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보다 무서운 연기 막는다…베테랑 소방관이 만든 '생존 커튼'

최모란 2023. 10. 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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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소방재난본부 수원소방서가 만든 휴대용 연기차단 커튼을 소방관들이 시연하고 있다. 고층건물 화재 진압 시 유독가스가 건물 내부로 확산되는 것을 막는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

3월 6일 오후 8시52분쯤 수원 팔달구의 한 아파트 1층에서 불이 났다. 불은 30분 만에 꺼졌지만 10층에 살던 60대 남성 A씨가 15층 계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1층 화재 현장의 현관문 등을 통해 나온 유독가스가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오면서 옥상으로 대피하던 A씨를 덮친 것이다.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김준학(59·소방경) 수원소방서 현장지휘단 3팀장은 사고 수습이 끝난 뒤에도 현장을 쉽사리 떠나지 못했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다.

“100만 인구 도시인 수원은 아파트 등 고층 건물이 많은 편이에요. 이런 고층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상층부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옥상으로 대피합니다. 문제는 유독가스에요. 위로 올라오는 유독가스를 막지 못하면 A씨 같은 인명 사고가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어요. 빠른 화재 진압 못지않게 유독가스 확산을 막을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유독 가스로 인한 사고에 연기차단 커튼 개발


김 팀장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휴대용 연기차단 커튼 개발에 나섰다. 연기차단 커튼은 화재 시 출입문에 부착해 유독가스 등 연기가 건물 내부로 확산하는 것을 막는 장치다. 해외에서 생산된 연기차단 커튼이 있긴 하지만 사용이 까다로워 국내에선 교육·훈련용으로만 사용하고 있다. 최영재(52·소방령) 단장, 이용만(50) 소방위와 의기투합한 김 팀장은 설치가 쉬운 연기차단 커튼을 만드는데 초점을 맞췄다.
화재 진압 시 유독가스가 건물 내부로 확산하는 것을 차단하는 휴대용 연기차단 커튼을 개발한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수원소방서 김준학(소방경) 현장지휘단 3팀장. 수원소방서
아이디어는 현관문에 붙이는 자석식 모기장에서 얻었다. 문에 붙였다 떼면 되기 때문에 쉽게 설치할 수 있어서다.

문제는 가벼우면서도 연기 차단력이 좋고, 불이 쉽게 붙지 않는 난연(難燃) 소재의 천이었다. 김 팀장 등은 쉬는 날마다 전국을 돌며 성능이 좋은 천을 찾았다. 직접 실험을 통해 천의 성능도 꼼꼼하게 확인했다. 연기차단 스크린을 거는 ‘ㄷ’자형 틀도 자석 개수를 하나씩 늘리는 방식으로 직접 제작에 참여했다.

첫 시제품은 6월에 나왔다. 수원소방서 직원들 앞에서 처음 선보였는데 당시는 좋은 평가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 안전을 위해 두꺼운 천을 이용하고 출입문에 단단히 고정하기 위해 철로 된 ‘ㄷ’자형 틀을 사용했더니 “너무 무거워 휴대가 쉽지 않다”는 평이 많았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수원소방서가 만든 휴대용 연기차단 커튼을 소방관들이 시연하고 있다. 고층건물 화재 진압 시 유독가스가 건물 내부로 확산되는 것을 막는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

개발 착수 5개월 만에 지금의 모습으로…연기 차단 80~95%
세 소방관은 다시 머리를 맞대고 철보다 가벼운 알루미늄으로 틀을 바꾸고 가벼운 난연 스크린 천을 이용하는 등 대대적인 보수에 착수했다. 8월 말 완성형 연기 차탄 커튼이 탄생했다. 3.8㎏ 무게로 가볍고, 자석으로 문틀에 부착하는 간단한 방식으로 소방대원 혼자서도 충분히 설치할 수 있다. 자체 테스트에서는 유독가스 차단율도 80~95% 정도로 합격점을 받았다. 동료들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김 팀장은 “화재 진압을 하는 동시에 연기차단 커튼을 설치하면 외부로 빠져나가는 유독가스를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수원소방서가 만든 휴대용 연기차단 커튼을 소방관들이 시연하고 있다. 고층건물 화재 진압 시 유독가스가 건물 내부로 확산되는 것을 막는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

경기도소방재난본부는 연기차단 커튼이 현장에서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지 점검·보완하고 있다. 수원소방서도 연기차단 커튼에 대한 특허 출원을 진행한 뒤 전국 소방관서에 보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1990년 10월 임용된 김 팀장은 경력 33년의 베테랑 소방관. 내년 정년을 앞두고 있다. 도움을 준 최 단장과 이 소방위의 소방 경력도 18~20년이다. 김 팀장은 “유독가스로 인한 피해는 시민은 물론 소방관 동료들도 자주 겪는 일”이라며 “열심히 만들었으니, 시민들은 물론, 동료들의 안전에도 도움이 되길 빈다”고 말했다.

최모란 기자 choi.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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