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해봤어?" 친구가 권한 약…살점 떨어지고 뼈 드러났다
마약과의 전쟁 30년, 김선춘 국과수 연구소장
김선춘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대전과학수사연구소장은 “지금은 마약 팬데믹 상황”이라며 “10대들이 친구끼리 스스럼없이 마약을 권하는 사회가 됐으니,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30년간 국과수에서 근무하며 마약과의 전쟁 최일선에서 싸워온 전문가다. 그에게 신종마약 시대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 그 불편한 진실을 물었다.
올해 마약사범 1만2700명 역대 최다
Q : 신종마약이 갑자기 불어났다.
A : “2000년대부터 법에 등록돼 있지 않던 새로운 마약이 등장하더니 최근 10년 새 여태까지 못보던 새로운 화학구조체의 마약이 등장해 확산됐다. 외국에서 제조과정이 워낙 잘 분업화된 까닭에 가격이 저렴하다보니 빠르게 국내로 유입됐다. 2020년 팬데믹 때가 피크였다. 10대까지 퍼졌다. 텔레그램, 다크웹 등으로 구매요청을 하고 가상화폐로 결제하는 등 음지화된 유통경로를 개발해 10대에 접근했다. 불과 2~3년새 10대의 손에 쥐어진 거다.”
Q : 그새 무슨 일이 있어났길래 이렇게 됐나.
A : “전세계 공장이 돌기 시작했다. 분업이 너무 잘 돼 생산량도 배로 불었다. 일례로 필로폰만 해도 전세계 생산량은 3년 전 대비 5배로 늘었다. 문제는 공급이 많아지면 가격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수요자(중독자)는 더 많이 사들이게 된다. 새로운 지불수단도 혁신이다. 가상화폐 등 추적이 어려운 결제수단으로 돈을 받고 동시다발적으로 마약이 배달됐다. 일명 던지기 수법이라고, 밀반입한 마약을 적당한 장소에 숨겨 놨다가 입금이 확인되면 좌표와 사진을 보낸다. 나이 같은 건 묻지도 않는다. 유통주기는 짧아져 빠르게 돌고, 세계시장으로 확장됐다.”
Q : 국과수에서 세계 최초로 보고한 마약도 있다고 들었다.
A : “ADB-브리나카로 2년 전 25만원에 거래된 합성대마 5㎖에서 발견됐다. 그때까지 듣도 보도 못한 약이었다. 세계 최초로 구조체를 규명하고 보고했는데 3개월 뒤 타국에서도 발견됐다. 우리나라에서 제조한 건 아닌데 외국에서 다크웹에 판매글을 올려놓은 걸 국내 누군가가 구매한 거다. 외국에서 돌다 국내에서 처음 발견되는 신종마약이 1년에 7~8건 정도다. 올해 7월엔 베노사이클리딘(BTCP)이 발견됐고 합성대마 몇몇 종류도 검출했다. 국가의 (마약) 검출력이 좋으면 조기 단속이 가능하지만 반대라면 조용히 시장은 덩치를 키운다.”
김선춘 소장이 휴대전화를 들여다 보더니 “방금도 신종마약을 알리는 공문이 왔다”고 말했다. 신종마약이 빠르게 늘면서 검출 속도는 쫓아가기 바쁘고 통제는 더 어려워졌다. 국내 신종마약 단속량은 2019년 4만3809g에서 불과 3년 새 26만6758g으로 6배 늘었다. 단속 2위였던 대마를 제쳤다. 김 소장은 “해외에 보고된 신종이 2000종인데 국내 발견종은 2000종이 안 된다”며 “아직 더 들어올 게 남았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유엔 마약범죄사무소(UNODC)에 따르면 지난해 신종마약은 50종, 일주일에 1개 꼴로 발견됐다. 신종마약이 밀려 들어오면서, 마약 감별을 하기도 전에 남용이 확산됐다. 이에 식약처는 2011년 임시마약류 지정제를 만들고, 유사체지정제를 도입했다.
Q : 왜 검출이 더 어렵나.
A : “보통 마약으로 지정하는 절차가 엄격해 검사만 2주에서 최대 1년까지 걸린다. 계속해서 신종이 들어오는데다 폴리 드러그 유저(다중 이용자)가 많아진 것도 고충이다. 보통 5종까지 섞어 하는데 대사체 감별 시 물질마다 제각기 다른 검출법을 써야 한다. 5종이면 5번 검출해야 하니 시간이 더 걸린다. 그래서 마약 지정 절차가 진행 중인 기간에도 규제할 수 있도록 임시마약류와 유사체 지정제를 도입한 것이다.”
Q : 신종마약류의 부작용은 어떤가.
A : “정말 어디로 튈지 모른다. 환각효과 등 약효를 최대화하려 구조체를 변경하는데 그때 독성이 확 바뀐다. 신종마약이 위험한 이유다. 크로코딜(데소모르핀)을 예로 들자면, 이 약을 하면 살이 악어 등짝처럼 변하고 살점, 근육이 떨어져나가 뼈가 그대로 노출된다. 마약에 남아있는 인 성분 때문인데 대충 합성하다보니 정제가 잘 안 돼 그렇다. 대개 신종마약이 이런 식으로 합성되는데 독성실험을 거치지 않는다. 물질은 화학 구조가 조금만 바뀌어도 독성이 바뀌고 여러 작용을 동반할 수 있다. 탈리도마이드라는 입덧 진정제는 이후 기형을 유발하는 부작용을 보이기도 했다. 문제는 그래도 못 끊는다는 거다. 크로코딜 중독자가 러시아, 우크라이나 쪽만 10만명 이상이다.”
Q : 가장 걱정되는 건 뭔가.
A : “중독 사망자가 늘고 있다. 국내에 유행 중인 합성아편류, 합성대마가 주범이다. 잘 알려진 펜타닐이 대표적 합성아편류다. 투약량은 필로폰의 1000분의 1정도밖에 안 되면서 독성은 모르핀의 100배다. 치사량이 눈꼽보다 작은 2mg이다. 조금만 증량해도 치사량에 이른다는 얘기다. 펜타닐 중독으로 인한 사망자가 다른 마약 대비 2.5배 높다. 합성대마는 더 심각하다. 상대적으로 대마보다 담배를 자주 피니 대마가 낫다고 보는데 큰 오산이다. 담배는 중독 지속시간이 얼마 안 가지만, 대마는 한 번 하면 그날 다시 못 한다. 그만큼 독성이 강하다. 최근엔 합성대마가 액상으로 나오면서 사망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전자담배 카트리지에 넣어 계속 피다보니 용량 조절을 못해 사망하는 것이다. ”
신종마약과의 전쟁, 지금이 골든타임
김 소장은 “마약문제가 최근 수면 위로 오른 건 10대 중독자가 이슈화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래 인적자산인 10대가 마약 중독자로 전락하면 국가 경쟁력에 타격이 올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마약중독은 더 이상 개인의 일탈 문제로만 치부하지 말고 ‘단속-치료-복귀’의 전 과정을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공적 영역이라는 게 김 소장의 지론이다.
Q : 10대는 어떻게 마약에 빠지게 되나.
A : “친구끼리 ‘이 약 해봤어?’ 라고 묻는다. 그게 시작이다. 처음엔 용돈으로 구할 수 있다. 그러다 중독돼 약을 증량하면 돈이 부족해진다. 이 때 다른 친구를 중독의 길로 끌어들이거나, 본인이 판매자로 전락한다. 여학생의 경우 흔히 살빼는 약으로 알려진 펜터민(나비약)으로 시작해 더 센 약효를 가진 필로폰으로 넘어간다. 최근 한 어머니가 딸을 마약사범으로 신고했는데 그 여중생도 필로폰을 남용 중이었다. 10대는 뭐든 사서 해보려 하고, 어떻게든 대체재를 찾아 닥치는대로 한다는 것도 특징이다. 최근엔 여중생 둘이 일본에 일반의약품으로 지정된 덱스트로메트로판을 대량구매해 20알을 남용한 사례도 있다.”
Q : 개인이 마약을 끊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A : “본드를 예를 들어보자. 본드 중독자는 ‘내가 뭘 한 거지?’라며 본드를 마신 사실을 잊어버릴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끊게 된다. 뇌가 망가질 대로 망가져 기억을 못 한다. 마약을 시작할 때 ‘냄새만 맡는 건데’ 라고 생각하지만, 그 딱 한 번이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된다. 알코올은 중독 빈도가 낮은 편이지만, 마약은 99.9%다. 한 번 하면 무조건 중독된다. 단약(斷藥)한 지 5년 됐어도 버스 타고 가다가 한 때 같이 약을 했던 친구를 보기라도 하면 그때 기분이 떠올라 다시 찾고야 마는 게 마약이다.”
김 소장은 “신종마약은 국가적 문제로 보고 대응해야 한다”며 “마약전쟁의 골든타임은 바로 지금”이라고 강조했다. 단속에 빈틈이 커질수록, 중독자가 급증할수록 사회적 손실 규모는 가늠하기 어려울만큼 급증한다. 국과수는 내년 마약대응과를 신설한다. 다중 마약물질을 한 번에 검출해내는 시스템도 3년 연구 끝에 마무리 중에 있다. 김 소장은 “처벌과 상관없이 국내 돌아다니는 마약을 전수 파악해 내는 게 목표”라며 “국가만이 할 수 있고, 그게 국가의 역할”이라고 결의를 다졌다.
신수민 기자 shin.su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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