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다이어리] 왕이 부장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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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핑룸 뒷자리의 외신기자가 지친 표정으로 동료에게 농담을 건넸다.
언제 시작할지 모르는 브리핑을 기다리고 있자니 정말 그런 생각이 들었다.
행사장에 선착순으로 입장하는 관례를 감안해 6시 10분부터 브리핑룸 앞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행사는 브리핑룸 문이 열린(7시 30분) 뒤에도 시작할 기미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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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깜짝쇼야(Is this a surprise show)?"
브리핑룸 뒷자리의 외신기자가 지친 표정으로 동료에게 농담을 건넸다. 언제 시작할지 모르는 브리핑을 기다리고 있자니 정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혹시 어떤 의미와 의도가 있는 연출인 것인가, 혹시 무언가 잘못돼 가고 있는 것인가.
지난 17~18일 중국 베이징 국제회의센터에서 개최된 '제3회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 관련 왕이 중국 외교부장(장관)의 기자간담회는 마지막 날 오후 예정돼있었다. 취재 당일에도 집합 시간(6시 30분) 외 진행 일정은 공지되지 않았다. 일부 기자들이 위챗(중국 메신저) 그룹 채팅방을 통해 브리핑 시작과 종료 시각을 문의했지만, 관계자 누구도 답하지 않았다.
애초에 정확한 시간을 예견하긴 불가능했다. 이날 오전 10시 개막식 이후 시 주석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 윌리엄 루토 케냐 대통령, 카심 셰티마 나이지리아 부통령,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줄줄이 회담했다. 왕 부장은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정상회담마다 배석하는 핵심 인사다.
때문에 주변 기자들은 7시를 전후해 간담회가 열릴 것으로 짐작했다. 행사장에 선착순으로 입장하는 관례를 감안해 6시 10분부터 브리핑룸 앞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가까이 앉아 왕 부장의 표정과 목소리를 살피고, 사진도 찍는 게 취재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사는 브리핑룸 문이 열린(7시 30분) 뒤에도 시작할 기미가 없었다. 행사 관계자들은 시작 시각을 묻는 말에 '곧(快要)', '서두르지 말아라(別着急)'라고 반복할 뿐이었고, 현지 취재단 조차 "베이징이 이렇게 차가 막히느냐"며 웅성댔다. 왕 부장이 등장한 것은 또다시 1시간 20분이 지나서였다. '깜짝쇼'를 의심하는 한탄은 이쯤에서 터져 나왔다. 8시 50분, 브리핑은 화춘잉 외교부 대변인의 변("앞서 열린 회담과 회의가 길어졌다")과 사과의 말로 시작됐다.
여느 정상회담이 그렇듯, 정상 간 대화는 시간을 이유로 끊을 수 없다. 국제회의나 포럼에서 기자간담회가 늦어지는 일은 빈번하다. 하지만 진행 수순을 고려한 합리적 예측과 상황 설명, 그리고 유연한 대처는 주최국의 의무이자 역량의 가늠자이기도 하다.
애석한 일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국제회의센터의 주변에 10m마다 서 있던 요원은 단풍 사진을 찍으려 휴대폰만 들어도 빨리 지나가라며 채근했고, 차량은 전면 통제돼 도로가 한산했으며, 행사건물이 모두 임시 펜스로 둘러싸인 탓에 한참을 돌고 돌아 입구를 찾아야 했다. 행사장 내에선 방금까지 허용됐던 에스컬레이터 탑승이 기자라는 이유로 통제됐고, 요원들은 대체로 미디어 센터 입구를 포함한 길을 알지 못했다. 이들이 누구를 위해 배치됐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왕 부장은 브리핑을 통해 이번 포럼에 151개 국가와 41개 국제기구 대표가 참석했고, 등록자 수는 1만명을 초과했으며, 458개의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며 생각했다. 주최국 및 고위급 인사의 편의와 성과에만 초점을 맞춘 행사 흐름과 경직된 분위기로는 일대일로 포럼이 의미 있는 국제행사 반열에 오르기 힘들 것이라고.
베이징=김현정 특파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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