 6월 “히잡을 벗으라는 조치는 부당하지 않다”며 축협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프랑스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국가 대표 히잡 금지’까지 전선을 확대했다. 비슷한 시기 9월 개학 철엔 프랑스 교육 당국이 학교에서 이슬람 전통 복식 ‘아바야’ 퇴출 정책을 펴면서 이슬람 이민자들의 관련 시위·소송도 이어지고 있다.


이란 여성들 “과거로 돌아갈 순 없어”


지난해 9월 독일 베를린에서 벌어진 이란의 히잡 반대 시위. 로이터=연합뉴스
이처럼 머리·신체에 감는 이슬람 여성의 베일(통칭 히잡)을 둘러싼 세계 각국의 갑론을박은 현재진행형이다. 프랑스에서 이슬람 여성들이 ‘히잡을 쓸 권리’를 놓고 시위를 벌이는 동안, 다른 쪽에선 정반대 싸움이 전개되고 있다. 이란의 여성들은 ‘히잡을 벗을 권리’를 주장하면서 생계와 일상, 때로 목숨을 건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작년 9월 이란의 도덕 경찰에 붙잡혀 목숨을 잃은 이란 여학생 마흐사 아미니(당시 22세) 사건으로 이란에선 대대적인 히잡 반대 시위가 일어났다. 정부는 이를 반정부 선동으로 몰며 무자비하게 진압했고, 작년 12월까지 미성년자를 포함해 최소 수백명이 시위 중 사망했다. 급기야 이란 의회는 지난달 “부적절한 신체 노출을 한 여성”을 최대 징역 10년형, 벌금 8500달러에 처하는 ‘히잡과 순결법’을 강행 처리했다. 이를 놓고 유엔은 “성별에 따른 아파르트헤이트(차별 정책)”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젊은 여대생들은 단속을 피해 히잡을 벗고 야간에 정부 비판 낙서를 공공장소에 하는 ‘지하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25세의 한 여학생은 온라인 매체 더뉴 아랍에 “정부의 법이 아무리 가혹해도 여기서 되돌아갈 수는 없다”면서 “작년 시위는 많은 여성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전환점이 됐다”고 했다. 이 같은 이란 여성들의 투쟁을 반영하듯 올해 노벨평화상은 이란의 여성 인권 운동가 나르게스 모하마디(51)에게 돌아갔다.


佛선 “히잡 금지, 이슬람 여성 억압” 비판


프랑스 현지 매체 르파리지앵은 지난해 이슬람 여성 축구인 모임인 '히자베우스'가 축구협회 등을 상대로 ″히잡을 쓰고 뛰게 해달라″며 벌이는 투쟁을 조명했다. 사진 르파리지앵 홈페이지 캡처
히잡을 둘러싼 이란의 여성 인권 탄압 문제는 서방 진영에 널리 알려졌지만, “히잡을 허용해달라”는 유럽 내 시위는 상대적으로 덜 조명을 받아왔다. 수십 년을 끌어온 논쟁이기도 하거니와, 유럽 내 반이민·반이슬람 정서가 고조되면서 각국에서 히잡 금지 정책이 점차 힘을 받는 추세여서다.

유럽에선 2000년 이후 프랑스·오스트리아·벨기에·덴마크·불가리아가 얼굴의 전면을 가리는 부르카·니캅 착용 금지를 속속 도입했다. 네덜란드·독일은 공무원 같은 직업이나 장소에 따라 머리카락·목을 가리는 히잡을 쓸 수 없도록 했다. 가장 최근엔 스위스 의회가 지난달 20일 얼굴 전면 베일을 금지하는 연방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를 위반할 경우 1000프랑(한화 150만원)의 벌금을 물리도록 했다.

이 가운데 프랑스에서 유독 갈등이 두드러지는 이유는 이슬람 이민자의 비중(전체 인구의 약 9%)이 유럽에서 가장 높은 탓도 있다. 프랑스 내 약 500만 명이 거주 중이다. 프랑스는 ‘라이시테(laïcité·세속주의)’라는 종교 중립 원칙에 따라 지난 머리카락만 가리는 형태의 히잡도 ‘종교 상징물’로 학교·관공서에선 쓸 수 없게 했다.

영국 BBC가 정리한 이슬람의 여성용 스카프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얼굴·몸 전체를 가리는 부르카, 눈만 내놓는 니캅, 머리카락과 목을 가리는 히잡, 얼굴만 내놓고 몸을 감싸는 차도르, 머리에 감는 스카프 형식의 샤일라, 두 개의 천으로 된 알아미라, 망토처럼 머리카락과 목, 어깨를 감싸는 키마르. 사진 BBC 홈페이지 캡처

이 같은 유럽 내 히잡 금지 정책은 이슬람 혐오 정서에 뿌리를 둔 것일 수 있다고 인권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인권 변호사 모임인 오픈소사이어티는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최근 유럽 각국에서 배타적 민족주의 성향의 극우 정당들이 히잡 착용 금지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 스위스의 부르카 금지법은 이민 반대를 앞세우는 우익 정당 스위스 인민당이 법 통과를 주도했다. 오스트리아에선 2019년 극우 성향인 자유당 주도로 ‘10세 미만 히잡 금지법’을 통과시켰다가 위헌 결정이 난 적이 있다. 독일 공영 도이체벨레(DW)는 “프랑스에서 가장 엄격한 형태의 베일인 부르카·니캅을 쓰는 여성은 이민자 500만명 가운데 2000명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고작 한 줌의 이민자를 겨냥해 국가 차원의 규제를 둔 건 과도하다는 비판이다.


“‘히잡 써라, 마라’ 강제 안 돼” 지적도


작년 9월 캐나다 오타와에서 히잡을 부적절하게 착용한 혐의로 경찰 구금 중에 사망한 22세의 마사 아미니를 추모하는 연대 시위가 벌어졌다. AP=연합뉴스
히잡을 쓰든 벗든, 이를 법으로 정해 처벌하도록 한 게 문제라고 유엔과 인권단체들은 지적한다. 마르타 우르타도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대변인은 프랑스의 스포츠 히잡 금지 정책을 겨냥해 “인권을 존중하는 국가에서는 누구도 여성에게 무엇을 입어야 할지, 입지 말아야 할지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란 출신의 인권 운동가 사예 스카이도 DW에 “히잡을 억압의 상징으로 여기는 여성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정체성으로 생각하는 여성도 있다”면서 “정부는 이 같은 당사자들의 복잡성을 이해하고 히잡에 관한 논의를 안전하게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옥 기자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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