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금지의 땅' 4년만에 열렸다…시민이 이긴 '인천애뜰 전쟁'
“광장을 광장답게 만들어야 합니다.”
지난 17일 오후 2시쯤 인천시청 본관 앞 잔디마당. ‘모두의 광장 인천애뜰을 열어라’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이 세워지자 마이크를 든 임태석(50대)씨가 한 발 앞으로 내디뎠다. 그는 본관 앞 광장인 ‘인천애(愛)뜰’에서 집회를 열지 못하게 규정한 조례에 헌법소원을 청구한 21명 중 한 명이었다. 임씨는 “약 4년 동안 집회가 금지된 공간이 시민에 의해 열렸다.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을 받고 나서 시민의 기본적인 권리를 지켜냈다는 점에서 기쁘고 다행스러웠다”고 말했다. 잔디마당에 앉은 20여명의 손엔 ‘인천애뜰은 시민의 공간이다’, ‘위헌이다. 조례를 폐지해라’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이 들려있었다.
조례로 4년간 닫힌 집회공간
그러나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박 전 시장의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2019년 8월 인천시가 ‘인천애뜰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안’을 인천시의회에 제출하면서다. 조례안 제7조 제1항 제5호엔 ‘집회 또는 시위는 인천애뜰의 잔디마당과 그 경계 내 부지에서 허용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겼다. 광장 개장을 2달여 앞둔 시점에 집회·시위를 일률적으로 금지한 것이다. 2019년 12월 13일 인권단체 ‘활’ 등이 집회를 이유로 잔디마당 사용 신청을 했으나 인천시는 조례를 들어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권단체 등은 반발했다. 그해 12월 20일 “인천애뜰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 제6조와 제7조가 집회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3일 뒤엔 ‘인천애뜰에서의 자유로운 집회시위를 보장하라’며 집회를 강행했다. 이에 인천시는 집회 참가자들을 공유재산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인천시는 “조례에 따라 집회 불허 통지를 했는데도 구조물을 설치하고 집회해 공유재산을 무단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2020년 4월 “집회장소가 공공청사 부지로 돼 있더라도 조성취지 등을 고려할 때 자유로이 개장된 광장으로 봐야 한다. 해당 구역에서의 집회행위를 조례를 통해 불허가 대상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불기소처분했다.
‘집회불허공간’으로 남아있던 인천애뜰은 지난달 26일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인천애뜰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 7조 1항 5호 가목이 위헌이라고 판단하면서 비로소 열렸다. 헌재는 “집회 장소로 잔디마당을 선택할 자유는 원칙적으로 보장돼야 하고, 공유재산의 관리나 공공시설의 설치·관리 등의 명목으로 일방적으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집회 등 외 이유로) 이용 시 신청하게 한 조례안 6조에 대해선 위헌 여부를 판단하지 않았다. 인천시 관계자는 “조례 일부 조항에 위헌 결정에 따라 조례를 개정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다른 지자체 영향 가능성 있나
인천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지난달 27일 성명을 내고 “광장 등 시민들에게 열려 있어야 할 공간에서의 집회·시위를 통제하기 위해 제·개정된 전국 지자체의 조례들은 모두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도권의 한 판사는 “헌재의 이번 결정은 조례로 집회 허가 여부를 결정하는 거 자체를 위헌이라고 본 건 아니지만 이번 결정을 토대로 집회를 허가제가 아니라 신고제로 운용하자는 인권단체 등의 주장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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