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살 어린 팀장과 일하다가 직장 옮겼습니다
결코 달라질 것 같지 않은 현실 세계의 직장생활에 질리고 지쳤다. 무기력하게 누워있던 주말, OTT가 부지불식간에 눈과 마음에 들어와 앉아 버렸다. 직장생활 전문가로서, OTT 속 직장생활 노하우를 현실에 담아본다. <편집자말>
[장한이 기자]
▲ 드라마 '꼰대인턴'의 한 장면 주인공 이만식 부장이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
ⓒ MBC |
"저보고 창고 관리나 하라고요? 제가 뭘 잘못했다고요?"
"꼭 뭘 잘못해서가 아니라...."
"내가 늙었다고요?"
"우리 나이 되면 선별 대상 되는 거 알잖아."
"왜 하필 저냐고요? 그래서 지방으로 발령 내셨어요? 누가 봐도 그만두라는 소리잖아요."
MBC 드라마 <꼰대인턴>(2020년 방영)에서 잘 나가던 이만식 부장이 하루아침에 지방사업장 물류센터로 발령이 났다. 내심 임원 승진을 기대하고 있다가 벌어진 참사였다. 늙어서, 낡아서 회사에서 밀려나는 경우는 현실에서도 비일비재하다.
국내 대기업의 3세 경영에 대한 기사가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MZ세대 경영인들이 지속해서 등장하면서 임원급을 비롯해 연쇄적으로 조직 내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다.
최근 한 대기업이 정기임원 인사에서 1980년대생 신규임원을 대거 발탁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기업은 3세 경영을 이미 시작했고, 부회장이 1980년대 태어난 MZ세대다.
지난해 화장품 등을 제조하는 한 중견기업은 70년대에 태어난 고참 팀장들을 팀원으로 강등시키고, 팀원이었던 MZ세대를 팀장으로 물갈이했다. 하루아침에 팀원으로 밀려난 팀장들은 퇴사 강요라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단다. 실력과 경력 관리 등의 문제가 아닌 나이로 묶여 피해를 본 이들도 분명 적지 않을 것이다.
거창하게 오너 일가를 들먹이지 않아도 조직에서 이런 풍경은 낯설지 않다. 국내 대기업에 다니는 1972년생 선배(팀장)는 최근 20년 넘게 다닌 회사를 그만뒀다.
"오너가 50살 넘은 사람은 임원 시키지 말라고 그랬대. 그리고 선배님, 팀장님이라고 부르던 후배가 임원인데 어떻게 회사에 다니겠니."
회사가 원하는 바일지도 모르지만 남 일 같지 않기에 선배 감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다.
▲ 드라마 '꼰대인턴'의 한 장면 시니어 인턴으로 재취업 한 주인공이 과거를 떠올리며 고민하고 있다. |
ⓒ MBC |
파격 인사를 단행하는 기업들은 대부분 세대교체를 이유로 든다. 미래를 위한 준비라고도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발탁되는 사람이 있으면 등 떠밀려 물러나는 사람도 있다. 무능하게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이들도 분명히 있지만, 앞서 언급한 사례처럼 실력이나 경력을 떠나 나이 때문에 피해를 보는 경우는 억울하지 않을 수 없다.
나 역시 8개월 정도 두 살 어린 팀장과 일한 적이 있다. 능력 있는 입사 선배였기에 아무렇지 않았고 사이도 좋았다. 그런데 주변 사람이 문제였다.
"정말 괜찮아? 괜찮은 거지?"
"팀 옮겨 달라고 해."
"근데 팀장이 더 불편할 수도 있어."
주변에서 이상한 분위기를 조성해 몰아가는 바람에 졸지에 나이 많은 초라한 팀원이 되었다. 위로랍시고 내던진 '팀장이 불편하겠다'는 말에 그전에 없던 불편한 마음이 생겨났다. 40대 중반에 15년 다닌 회사를 나오는 게 쉽지 않았지만 이직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다.
MZ세대 팀장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나이에 제한을 둔 기업도 꽤 있었다. 이직한 회사의 팀에 필요한 나이대에 내 나이가 들어맞은 덕분에 무시무시한 허들을 넘을 수 있었다.
이직한 회사는 젊은 조직이다. 나보다 젊은 팀장이 대부분이다. 계열사에는 동갑 임원뿐만 아니라 동갑 대표이사도 있다. 조직에서 나이 때문에 눈치 보는 낡은 직장인이 되어가는 현실이 서글프다.
남들과 비슷한 나이대에 보직을 맡지 못하거나 진급에서 밀리면 후배가 상사가 되는 일도 벌어진다. 본인은 아무렇지 않아도 회사의 의도와 주변의 호들갑이 시너지를 발휘하면 직장생활은 꼬인다. 그래서 조용히 제 발로 나가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한국에서 '법정 정년 60세'가 시행된 지 8년째다. 100세 시대다. 최근에는 정년 65세 연장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직장인들은 '정년'이라는 단어 자체를 실감하지 못한다.
'라떼'에 사로잡힌 전무님은 "너희들은 정년까지 다니려면 15년 이상 회사 생활해야 하잖아. 주도적으로 일 하면서 멀리 봐. 멀리"라는 말을 자주 한다. 시대는 변했다. 코 앞일도 모르는 게 직장인의 삶이다.
"우리 회사는 정년이 58살인데, 그때까지 다니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
중견기업에 다니는 한 친구가 말했다. 한 취업포털 사이트에서 20∼40대 직장인을 대상으로 정년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스스로 퇴직하고 싶은 나이'는 평균 60세였고, '실제 퇴직할 것으로 예상하는 나이'는 평균 53.1세였다. 젊은 세대의 약진에 밀려나는 기성세대가 처한 현실이자 많은 직장인의 미래 아닐까.
신입사원부터 시작해 직장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기에 지금의 상황이 크게 낯설지는 않다. 다만 경력과 연륜을 바탕으로 한 실력과 필요성이 아닌 나이 때문에 등 떠밀리는 경우가 늘어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결국 모두 떠나야 하는 직장이다. 떠나는 이들의 초라함과 서글픔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줄 수는 없을까. "알아서 퇴사하라"고 하지 말고 마음의 준비를 할 기회라도 줘야하지 않을까.
▲ 드라마 '꼰대인턴'의 한 장면 주인공 이만식 시니어 인턴이 재취업한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PPT를 배우고 있다 |
ⓒ MBC |
드라마 <꼰대인턴>에서 쫓겨난 이만식 부장은 경력을 살려 동종업계 시니어 인턴으로 재취업한다. 그곳에서 자신이 부장일 때 구박하던 인턴사원을 직속 상사로 만난다. 온갖 수모를 견디며 노력했지만, 정규직 전환에 실패했다. 다시 2년 계약직으로 근무했지만, 정규직은 되지 못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다시 중장년&시니어 인턴 오리엔테이션에 도전하며 드라마는 끝난다.
드라마에서 나이 들어 회사에서 쫓겨나는 직장인의 현실적인 모습도 보았지만, 나이를 먹어도 시들지 않는 의지와 열정이 나이를 능가할 수 있다는 희망도 발견했다.
얼마 남지 않은 직장생활, 나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회사를 마무리할까. 등 떠밀려 떠나는 모습이 아닌, 당당하게 박차고 나와 씩씩하게 새 출발하는 직장인이고 싶다. 결코 시들지 않은 <꼰대인턴>의 잡초, 이만식 인턴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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