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북클럽 3기] 가장 완벽한 인공지능도 알 수 없는 '인간의 마음'
책을 통해 책 너머의 세상을 봅니다.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 3기입니다. <편집자말>
[장순심 기자]
인간의 생체 적합성을 이용해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는 로봇이나 이식된 칩으로 쉽게 업무를 처리하는 사람과 같은 인간 기계 인터페이스(Human-machine interface)는 이미 우리 앞에 다가와 있다(<2023 미래과학트렌드> 중). 또 자율적으로 운행하는 무인택시나 사람처럼 행동하는 휴먼 아바타는 이미 산업의 성장 동력이 되고 있다.
▲ <라스트 젤리 샷> 2023년 제6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대상, 청예(지은이) |
ⓒ 허블 |
청예 작가의 <라스트 젤리 샷>은 2023, 제6회 한국과학문학상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뛰어난 연구자 갈라테아가 만든 '인봇(휴머노이드 혹은 안드로이드, 그 두 가지를 포용하여 '로봇' 범주의 모든 개체 수준을 진작 뛰어넘은 초기 기형 존재)' 3구의 사회화 실험의 과정을 로봇의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책에서는 인간의 삶을 보다 편하게 하고 삶의 질과 노동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인간의 감정을 가진 다양한 로봇이 등장한다. 그중 노동과 지능과 간병의 신이라 불리는 로봇은 각각 현장에 투입된다. 인간을 돕겠다는 본래의 목적과 다른 결말을 취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로봇이 보여준 사고의 과정만은 놀랍도록 인간적이다.
사회화 과정을 겪는 로봇들
가장 먼저 투입된 엑스는 창작에 도전한다.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사람들의 취향과 기획사의 요구에 맞춰 효율적으로 음원을 구현한다. 이미 각종 기기나 컴퓨터 장비를 이용한 편집으로도 간단한 음원은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다. 다만, 엑스가 보인 고효율의 노동 강도에 뜨거운 열정까지 더해지면 인간의 재능을 뛰어넘는다.
사람들은 열정과 의지에서 발현되는 기적을 믿지만, 현실은 지나칠 정도로 이성적일 때가 있었다. 가끔보다 더 자주, 그래서 꿈은 사람을 자주 울렸다. 또한 기계들은 인간이 꿈은 좇는 속도보다 더욱 빠르게 이상에 닿았다. 그들은 꼬리의 잔상조차 남기지 않는 무시무시한 빛줄기였고, 인간이 시린 눈을 감은 때에는 이미 지상에 불시착한 뒤였다.(p.96-97)
미래에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하는 직업에 예술 창작자와 종교인이 있다고 한다. 로봇이 대신하기에는 효율적이지 않으며 형이상학적인 직업이라는 이유에서다. 종교 현장에 투입된 로봇 데우스는 종교적 행위가 갖는 모순을 냉정하게 지적한다. 대부분의 인간들도 알고 느끼지만 침묵하거나 묵인하는 것들을 데우스는 묵과하지 못한다.
지식의 신이 수집한 데이터에 의하면, 무당의 행위는 불합리하고 불필요하고 심지어 타인의 재산을 갈취하며 타인을 속여 자기만족과 부를 축적하기 위한 행위로밖에 인식되지 않는다. 지식의 신도 맹목적 믿음이나 막연한 기대, 불가능을 알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인간의 신념에는 무지를 드러낸다.
인간이 믿는 신이란 작자를 분석하는 동안 데우스는 한 가지를 간과했다. 식별이 명징해진다는 건 대상을 세세히 안다는 것이고, 아는 상태는 이해를 불러일으키기 쉽고, 앎과 이해가 곧 동화의 싹이 된다는 것을. 오로지 식별만으로 끝나는 앎은 존재하기 어려웠다. 아는 순간 느낄 수 있어지는 것. 그것은 감정과 신앙의 유사점이기도 했다.(p.185)
신체적 정신적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는 질병. 인간은 가족 중 한 사람이 아파도 가족 공동체가 흔들리는 충격을 겪는다. 또한 가족 구성원의 절대적 희생과 헌신이 요구되기도 한다. 다만, '미안함과 사랑으로 만들어진 끈끈한 유대'가 있다면 비록 완치되지 않을지라도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 끈끈한 유대는 타인에게 쉽게 틈을 내보여서도 허락되어서도 안 된다.
간병의 신 마키나는 환자와 가족에게서 '가족애'를 느낀다. 그들끼리의 '가족애'에 합류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는다. 그러나 그 공고한 유대에 로봇이 들어갈 틈은 애초에 없다. 유대가 느슨해지는 순간 금이 가고 깨지고 만다는 것을, 인간은 알고 로봇은 알지 못한다.
인간의 감정을 세밀하게 이해하고 흉내 내는 마키나는 가장 넓은 감정 스펙트럼을 가진 존재지만, 풍부한 감정은 고스란히 상처로 돌아온다. 다채로운 감정으로 인해 불편과 수고로움, 불합리를 더 많이 참아야 했기에 분출되는 행위는 강력하고 더 위험하다. '인간이 세운 경계선은 벼랑 위에 창조됐고', 마키나의 오류는 벼랑 끝에 서는 선택을 한다. 함께하거나, 파괴하거나, 함께 추락하거나.
책에서, 로봇의 사회화 실험은 인간의 한계를 과학을 통해 극복하려는 과학계의 노력과 다르지 않다. 인간의 모든 감정을 수용하고 넘어서겠다는 의지이며 가장 완벽한 인공지능을 완성하겠다는 실험적 도전이다. 과연 로봇의 쓰임은 과연 어디까지 가능하며 얼마만큼 인간을 대체하고 넘어설 수 있을까.
인정받지 못하는 로봇의 마음
결국 책은 로봇이 아닌 인간이란 과연 어떤 존재일까 생각하게 한다. 인간과 구분하기 어려운 정도로 인간을 닮은 인공지능일지라도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꿈, 믿음과 가족이란 무엇일까.
인간의 마음은 다채롭다. 일방향이 아닌 각자 다른 방향으로 줄기를 뻗는다. 깊이 고민하고 스스로도 예측할 수 없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효율과 합리,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무수한 SF영화와 소설에서 인간과 로봇이 대립하는 것은 이런 인간의 특성 때문은 아닐까.
하나 더, 모든 일이 그렇듯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비로소 논쟁은 시작된다. 인공지능과 인권, 인공지능 윤리가 등장한다. 책임을 로봇에게 물을 수는 없으니 모든 책임은 결국 로봇을 만든 연구자를 향한다.
재판의 쟁점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로봇이 윤리 강령 1조 '사람의 통제가 가능해야 한다'와 2조 '주입하지 않은 감정을 느껴선 안 된다', 3조 '스스로 자아를 생성해서도 안 된다'는 규정을 지켰는지를 따져 여죄를 가린다. 그 판단조차도 초지능이 탑재된 천칭이 담당한다. 인간(심판관)은 천칭의 기울기에 따라 형벌을 결정하고 선언하면 된다.
인공지능의 발전과 인권은 병립할 수 있는 문제일까? 미국은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등 다국적 기업을 중심으로 자율적인 인공지능 윤리기준을 만들고 있고, 유럽연합은 더 엄격한 법제와 구제적인 규정을 도입하고 있다고 한다.
"인간이 타자를 어여쁘게 여기면 사랑이 되고 내가 타자를 어여쁘게 여기면 단지 간병일 뿐입니까. 만약 내가 간병이 아닌 방식으로 이 마음을 표현하는 존재가 된다면 나의 사랑은 인정받을 수 있습니까."(p.253)
간병의 신 마키나의 마지막 말은 섬뜩하다. 이것이 만약 인간이 개발한 인공지능의 경고라고 한다면, 폭주하는 인공지능을 어떻게 차단할 수 있을까? '무게 추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많은 게 바뀐다는' 작가의 말은 과학의 미래를 위해서도 전제되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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