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 고문해 만들었다는 F-22…세계 최강인데 퇴역 고민, 왜 [이철재의 밀담]

이철재 2023. 10. 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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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가 저 멀리서 쏜살같이 다가오더니 굉음이 뒤따랐다. 갑작스럽게 방향을 바꾸고는 다시 위로 꺾어 까마득한 하늘로 올라갔다. 상승 자세로 미끄러지듯 내려오다 잠시 멈춘 뒤 다시 속도를 높였다. 기수를 코브라처럼 치켜세우며 비행하기도 했다.

22일 성남 서울공항을 날고 있는 미국 공군의 F-22 랩터. 한국항공우주산업진흥협회


미국 공군의 전투기 F-22 랩터가 21일 서울 성남공항에서 열린 서울 국제 항공우주ㆍ방위산업 전시회(ADEX) 2023(아덱스 2023)에서 선보인 기동들이었다. UFO처럼 날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완전 사기극은 아니다. ‘외계인을 고문해 만든 전투기가 F-22’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F-22는 전 세계 에어쇼의 최고 스타다. 환상적인 공중 기동을 선보이니 뭇시선과 수많은 카메라 포커스가 F-22로 쏠릴 수밖에 없다.


F-22 조종사는 조종석에서 어떤 기분이 들까. 마침 ADEX를 맞아 한국을 찾은 F-22 조종사에게 물어볼 기회가 있었다. 그는 이날 특수비행(곡예비행)을 선보이진 않았지만, 하와이에서 F-22를 몰고 한국으로 날아왔다. 미 공군 제19 전투비행대대의 데이비드 정(34) 소령 얘기다. 그는 한국 이름이 ‘정선교’인 재미동포다.

미국 하와이에서 F-22 랩터를 몰고 한국을 찾은 데이비드 정 미국 공군 소령. 한국항공우주산업진흥협회


정 소령은 비행 군의관(Flight Doctor)이다. 비행 군의관은 군의관이면서 동시에 조종사인 보직이다. 그는 미 공군에서 2명밖에 없다는 전투기 비행 군의관이다.


의사 면허 가진 재미동포 F-22 조종사

Q : 가족사를 간략히 소개한다면.
A : 인천 출신 아버지와 서울 출신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부모님은 선교사로 캐나다로 이민가셨고, 나중에 미국 시카고로 터전을 옮기셨다. 나는 캐나다에서 나고 시카고에서 자랐다. 물론 미국 시민권을 땄다. 한국에 친척이 있어 자주 들른다.

F-22 랩터의 화려한 기동. F-22 데모팀

Q : 어떻게 공군에 입대했나.
A : 듀크 대학 시절 진로를 놓고 고민했다. 그때 F-22 조종사였던 비행 군의관을 만났다. 그의 권유로 비행 군의관을 꿈꿨다. 학군사관(ROTC) 으로 졸업한 뒤 의학전문대학원을 다녔다.

Q : 비행 군의관의 임무는.
A : 조종사가 비행 중 겪는 신체적 변화를 체험ㆍ이해하면서 항공우주 의학의 치료 방법을 모색하는 게 일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비행 군의관이 있는데, 전투기를 조종하는 비행 군의관은 매우 드물다
항공우주 의학(Aerospace Medicine)은 고공이나 우주와 같은 비정상적인 환경에서 효과적으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한국 공군에선 항공 군의관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항공기 후방석에 탄 뒤 저산소증ㆍ기압 강하ㆍ비행착각 등을 직접 경험하면서 이 같은 요인의 사고를 예방하는 게 임무다.

빠른 속도로 360도 회전하면 중력을 올리는 가속도 내성 훈련 장비 ATFS-400. 가속도 내성 훈련은 순간적으로 높아진 중력 상황을 이겨내는 훈련이다. 중앙포토


정 소령은 “2012년 F-22 조종사들이 호흡곤란을 겪어 F-22 전 기체가 비행금지된 적이 있다”며 “비행 군의관이 원인을 조사해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줬다”고 소개했다. 당시 호흡곤란의 원인은 G-슈트가 조종사의 가슴을 너무 압박해 호흡을 방해한 것이었다. G-슈트(G-Suit)는 조종사가 비행복 위에 덧입는 옷이다. 내중력복이라고도 부르는데, 급선회ㆍ급상승ㆍ급하강 등 갑작스러운 중력변화를 대처하게 해준다.

Q : 비행은 언제 시작했나.
A : 2019년 미시시피주 콜럼버스 공군 기지에서 비행교육을 받았다. T-6 텍산Ⅱ 터보프롭 초등훈련기를 거쳐 T-38 탤론 초음속 고등훈련기를 탔다.

Q : F-22 조종사는 어떻게 됐나.
A : 비행 과정에서 성적으로 교육생 순위를 매긴다. 교육생은 개인 의사와 공군의 정원을 고려해 항공기를 배정받는다. 1등이 늘 F-22 조종사가 되는 게 아니다. 폭격기를 원할 수도 있다. 그리고 F-22 정원이 매번 나는 게 아니다. 나는 운이 좋았다. 비행 군의관을 지원했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Q : 의술과 조종 어디에 집중하나.
A : 비행 경력이 3년밖에 안 됐다. 전투기 조종사로선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조종에 집중한다. 그리고 의사 면허를 유지하기 위해 2주에 한 번 진료를 본다.

Q : F-22는 화려한 기동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타보면 어떤가.
A : 비행 중 책임감이 크고 임무에 집중하다 보니 즐길 여력이 없다. 그리고 고난도 기동을 하면 몸에 9G의 힘(조종사 체중 9배 무게)를 받는다. 9G는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래서 비행 군의관 보직이 생겼다. 의사로서 실제 9G가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직접 느껴봐야만 항공우주 의학 치료와 안전사고 예방을 할 수 있다.

G-슈트를 입고 있는 조종사. 미 공군


하늘을 날다 보면 신체에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급상승할 경우 피가 다리 쪽으로 몰려 기절할 수도 있다. 급격한 기동을 하면 가속도 때문에 몸무게보다 더 나가는 힘을 받게 된다. 관절에 무리가 가 목ㆍ허리 디스크로 고생하는 전투기 조종사도 많다.

Q : 전투기 조종사와 의사 둘 중 어떤 게 더 맘에 드나.
A : 어려운 질문이다(웃음). 하나만 선택하고 싶지 않다. 장점만 나열하겠다. 의사는 아픈 환자를 치료해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전투기 조종사는 신나는 보직이다. 물론 비행을 위해선 해야 할 일이 매우 많다. 그래도 임무를 마치면 뿌듯하다.

미국 하와이에서 F-22 랩터를 몰고 한국을 찾은 데이비드 정 미국 공군 소령. 한국항공우주산업진흥협회

Q : 한국으로 오는 11시간 비행이 힘들지 않았나.
A : 조종 중 화장실에 갈 수가 없다. 14번 공중급유를 받았는데 계속 조종해야 하므로 쉴 시간이 적었다.

Q : 앞으로의 계획은.
A : 비행 경험을 더 키워나가고 싶다.
정 소령은 “한ㆍ미 동맹 70주년을 맞아 한국을 찾아 자랑스럽다”며 “한국의 뿌리를 늘 잊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22일 ADEX 2023 시험비행 일정


22일에도 F-22의 멋진 비행을 마지막으로 직접 볼 수 있다. 아덱스 2023에선 F-22뿐만 아니라 국산 전투기 KF-21의 기동, 공군 특수비행전대인 블랙이글스의 시험 비행도 감상할 수 있다. 아덱스 2023에선 세계가 주목하는 K방산의 다양한 무기 체계도 전시됐다. 자세한 정보는 아덱스 2023 웹사이트에서 찾을 수 있다.


시대를 잘 못 만난 비운의 전투기

F-22는 세계 최강의 전투기로 불린다. 맞설 상대가 없어 195대 생산에 그쳤을 정도니 말 다했다. 게다가 적도 없는데 운용ㆍ유지비용은 너무 비싸 미 공군은 F-22의 퇴역을 고민하고 있다. 한마디로 너무 강해 슬픈 짐승이 F-22다.


다음은 F-22 깨알 상식.

①화려한 기동의 비밀은.

F-22의 엔진 추력편향노즐. 유튜브 Tonk228 계정 캡처


추력편향노즐(TVC)이다. F-22는 엔진이 2개인데, 엔진마다 추력의 방향과 크기를 조절하는 추력편향노즐이 달렸다. 추력편향노즐은 매우 높은 고도나 아주 느린 저속에서도 힘을 낼 수 있다. 또 기동성을 크게 높여준다. 그래서 선회할 경우 원을 그리지 않고 바로 방향만 바꾸면 된다.

②스텔스는 무엇인가.

이륙 중인 F-22 랩터 아래에 룬버그 렌즈라는 레이더 리플렉터(빨간원)이 보인다. 미 공군


F-22는 최초의 스텔스 전투기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또 다른 전투기인 F-35 라이트닝Ⅱ를 가리키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스텔스=투명’은 아니다. 스텔스는 레이더에 안 나타난다는 뜻이다. 레이더는 전파를 쏜 뒤 물체에 반사돼 되돌아오는 전파로 목표를 탐지한다. 스텔스는 이 전파를 덜 반사하도록 만드는 기술이다. F-22와 같은 스텔스 항공기는 평시 레이더 리플렉터를 달아 일부러 레이더가 걸리도록 한다. 안전문제 때문이다.

③F-22 실전 기록은.

지난 4월 중국 정찰풍선을 격추한 뒤 F-22에 그려진 킬마크(Kill Mark). 킬마크는 전투기 조종사가 전과를 자랑하려고 기체에 그리는 표식이다. 이는 나중에 가짜뉴스로 밝혀졌다. GMK라는 트위터 사용자가 풍자용으로 합성한 사진이다. 트위터


F-22는 2014년 수니파 무장 세력인 이슬람국가(IS)를 공습하면서 첫 실전을 치렀다. 공중전 전과는 올해에서야 기록했다. 지난 2월 17㎞ 고도에서 미사일을 쏴 중국 정찰풍선을 떨어뜨렸다. 이후 두 번이나 미확인 물체를 격추했다. 1대당 2억 달러(약 2700억원)가 넘는 최고가 전투기지만, 전과는 초라한 편이다.

이철재 국방선임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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