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다이어리]뉴요커의 악몽이 된 ‘묻지마 밀치기’

뉴욕=조슬기나 2023. 10. 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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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미국 일상 속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뉴욕 지하철, 타고 다니기엔 안전해?" 미국 뉴욕 여행을 계획 중인 지인들에게 필수적으로 받곤 하는 질문이다. 그럴 때면 웃으면서 답한다. "괜찮아. 나도 매일 타고 다녀."

그리고 덧붙인다. 너무 늦은 시간은 피할 것, 관광지가 아닌 외곽 지역은 조심할 것, 가급적 플랫폼 벽 쪽에서 대기하고 위험인물은 경계할 것. 뉴욕 지하철에서 범죄 피해자가 될 확률이 높지는 않다지만, 사건·사고가 언제 어디서 닥칠지 모르니 말이다.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뉴욕 지하철을 운영하는 뉴욕광역교통국(MTA)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당시와 비교해 "뉴욕 지하철이 엄청난 진전을 이뤘다"고 자평한다. 사무실로 복귀하는 직장인들이 늘어나고 관광객들이 돌아오면서 일단 승객 수부터 예년 수준을 회복했다. 열차 운행 횟수가 늘어난 건 말할 것도 없다. 여기에 당국이 특히 강조하는 것은 ‘훨씬 안전해졌다’는 점이다.

자노 리버 MTA 의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뉴욕경찰(NYPD)과 함께 지하철 안전대책을 시행하면서 훨씬 안전해졌다"면서 "지하철 범죄는 팬데믹 이전보다도 9% 감소했다"고 강조했다. 대대적인 예산을 투입해 역마다 NYPD를 배치하고, 곳곳에 1만1000개 이상의 카메라를 설치하고, 지하철 플랫폼에서 살다시피 하는 노숙자와 정신질환자들을 지원 시설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한 결과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팬데믹 직후였던 작년 초까지만 해도 지하철을 탈 때마다 후추스프레이와 호신벨을 챙기는 등 지금보다 더 많이 경계하곤 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리버 CEO의 이러한 발언이 나온 자리는 지난주 뉴욕 지하철에서 또다시 ‘묻지마 밀치기 사건’이 발생한 직후 기자회견장이었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맨해튼 5번가-53번가 역에서 한 정신질환 노숙자가 출근하던 30대 여성을 철로로 밀어버린 사건이다. 이 여성은 즉각 병원으로 실려 가 수술을 받았으나, 여전히 위독한 상태다.

다음날 뉴저지주 뉴어크에서 체포된 사비르 존스는 NYPD 사이에서도 이미 유명한 노숙자로 정신질환 이력이 있다. 지난 20년간 마약, 총기, 폭행, 성범죄 등으로 감옥을 들락날락했고, 최근 들어서는 맨해튼 미드타운 일대 지하철역에서 주로 거주했다고 한다. 리버 CEO는 최근 지하철 범죄가 줄어들었다는 사실은 희생자의 가족에겐 전혀 위로되지 않는다면서 뉴욕시가 정신질환 위기를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뉴욕 지하철에서 이러한 묻지마 밀치기 사건이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NYPD에 따르면 집계된 신고 기준으로만 올 들어 벌써 15건이다. 작년 이맘때는 22건이었다. 지난 5월에는 63번가 지하철역에서 한 30대 여성이 묻지마 밀치기를 당해 신체 일부가 마비되는 중상을 입었다. 지난달에는 불과 일주일 간격으로 맨해튼 어퍼이스트와 브루클린에서 각각 묻지마 밀치기 사건이 발생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올해 지하철 범죄는 지난해보다 소폭 줄었고, 지하철에서 범죄 피해자가 될 확률도 낮다. 하지만 플랫폼에서 밀릴 수 있다는 것은 이 도시의 악몽"이라고 보도했다.

이번 사건에 대한 뉴스를 보고 다수의 뉴요커들은 작년 1월을 떠올리는 듯하다. 당시 타임스스퀘어역 플랫폼에서 정신이상 노숙자에게 떠밀려 사망한 아시아계 여성의 뉴스는 현지인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수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미드타운 중심가인데다, 묻지마 범죄가 누군가의 죽음으로 이어졌고, 해당 노숙자가 이미 NYPD와 승객들 사이에서 악명높은 존재였던 탓이다. 이후 뉴욕에서는 오래된 지하철에 스크린도어를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했고, 당국은 3개 역에서 테스트에 나서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었다.

지난주 사건 직후 지하철을 타고 해당 플랫폼을 지나간 찰리 씨는 "플랫폼에 피가 남아있었다"면서 "정신이상자들이 더이상 공공장소인 지하철역을 떠돌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매일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제니스 씨는 "자주 발생하는 일이 아니라고 해도 그런 뉴스를 볼 때마다 경각심이 든다"면서 "그럼에도 미국에서 가장 안전한 대중교통 시스템을 갖춘 곳이 바로 이곳 뉴욕이라는 점이 씁쓸하다"고 전했다.

뉴요커들은 24시간 운영되는 지하철을 ‘뉴욕의 혈관’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누군가가 저지르는 이유 없는 공격이 지하철을 생명선으로 삼고 있는 이 도시를 조금 더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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