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게 해줘" "벗을래"…프랑스·이란 정반대 히잡 전쟁, 무슨 일 [글로벌 리포트]
최근 이스라엘 전쟁으로 전세계에서 ‘이스라엘 대 팔레스타인’ 맞불 시위가 격렬하게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프랑스에선 해묵고도 민감한 히잡 전쟁이 또다시 점화하고 있다. 이슬람 여성들의 머릿수건인 히잡을 놓고 지난달 말 아멜리 우데아 카스테라 체육부 장관이 “내년도 하계 파리 올림픽에 출전하는 프랑스 선수에겐 스포츠용 히잡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다. 지난 16일(현지시간)엔 발레리 페크레스 일드프랑스 지역의회장이 “축구 등 일부 종목이 아니라 모든 스포츠에 적용할 수 있도록 아예 법으로 못 박아달라”는 서한을 카스테라 장관에게 보냈다는 현지 보도가 나왔다.
최근 몇 년간 프랑스 이슬람 여성 축구선수 모임인 ‘히자베우스’는 “경기 중 히잡을 써선 안 된다”는 프랑스축구협회를 상대로 법정 투쟁을 벌여왔다. 프랑스 최고 행정법원 콩세유데타는 지난 6월 “히잡을 벗으라는 조치는 부당하지 않다”며 축협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프랑스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국가 대표 히잡 금지’까지 전선을 확대했다. 비슷한 시기 9월 개학 철엔 프랑스 교육 당국이 학교에서 이슬람 전통 복식 ‘아바야’ 퇴출 정책을 펴면서 이슬람 이민자들의 관련 시위·소송도 이어지고 있다.
이란 여성들 “과거로 돌아갈 순 없어”
작년 9월 이란의 도덕 경찰에 붙잡혀 목숨을 잃은 이란 여학생 마흐사 아미니(당시 22세) 사건으로 이란에선 대대적인 히잡 반대 시위가 일어났다. 정부는 이를 반정부 선동으로 몰며 무자비하게 진압했고, 작년 12월까지 미성년자를 포함해 최소 수백명이 시위 중 사망했다. 급기야 이란 의회는 지난달 “부적절한 신체 노출을 한 여성”을 최대 징역 10년형, 벌금 8500달러에 처하는 ‘히잡과 순결법’을 강행 처리했다. 이를 놓고 유엔은 “성별에 따른 아파르트헤이트(차별 정책)”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젊은 여대생들은 단속을 피해 히잡을 벗고 야간에 정부 비판 낙서를 공공장소에 하는 ‘지하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25세의 한 여학생은 온라인 매체 더뉴 아랍에 “정부의 법이 아무리 가혹해도 여기서 되돌아갈 수는 없다”면서 “작년 시위는 많은 여성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전환점이 됐다”고 했다. 이 같은 이란 여성들의 투쟁을 반영하듯 올해 노벨평화상은 이란의 여성 인권 운동가 나르게스 모하마디(51)에게 돌아갔다.
佛선 “히잡 금지, 이슬람 여성 억압” 비판
유럽에선 2000년 이후 프랑스·오스트리아·벨기에·덴마크·불가리아가 얼굴의 전면을 가리는 부르카·니캅 착용 금지를 속속 도입했다. 네덜란드·독일은 공무원 같은 직업이나 장소에 따라 머리카락·목을 가리는 히잡을 쓸 수 없도록 했다. 가장 최근엔 스위스 의회가 지난달 20일 얼굴 전면 베일을 금지하는 연방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를 위반할 경우 1000프랑(한화 150만원)의 벌금을 물리도록 했다.
이 가운데 프랑스에서 유독 갈등이 두드러지는 이유는 이슬람 이민자의 비중(전체 인구의 약 9%)이 유럽에서 가장 높은 탓도 있다. 프랑스 내 약 500만 명이 거주 중이다. 프랑스는 ‘라이시테(laïcité·세속주의)’라는 종교 중립 원칙에 따라 지난 머리카락만 가리는 형태의 히잡도 ‘종교 상징물’로 학교·관공서에선 쓸 수 없게 했다.
이 같은 유럽 내 히잡 금지 정책은 이슬람 혐오 정서에 뿌리를 둔 것일 수 있다고 인권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인권 변호사 모임인 오픈소사이어티는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최근 유럽 각국에서 배타적 민족주의 성향의 극우 정당들이 히잡 착용 금지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 스위스의 부르카 금지법은 이민 반대를 앞세우는 우익 정당 스위스 인민당이 법 통과를 주도했다. 오스트리아에선 2019년 극우 성향인 자유당 주도로 ‘10세 미만 히잡 금지법’을 통과시켰다가 위헌 결정이 난 적이 있다. 독일 공영 도이체벨레(DW)는 “프랑스에서 가장 엄격한 형태의 베일인 부르카·니캅을 쓰는 여성은 이민자 500만명 가운데 2000명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고작 한 줌의 이민자를 겨냥해 국가 차원의 규제를 둔 건 과도하다는 비판이다.
“‘히잡 써라, 마라’ 강제 안 돼” 지적도
이란 출신의 인권 운동가 사예 스카이도 DW에 “히잡을 억압의 상징으로 여기는 여성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정체성으로 생각하는 여성도 있다”면서 “정부는 이 같은 당사자들의 복잡성을 이해하고 히잡에 관한 논의를 안전하게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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