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인생 바꾸기도 해”…오롯이 콘텐츠를 즐기는 색다른 경험 [콘텐츠 피로사회③]
“다른 OTT에서 1.5배속이 되는 게 싫다. 디즈니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이 이게 안 된다. 창작자의 의도도 중요하지만, 구독자 의견도 중요해졌다. 그런데 저는 집에서 OTT를 8개를 구독해서 다 본다. 가끔 1.5배속으로 보는 게 이해가 안 되는 것 같다.”
디즈니 플러스 ‘무빙’의 원작자이자 이 작품의 시나리오를 쓴 강풀 작가가 여러 플랫폼 중 디즈니 플러스를 선택한 이유다. OTT, 유튜브의 1.5배 또는 스킵 기능을 적극 활용해 콘텐츠를 빠르게 감상하는 시청자들이 늘고 있다. 물론 여러 플랫폼에서 쏟아지는 콘텐츠들을 모두 섭렵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러나 빠른 감상은 물론, 콘텐츠의 중요한 부분만을 편집해 선보이는 요약 콘텐츠까지 흥하면서 창작자들의 아쉬움을 사고 있다.
그러나 강 작가처럼 창작자의 의도대로 콘텐츠를 오롯이 감상하길 원하는 시청자들도 없지 않다. 조용하고, 개인적인 공간에서 큰 스크린으로 영화를 즐기는가 하면, 쉽게 구매하기 힘든 고품질 스피커로 음악을 즐기며 감상의 질을 추구하는 이들을 위한 음악감상실, 개인 영화관이 대표적인 예다. 아직은 마니아들을 겨냥하고 있지만, 콘텐츠를 오롯이 감상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이러한 공간들이 꾸준히 생겨나고 있다.
지난해 문을 연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을지영화관이 한 예다. 코로나19 전에는 하루에 한 번 영화관을 방문할 만큼 영화를 좋아했던 김인수 대표가 지난해 운영을 시작했다. 그는 해당 공간을 운영하게 된 계기에 대해 “영화관에 가면 소음도 있고 주변인들에 의해 방해를 받는 것이 아쉽더라. 코로나19 이후 공간 대여에 대한 니즈가 생겼는데, 이를 영화와 접목하면 어떨까 싶더라. 집에서 모바일이나 TV로 시청하기엔 아쉬운 부분들도 있다. 영화관도 위축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공간을 시작하는 것에 우려가 없지는 않았지만, 나와 같은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프라이빗 영화관은 숨겨진 공간에서 특별하게 콘텐츠를 감상하는 보물 같은 경험을 주는 곳이라고 여긴다”라면서 “DVD방의 안 좋은 인식에서 탈피하기 위해 CCTV를 설치했다. 공간의 목적에 맞게 즐겨주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즐겨주시는 분들이 많아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제주도에서 단편, 독립영화관을 상영하는 작은 상영관을 운영 중인 숏트롱시네마의 김민음 소장도 이 같은 특별한 경험의 중요성을 믿고 운영을 시작했다. 그는 “영화관'에서의 영화 관람은 집에서 TV로 영화를 보거나, 휴대폰으로 요약본을 보거나 하는 관람과 많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영화관을 가야지’라고 마음을 먹는 순간부터 영화관을 향해 가는 길, 영화관에서의 영화 관람, 함께 관람하는 관객분들의 반응, 일행과 영화에 대해 나누는 이야기, 집에 돌아가 자기 전에 떠오르는 질문, 여운 등 영화 경험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확장이 된다. 이 경험을 제대로 즐기신 분들은 꼭 다시 이곳을 찾아줄 거라 믿었다”고 말했다.
독립영화관이 없는 제주도에 단편, 독립영화를 제공하며 문화 사각지대 해소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 오프라인 공간이라 가능한 소통의 장을 열어 경험을 확장하기도 한다. 김 소장은 “저희 공간은 영화 관람 후, 한 줄 평을 남길 수 있는 칠판이 있어요. 생각지 못한 타인의 평을 보고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하면서 영화 관람이 더 풍성해지는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고 많이 듣는 관객들의 반응은 ‘이 공간을 운영해 줘서 감사해요. 오래오래 있어주세요’다”라고 말했다.
경기도 시흥에서 음악감상실 온을 운영 중인 정종렬 대표도 음악을 감상하는 문화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공연장은 비싼데, 이곳은 비교적 저렴하다. 오셔서 좋은 소리도 있다는 것을 느껴주시면 그게 나의 행복이다. 그걸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 공간에는 TV나 스크린이 없다. 스피커만 있다. 책도 보고, 작업을 하셔도 되지만 자연스럽게 음악을 들으며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고품질 스피커는 물론, 음악에 특별한 관심이 있었던 정 대표가 모은 LP를 통해 음악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한다. 이에 대해 “요즘 콘텐츠를 빠르게 소비하는 이들이 많은데, 그것이 내가 LP로 음악을 들려드리는 이유다. LP는 그런 것을 할 수가 없다. 하나의 음악을 쭉 듣는 매력이 있다. 없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어지간하면 신청곡은 LP로 틀어드리려고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테이블의 숫자를 최소화해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고, 이에 이곳을 찾는 손님들도 자연스럽게 감상에 방점을 찍게 됐다. “사람이 많아지면 음악을 듣는데 방해가 될 수 있다. 그래서 테이블을 작게 두고 이 공간을 운영 중이다. 광고도 필요 없는 공간”이라고 음악감상실 온을 설명한 김 대표는 “평일엔 5~10명이 올 때도 있지만, 주말에는 20명이 넘는 분들이 이곳을 찾아주신다. 음악을 제대로 듣기 위해 멀리서 찾아주기도 한다는 것에 놀랐다. 손님들이 수다도 떨고 그러실 줄 알았는데, 자연스럽게 조용히 음악을 감상하시더라”라고 말했다.
음악 역시, 영화와 마찬가지로 함께 들으면서 경험을 확대할 수 있다. 이곳을 우연히 찾은 뒤 만족해 로고를 만들어 준 외국인 회사의 디자이너부터 작품을 가지고 와 전시와 접목하는 디자이너까지. 이곳을 찾는 사람들과 함께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다. 신청곡을 전달하면서 자신의 사연을 나누는 손님도 있었다.
“요즘 젊은이들 많이 힘들지 않나. 음악 한 곡을 통해 편안하게 힐링을 할 수 있다. 메모지에다가 너무 힘들어서 음악 한 곡을 듣고 싶다고 하신 분이 계셨다. 신청할 때 사연들을 짧게 적어주기도 하시는데, 음악 한 곡으로 힐링을 할 수 있고, 인생이 바뀔 수 있다는 걸 느낀다. 그것 때문에 이걸 틀어드리기도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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