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해봤어?" 친구가 권한 약…살점 떨어지고 뼈 드러났다

신수민 2023. 10. 21. 19: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마약과의 전쟁 30년, 김선춘 국과수 연구소장


마약 전문가인 김선춘 국과수 대전과학수사연구소장은 “ 신종마약 시대가 도래했고 마약팬데믹 에 접어 들었다”고 말했다. 김성태 객원기자
아주 오랫동안 우리나라에서 마약의 대명사는 ‘히로뽕’이란 속칭으로 더 알려진 메스암페타민(필로폰)이었고 대마, 아편 등이 간간이 단속에 걸렸다. 그러다 1990년대 엑스터시란 이름의 약품이 대도시 유흥가를 중심으로 확산되면서 ‘신종마약’이라 불렸다. 모두 다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이야기다. 최근 몇년 새 어지간한 전문가가 아니면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진짜’ 신종마약들이 빠른 속도로 확산, 보급되고 있다. 국내에서 발견된 신종마약 수는 1000종을 훌쩍 넘은지 오래다. 각종 절차를 거쳐 힘들게 하나를 법정 단속대상으로 지정하면 그 사이 또다른 신종마약이 여럿 발견되곤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각종 유혹이 넘치는 환락가나 음습한 암흑가의 일탈에 그치는 게 아니라 10대 청소년 중독자가 급증할 정도로 우리의 일상 곁으로 바싹 다가와 있다는 점이다. 올해 마약사범은 1만2700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특히 10대 마약사범이 무섭게 늘었다. 지난해 294명에서 올해 659명으로 124% 증가했다.

김선춘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대전과학수사연구소장은 “지금은 마약 팬데믹 상황”이라며 “10대들이 친구끼리 스스럼없이 마약을 권하는 사회가 됐으니,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30년간 국과수에서 근무하며 마약과의 전쟁 최일선에서 싸워온 전문가다. 그에게 신종마약 시대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 그 불편한 진실을 물었다.

올해 마약사범 1만2700명 역대 최다

Q : 신종마약이 갑자기 불어났다.
A : “2000년대부터 법에 등록돼 있지 않던 새로운 마약이 등장하더니 최근 10년 새 여태까지 못보던 새로운 화학구조체의 마약이 등장해 확산됐다. 외국에서 제조과정이 워낙 잘 분업화된 까닭에 가격이 저렴하다보니 빠르게 국내로 유입됐다. 2020년 팬데믹 때가 피크였다. 10대까지 퍼졌다. 텔레그램, 다크웹 등으로 구매요청을 하고 가상화폐로 결제하는 등 음지화된 유통경로를 개발해 10대에 접근했다. 불과 2~3년새 10대의 손에 쥐어진 거다.”

Q : 그새 무슨 일이 있어났길래 이렇게 됐나.
A : “전세계 공장이 돌기 시작했다. 분업이 너무 잘 돼 생산량도 배로 불었다. 일례로 필로폰만 해도 전세계 생산량은 3년 전 대비 5배로 늘었다. 문제는 공급이 많아지면 가격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수요자(중독자)는 더 많이 사들이게 된다. 새로운 지불수단도 혁신이다. 가상화폐 등 추적이 어려운 결제수단으로 돈을 받고 동시다발적으로 마약이 배달됐다. 일명 던지기 수법이라고, 밀반입한 마약을 적당한 장소에 숨겨 놨다가 입금이 확인되면 좌표와 사진을 보낸다. 나이 같은 건 묻지도 않는다. 유통주기는 짧아져 빠르게 돌고, 세계시장으로 확장됐다.”

Q : 국과수에서 세계 최초로 보고한 마약도 있다고 들었다.
A : “ADB-브리나카로 2년 전 25만원에 거래된 합성대마 5㎖에서 발견됐다. 그때까지 듣도 보도 못한 약이었다. 세계 최초로 구조체를 규명하고 보고했는데 3개월 뒤 타국에서도 발견됐다. 우리나라에서 제조한 건 아닌데 외국에서 다크웹에 판매글을 올려놓은 걸 국내 누군가가 구매한 거다. 외국에서 돌다 국내에서 처음 발견되는 신종마약이 1년에 7~8건 정도다. 올해 7월엔 베노사이클리딘(BTCP)이 발견됐고 합성대마 몇몇 종류도 검출했다. 국가의 (마약) 검출력이 좋으면 조기 단속이 가능하지만 반대라면 조용히 시장은 덩치를 키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김선춘 소장이 휴대전화를 들여다 보더니 “방금도 신종마약을 알리는 공문이 왔다”고 말했다. 신종마약이 빠르게 늘면서 검출 속도는 쫓아가기 바쁘고 통제는 더 어려워졌다. 국내 신종마약 단속량은 2019년 4만3809g에서 불과 3년 새 26만6758g으로 6배 늘었다. 단속 2위였던 대마를 제쳤다. 김 소장은 “해외에 보고된 신종이 2000종인데 국내 발견종은 2000종이 안 된다”며 “아직 더 들어올 게 남았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유엔 마약범죄사무소(UNODC)에 따르면 지난해 신종마약은 50종, 일주일에 1개 꼴로 발견됐다. 신종마약이 밀려 들어오면서, 마약 감별을 하기도 전에 남용이 확산됐다. 이에 식약처는 2011년 임시마약류 지정제를 만들고, 유사체지정제를 도입했다.

Q : 왜 검출이 더 어렵나.
A : “보통 마약으로 지정하는 절차가 엄격해 검사만 2주에서 최대 1년까지 걸린다. 계속해서 신종이 들어오는데다 폴리 드러그 유저(다중 이용자)가 많아진 것도 고충이다. 보통 5종까지 섞어 하는데 대사체 감별 시 물질마다 제각기 다른 검출법을 써야 한다. 5종이면 5번 검출해야 하니 시간이 더 걸린다. 그래서 마약 지정 절차가 진행 중인 기간에도 규제할 수 있도록 임시마약류와 유사체 지정제를 도입한 것이다.”

Q : 신종마약류의 부작용은 어떤가.
A : “정말 어디로 튈지 모른다. 환각효과 등 약효를 최대화하려 구조체를 변경하는데 그때 독성이 확 바뀐다. 신종마약이 위험한 이유다. 크로코딜(데소모르핀)을 예로 들자면, 이 약을 하면 살이 악어 등짝처럼 변하고 살점, 근육이 떨어져나가 뼈가 그대로 노출된다. 마약에 남아있는 인 성분 때문인데 대충 합성하다보니 정제가 잘 안 돼 그렇다. 대개 신종마약이 이런 식으로 합성되는데 독성실험을 거치지 않는다. 물질은 화학 구조가 조금만 바뀌어도 독성이 바뀌고 여러 작용을 동반할 수 있다. 탈리도마이드라는 입덧 진정제는 이후 기형을 유발하는 부작용을 보이기도 했다. 문제는 그래도 못 끊는다는 거다. 크로코딜 중독자가 러시아, 우크라이나 쪽만 10만명 이상이다.”

Q : 가장 걱정되는 건 뭔가.
A : “중독 사망자가 늘고 있다. 국내에 유행 중인 합성아편류, 합성대마가 주범이다. 잘 알려진 펜타닐이 대표적 합성아편류다. 투약량은 필로폰의 1000분의 1정도밖에 안 되면서 독성은 모르핀의 100배다. 치사량이 눈꼽보다 작은 2mg이다. 조금만 증량해도 치사량에 이른다는 얘기다. 펜타닐 중독으로 인한 사망자가 다른 마약 대비 2.5배 높다. 합성대마는 더 심각하다. 상대적으로 대마보다 담배를 자주 피니 대마가 낫다고 보는데 큰 오산이다. 담배는 중독 지속시간이 얼마 안 가지만, 대마는 한 번 하면 그날 다시 못 한다. 그만큼 독성이 강하다. 최근엔 합성대마가 액상으로 나오면서 사망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전자담배 카트리지에 넣어 계속 피다보니 용량 조절을 못해 사망하는 것이다. ”
신종마약과의 전쟁, 지금이 골든타임

김 소장은 “마약문제가 최근 수면 위로 오른 건 10대 중독자가 이슈화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래 인적자산인 10대가 마약 중독자로 전락하면 국가 경쟁력에 타격이 올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마약중독은 더 이상 개인의 일탈 문제로만 치부하지 말고 ‘단속-치료-복귀’의 전 과정을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공적 영역이라는 게 김 소장의 지론이다.

Q : 10대는 어떻게 마약에 빠지게 되나.
A : “친구끼리 ‘이 약 해봤어?’ 라고 묻는다. 그게 시작이다. 처음엔 용돈으로 구할 수 있다. 그러다 중독돼 약을 증량하면 돈이 부족해진다. 이 때 다른 친구를 중독의 길로 끌어들이거나, 본인이 판매자로 전락한다. 여학생의 경우 흔히 살빼는 약으로 알려진 펜터민(나비약)으로 시작해 더 센 약효를 가진 필로폰으로 넘어간다. 최근 한 어머니가 딸을 마약사범으로 신고했는데 그 여중생도 필로폰을 남용 중이었다. 10대는 뭐든 사서 해보려 하고, 어떻게든 대체재를 찾아 닥치는대로 한다는 것도 특징이다. 최근엔 여중생 둘이 일본에 일반의약품으로 지정된 덱스트로메트로판을 대량구매해 20알을 남용한 사례도 있다.”

Q : 개인이 마약을 끊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A : “본드를 예를 들어보자. 본드 중독자는 ‘내가 뭘 한 거지?’라며 본드를 마신 사실을 잊어버릴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끊게 된다. 뇌가 망가질 대로 망가져 기억을 못 한다. 마약을 시작할 때 ‘냄새만 맡는 건데’ 라고 생각하지만, 그 딱 한 번이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된다. 알코올은 중독 빈도가 낮은 편이지만, 마약은 99.9%다. 한 번 하면 무조건 중독된다. 단약(斷藥)한 지 5년 됐어도 버스 타고 가다가 한 때 같이 약을 했던 친구를 보기라도 하면 그때 기분이 떠올라 다시 찾고야 마는 게 마약이다.”
김 소장은 “신종마약은 국가적 문제로 보고 대응해야 한다”며 “마약전쟁의 골든타임은 바로 지금”이라고 강조했다. 단속에 빈틈이 커질수록, 중독자가 급증할수록 사회적 손실 규모는 가늠하기 어려울만큼 급증한다. 국과수는 내년 마약대응과를 신설한다. 다중 마약물질을 한 번에 검출해내는 시스템도 3년 연구 끝에 마무리 중에 있다. 김 소장은 “처벌과 상관없이 국내 돌아다니는 마약을 전수 파악해 내는 게 목표”라며 “국가만이 할 수 있고, 그게 국가의 역할”이라고 결의를 다졌다.

신수민 기자 shin.sumi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