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kg의 행복” 42년 연탄배달 외길 변근호 씨 부부
곽경근 2023. 10. 22. 06:02
- 연탄 판매로 자수성가
- 겨울 다가와도 연탄 공장 ‘한산’
설악산에 눈이 내리는 등 갑자기 기온이 내려간 21일 아침 경기도 남한산성면 남한산성 아래 한 카페 옆 마당에 아내와 함께 구슬땀을 흘리며 연탄 1600장을 쌓고 있던 변근호(68) 사장은 말했다.
나이가 들면서 직업병으로 찾아온 무릎과 어깨, 허리 통증은 있지만 그래도 변 사장은 아내 김선자(65)와 아직 일을 놓을 생각은 없다. 연탄이 주 가정연료로 사용했던 7~80년대 번성기에 비해 지금은 20%로 이하로 물량이 줄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저소득층, 카페, 농장 하우스 등 연탄을 필요로 하는 곳은 많다. “군대 제대하고 26살 되었을 때 고향인 여주를 떠나 서울에 와서 연탄 배달 차 조수로 시작해 운전도 배우고 경험이 쌓이면서 본격적으로 연탄장사를 시작했어요”
이후 사업이 자리를 잡으면서 32살에 고향 후배인 지금의 아내를 만나 함께 연탄도매업을 평생 함께 하고 있다. 변 씨는 “아내에게 제일 미안합니다. 곱고 얌전한 아내에게 젊어서부터 거친 일을 지금까지 시키고 있는게 도리는 아니다”면서 “그래도 아직까지 불평 한마디 안하고 두 아들까지 잘 키워준 아내는 천사 같은 사람”이라며 겸연쩍게 웃는다.
아내 김 씨 역시 “남편은 워낙 성실한 사람이다. 고향에서 무일푼으로 올라와 그래도 살만한 집도 마련했다. 열심히 한 눈 안 팔고 일해서 자식들 다 대학공부 시키고 결혼해서 집 마련할 때도 보태줬다”면서 “이제는 두 사람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 변 씨의 두 아들 역시 자신들을 위해 헌신하는 부모를 위해 시간을 내서 연탄배달 일을 열심히 도왔다.
변 씨 부부는 초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연탄 배달이 꾸준히 있지만 나머지 계절에서 건설현장에서 일을 한다고 했다. 변 씨는 건강이 허락하는 노후 대책과 함께 주말이면 자신의 집을 방문하는 손자, 손녀들의 용돈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일할 생각이다.
전날 오후 수도권의 한 연탄공장에서 배달용 트럭에 연탄을 가득 실어놓고 이날 새벽부터 배달에 나섰다. 연탄 한 장의 무게는 평균 3,6kg이다. 연탄은 집게를 이용해 한 손에 4개씩 총 8개, 28,8kg의 무게를 감당해가며 쉴 새 없이 차에서 옮겨 카페 마당 한켠에 가지런히 쌓았다. 변 씨 부부는 40년 넘게 함께 손발을 맞춰온 덕에 동이 틀 무렵 어느 새 1600장의 연탄을 모두 하차했다. 변 사장은 혹 연탄 불이 꺼지는 것에 대비해 번개탄도 10여장 서비스로 제공했다.
“오늘 같은 곳만 있으면 연탄배달도 할만하지요, 물론 산동네처럼 계단도 많고 배달이 어려운 지역은 배달료를 더 받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솔직히 힘이 부친다”고 말했다. 연탄이 모두 안정적으로 쌓은 것을 확인한 변 씨 부부는 물 한 모금 마실 새도 없이 다음 배달을 위해 서둘러 현장을 떠났다.
- 연탄이야기
연탄은 처음 일제강점기 시기에 전파되었지만 당대에는 산업용으로 쓰던 수준이었다. 연탄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1950년대이다. 연탄보일러 개발과 함께 농촌 지역에 폭넓게 보급되면서 1970년대 연탄 사용은 절정에 달한다. 석탄 비축과 연탄의 안정적인 공급이 정부의 중요한 겨울철 에너지 정책이었다.
1980년대 초만 하더라도 찬바람이 불기시작하면 부엌 한켠이나 창고에 겨우내 쓸 수백 장의 연탄과 김장으로 월동 준비를 하는 것이 상례였다. 겨우내 쓸 연탄을 구입하기 어려운 가난한 집에서는 연탄 가게에서 새끼줄에 2장씩 연탄을 꿰어 양 손을 들고 집으로 향하던 풍경도 쉽게 볼 수 있었다.
타고 남은 연탄은 집 마당에 쌓아 놓았다가 겨울철에는 빙판길에 깨뜨려 제설용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1980년 중반, 기름과 가스 보일러가 본격 보급되기 전까지는 겨울철 연탄 가스 중독으로 인한 사망 사고도 자주 뉴스에 등장했다.
이후 석유 보일러가 등장하고 도시가스가 공급되면서 연탄의 사용량은 현저하게 줄었다. 특히 생활수준의 향상과 제6공화국 이후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에 따른 폐광의 급증으로 공급과 수요가 모두 급락했다. 전국에 산재해 있던 연탄공장들은 오늘도 하나 둘 폐업 수순을 밟거나 정부 지원금 등으로 간신히 운영을 유지하고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10가구가 넘는 저소득층, 노인가구 등 소외계층에게 연탄은 아직도 겨울의 필수 난방 연료이다.
공장 위치를 쓰지 않는 조건에서 촬영허가를 받은 수도권의 한 연탄공장 역시 24시간 풀가동하던 예전의 분주함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고 성수기에 들어선 요즘도 오후 2시면 물량이 없어 연탄을 옮기는 컨베이어 벨트가 멈춰선다.
- 겨울 다가와도 연탄 공장 ‘한산’
- '19개' 구멍 뚫린 모습에 ‘구공탄’ 애칭
- 창고 가득 쌓아두면 겨우내 '든든'
- ‘취약계층은 아직도 월동 필수품…도움 손길
설악산에 눈이 내리는 등 갑자기 기온이 내려간 21일 아침 경기도 남한산성면 남한산성 아래 한 카페 옆 마당에 아내와 함께 구슬땀을 흘리며 연탄 1600장을 쌓고 있던 변근호(68) 사장은 말했다.
나이가 들면서 직업병으로 찾아온 무릎과 어깨, 허리 통증은 있지만 그래도 변 사장은 아내 김선자(65)와 아직 일을 놓을 생각은 없다. 연탄이 주 가정연료로 사용했던 7~80년대 번성기에 비해 지금은 20%로 이하로 물량이 줄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저소득층, 카페, 농장 하우스 등 연탄을 필요로 하는 곳은 많다. “군대 제대하고 26살 되었을 때 고향인 여주를 떠나 서울에 와서 연탄 배달 차 조수로 시작해 운전도 배우고 경험이 쌓이면서 본격적으로 연탄장사를 시작했어요”
이후 사업이 자리를 잡으면서 32살에 고향 후배인 지금의 아내를 만나 함께 연탄도매업을 평생 함께 하고 있다. 변 씨는 “아내에게 제일 미안합니다. 곱고 얌전한 아내에게 젊어서부터 거친 일을 지금까지 시키고 있는게 도리는 아니다”면서 “그래도 아직까지 불평 한마디 안하고 두 아들까지 잘 키워준 아내는 천사 같은 사람”이라며 겸연쩍게 웃는다.
아내 김 씨 역시 “남편은 워낙 성실한 사람이다. 고향에서 무일푼으로 올라와 그래도 살만한 집도 마련했다. 열심히 한 눈 안 팔고 일해서 자식들 다 대학공부 시키고 결혼해서 집 마련할 때도 보태줬다”면서 “이제는 두 사람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 변 씨의 두 아들 역시 자신들을 위해 헌신하는 부모를 위해 시간을 내서 연탄배달 일을 열심히 도왔다.
변 씨 부부는 초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연탄 배달이 꾸준히 있지만 나머지 계절에서 건설현장에서 일을 한다고 했다. 변 씨는 건강이 허락하는 노후 대책과 함께 주말이면 자신의 집을 방문하는 손자, 손녀들의 용돈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일할 생각이다.
전날 오후 수도권의 한 연탄공장에서 배달용 트럭에 연탄을 가득 실어놓고 이날 새벽부터 배달에 나섰다. 연탄 한 장의 무게는 평균 3,6kg이다. 연탄은 집게를 이용해 한 손에 4개씩 총 8개, 28,8kg의 무게를 감당해가며 쉴 새 없이 차에서 옮겨 카페 마당 한켠에 가지런히 쌓았다. 변 씨 부부는 40년 넘게 함께 손발을 맞춰온 덕에 동이 틀 무렵 어느 새 1600장의 연탄을 모두 하차했다. 변 사장은 혹 연탄 불이 꺼지는 것에 대비해 번개탄도 10여장 서비스로 제공했다.
“오늘 같은 곳만 있으면 연탄배달도 할만하지요, 물론 산동네처럼 계단도 많고 배달이 어려운 지역은 배달료를 더 받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솔직히 힘이 부친다”고 말했다. 연탄이 모두 안정적으로 쌓은 것을 확인한 변 씨 부부는 물 한 모금 마실 새도 없이 다음 배달을 위해 서둘러 현장을 떠났다.
- 연탄이야기
연탄은 처음 일제강점기 시기에 전파되었지만 당대에는 산업용으로 쓰던 수준이었다. 연탄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1950년대이다. 연탄보일러 개발과 함께 농촌 지역에 폭넓게 보급되면서 1970년대 연탄 사용은 절정에 달한다. 석탄 비축과 연탄의 안정적인 공급이 정부의 중요한 겨울철 에너지 정책이었다.
연탄은 크기에 따라 1~5호로 구분하는데 가정용으로는 2호(지름 150㎜, 높이 142㎜)가 가장 많이 사용된다. 현재 국내에서 사용되는 연탄은 한 장의 무게가 3.6㎏ 정도다. 연탄 한 장은 지름 15㎝, 높이 14.2㎝ 정도이다. 1961년 정부에서 연탄 규격을 처음으로 정하면서 ‘연탄’이라는 명칭으로 정착됐다. 당시 가정용 연탄의 주종은 22공탄이었다. 1965년부터 생산한 22공탄은 6·25 직후 보급된 19공탄과 구분 없이 ‘구공탄’으로 불렸다.
1980년대 초만 하더라도 찬바람이 불기시작하면 부엌 한켠이나 창고에 겨우내 쓸 수백 장의 연탄과 김장으로 월동 준비를 하는 것이 상례였다. 겨우내 쓸 연탄을 구입하기 어려운 가난한 집에서는 연탄 가게에서 새끼줄에 2장씩 연탄을 꿰어 양 손을 들고 집으로 향하던 풍경도 쉽게 볼 수 있었다.
타고 남은 연탄은 집 마당에 쌓아 놓았다가 겨울철에는 빙판길에 깨뜨려 제설용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1980년 중반, 기름과 가스 보일러가 본격 보급되기 전까지는 겨울철 연탄 가스 중독으로 인한 사망 사고도 자주 뉴스에 등장했다.
이후 석유 보일러가 등장하고 도시가스가 공급되면서 연탄의 사용량은 현저하게 줄었다. 특히 생활수준의 향상과 제6공화국 이후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에 따른 폐광의 급증으로 공급과 수요가 모두 급락했다. 전국에 산재해 있던 연탄공장들은 오늘도 하나 둘 폐업 수순을 밟거나 정부 지원금 등으로 간신히 운영을 유지하고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10가구가 넘는 저소득층, 노인가구 등 소외계층에게 연탄은 아직도 겨울의 필수 난방 연료이다.
공장 위치를 쓰지 않는 조건에서 촬영허가를 받은 수도권의 한 연탄공장 역시 24시간 풀가동하던 예전의 분주함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고 성수기에 들어선 요즘도 오후 2시면 물량이 없어 연탄을 옮기는 컨베이어 벨트가 멈춰선다.
글·사진=곽경근 대기자 kkkwak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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