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무심한 ‘자코메티’…돈 그려 돈 번 ‘워홀’ [유경희의 ‘그림으로 보는 유혹의 기술’]

2023. 10. 21.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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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 대한 예술가들의 상반된 태도
➊ 앤디 워홀의 첫 번째 달러 시리즈 작품, 1962년. ➋ 앤디 워홀, 달러 사인, 실크스크린, 1982년.
‘걷는 사람들’로 명성을 누리던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만년을 그린 영화 ‘파이널 포트레이트(2018년, 스탠리 투치 감독)’에서 자코메티는 작품값으로 받은 돈뭉치를 아무 데나 던져놓는다. 자코메티는 이미 비엔날레 대상, 뉴욕과 런던의 회고전 등 몸값이 오를 대로 오른 예술가였고, 자고 일어나면 큰돈이 들어왔지만 작업실 구석구석 돈다발을 던져둘 정도로 돈에 무관심했다. 7평 남짓 작업실은 대가의 공간이라고 하기에는 비좁고 난방시설도 전기도 주방도 없는 허름한 공간이었지만 새로 작업실을 구할 생각은 꿈도 꾸질 않았다.

예술가들에게 돈은 어떤 의미일까? 평범한 사람은 쓰기 위해 벌고, 부자들은 벌기 위해 쓴다면, 예술가들은 어느 쪽일까?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의 돈에 대한 태도는 심리발달 과정인 항문기(anal stage·생후 2~3세)에 결정된다. 항문기는 대소변 훈련 시기다. 이때 아이는 배설물을 보유하고 방출하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는 한편, 부모에 의한 배변 훈련을 통해 생애 최초의 억압과 제지를 경험한다. 이런 부모의 훈육 태도는 아이를 항문공격적 성향과 항문저장적 성향으로 나뉘게 한다.

항문공격적 성향이란, 유아가 배변 훈련을 통제하려는 부모와 갈등을 겪게 될 때 이런 외부의 간섭과 통제를 싫어한 나머지 일부러 더 어지럽히거나 지저분하게 함으로써 부모에게 반항하면서 형성된다. 이는 성인기 이후에 무질서, 어지르기, 낭비, 사치, 무절제, 반항, 공격적 성향으로 드러난다. 항문저장적 성향이란, 부모가 정한 규율에 지나치게 동조해 발달된 성격으로 부모의 통제대로 변을 방출하지 않고 참고 있는 것인데, 성인기 이후에는 지나친 청결, 질서정연, 절제, 절약, 인색, 저장하기, 수집하기, 수동공격적 성향과 같은 강박적 성격으로 표출된다.

그렇다면 항문기가 왜 특별히 돈에 대한 태도와 불가분의 관계인 것일까? 배변으로 생산된 똥은 아이의 첫 생산물이다. 똥은 아이가 부모에게 처음으로 제공하는 선물로, 상징적으로 ‘금전’과 같다. 영국 현대미술의 대가 프랜시스 베이컨(1909~1992년)은 항문기에 고착된 성격이 엿보이는 유력한 작가다. 평생 작업실을 청소하지 않고 쓰레기장으로 만든 것으로 유명한 그는 무질서와 어지르기로 드러나는 항문공격적 성향을 보인다. 베이컨은 죽기 전까지 옛날 마구간을 개조한 작업실에서 살았는데, 20여년 동안 마구간을 단 한 번도 청소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청결치 못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그는 사실 꽤 깔끔하고 단정하며, 멋을 낼 줄 아는 희대의 패셔니스타였다.

게다가 베이컨은 작업실에서 나오는 먼지로 작업했다. 작업실에 산재한 먼지는 기막힌 물감이자 재료였다. 그는 프랑스 북부 브르타니에서 본 모래 언덕을 그릴 때 작업실의 먼지를 활용했다. 치우지 않은 작업실은 언제나 충분한 양의 먼지로 덮여 있었다. 헝겊으로 먼지를 닦아 젖은 물감에 올려놓기만 하면 됐다. 그렇게 먼지를 주재료로 탄생한 작품 중 하나가 테이트 갤러리가 소장한 ‘에릭 홀(후견인이자 동성 애인)의 초상화’다. 특히 이 초상화의 옷은 물감이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 먼지를 일종의 파스텔로 간주했던 베이컨은 바닥의 먼지를 이용해 아주 얇게 한 겹으로 발라 살짝 보풀이 있는 특성을 가진 플란넬 양복의 회색을 기막히게 표현해냈다. 이처럼 청소하지 않은 작업실과 먼지 작품의 선호는 항문기에 고착된 그만의 유니크한 콘셉트가 됐다.

베이컨의 항문기적 성향은 사교적이고 교양 넘치며 명랑하고 자유분방한 어머니와 군인 출신으로 말 사육사였던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를 뒀던 집안 환경으로부터 생성됐을 것이다. 이뿐 아니라 돈이 있든 없든 타인에게 무조건적인 베풂으로 유명했다는 점, 우연을 중시하는 도박을 무척 즐겼던 점, 사전 스케치 없이 작업했다는 점 등 항문기에 고착된 성향은 베이컨의 삶과 예술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매우 주요한 심리적 메커니즘이 됐다.

반면 돈을 잘 버는 것, 즉 비즈니스를 잘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말했던 앤디 워홀(1928~1987년)은 돈을 벌기 위한 일이라면 그게 뭐든 크게 고민하지 않고 시도했다. 그처럼 욕망에 솔직한 예술가가 없을 정도다.

어느 날 영감이 궁해진 워홀은 친구 십여 명에게 의견을 구했다. 마침내 어느 친구가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했다. “가장 사랑하는 게 뭐야?” 그래서 워홀은 돈을 그리기 시작했다. 다양한 방식으로 돈을 그리고, 그린 돈을 팔아 큰돈을 챙긴 앤디 워홀은 그 돈을 다 어쨌을까? 물론 그는 엄청나게 사치스럽고 화려한 생활을 했다. 그런 워홀이 의료 사고로 갑자기 사망했을 때 세상은 경악했다. 단돈 200달러를 갖고 뉴욕에 온 지 38년 만에 그가 남긴 재산은 워홀재단에 기증한 부동산만 1억달러에 상당했다고 하니, 개인 예술가가 재단에 기증한 돈으로는 최고의 금액이었다. 게다가 워홀이 소유하고 있던 27개의 방에는 아직 개봉도 하지 않은 상자와 쇼핑백, 수만 가지 보석과 액세서리, 피카소를 비롯한 대가들의 작품과 장식품으로 가득했다. 워홀의 이런 돈에 대한 남다른 욕망과 후원 역시 항문기와 연관되지 않는다고 보기 어렵다.

현대미술 경매에서 최고가를 기록하는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 잭슨 폴록(1912~1956년)도 항문공격적 성향의 화가가 아니었을까.

폴록의 드리핑(dripping) 기법으로 제작된 액션 페인팅이야말로, 마치 어린아이의 소변 멀리 누기 놀이 혹은 쾌변처럼 어마어마한 해방감을 준다. 그의 액션 페인팅은 캔버스를 이젤에 올리고 붓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 대형 캔버스를 놓고 물감을 뿌려 그리는 작업이다. 당시로서는 그 누구도 실행해본 적 없는 과감한 방식이다. 과도한 무질서와 물감의 낭비와도 같은 흘리고 뿌리는 기법으로 온 방을 지저분하게 어질러놓은 것 같은 폴록의 화면이야말로 마치 어린아이가 자신의 배설물을 온전히 소유하며 지분거리듯 ‘유년으로의 퇴행’을 암시하는 풍경은 아닐까. 평상시에는 수줍고 말이 없던 그가 알코올에 의존해 노상방뇨를 일삼고 악담을 퍼부은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지점이다.

➌ 잭슨 폴록, 드리핑을 통한 액션 페인팅하는 모습, 1950년. ➍ 프랜시스 베이컨이 작업실의 먼지를 이용해서 그린 동성 애인 에릭 홀의 초상화, 1936년경.
유경희 유경희예술처방연구소 대표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30호 (2023.10.18~2023.10.2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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