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가 저 엄마보다 낫다"... 특별했던 두 모녀 이야기
[김성호 기자]
한 세기 전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변호사 중 한 명이었던 클라렌스 대로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우리 인생의 전반은 부모님이 망쳐 놓고, 후반은 아이들이 망쳐 놓는다 (The first half of our lives is ruined by our parents, and the second half by our children)"고.
가족에 대해 사랑과 우애, 조화로움 등 온갖 아름다운 이야기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대로의 이 삭막한 말이 유독 마음에 박히는 건 왜일까. 아마도 그의 말 안에 선명한 진실이 담겨 있기 때문일 테다.
▲ 두 사람을 위한 식탁 포스터 |
ⓒ 필름다빈 |
서로를 괴롭게 하는 모녀관계로부터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은 가족, 그중에서도 모녀의 관계를 돌아보게 한다. 1시간30분짜리 다큐멘터리로, 전라북도 깊은 산골에서 대안학교 교사이자 사감으로 일하는 박상옥과 그녀의 딸 박채영의 이야기다. 영화는 여느 모녀와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둘 사이를 긴장감 있게 오가며, 딸 박채영이 겪어온 거식증의 배경을 파헤친다.
엄마 상옥은 딸에게 다가서고 싶다. 극단적인 식사 거부로 비정상적일 만큼 마른 몸을 가졌던 채영이다. 상옥은 채영을 볼 때마다 제가 좋은 엄마가 되어주지 못해 그와 같은 몹쓸 병을 겪은 게 아닐까 괴로워한다. 그녀는 제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며 문제의 단서를 찾아보려 하지만, 혼자서는 아무리 돌아봐도 해답에 이르지 못한다.
▲ 두 사람을 위한 식탁 스틸컷 |
ⓒ 필름다빈 |
어디부터 비틀린 걸까... 모녀의 역사
상옥은 한때 활동가였다. 소위 운동권이라 불리는 집단 안에서 열성적인 20대를 보냈다. 노동현장에 들어가 조합을 조직하고. 마치 세상을 주물러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어내기라도 할 것처럼 열과 성을 바쳤다. 하지만 1990년대에 이르러 학생운동의 힘을 약화되고, 동지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잠시의 이별이라 생각하며 시골 대안학교로 들어온 것도 그 즈음이었다. 정규 교육과정으로부터 한 걸음 떨어진 아이들에게 교육을 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기며 살아온 시간이 벌써 20년이 넘었다. 30대 중반의 창창한 나이에서 60이 된 오늘에 이르기까지 상옥의 삶 대부분이 이 작은 대안학교에서 이뤄졌다.
이 시간은 상옥과 채영에게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상옥에겐 운동권을 떠나 열정을 바칠 무엇을 찾은 시기였으나, 채영에겐 전혀 다른 의미였던 것이다. 지금도 열악하기 짝이 없는 곳이 많지만, 그 시절 대안학교란 지금보다도 심한 환경에 놓여 있었다. 학생들은 할 게 없어서 화투장을 손에 쥐고 시간을 때우는 게 일이었고, 교사가 부족해 상옥은 수업 외에도 온갖 잡무를 떠맡으며 제 삶을 갈아 넣었다. 말이 기숙사지 공동 공간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에게 상옥은 교사를 넘어 어른이고, 엄마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 두 사람을 위한 식탁 스틸컷 |
ⓒ 필름다빈 |
엄마를 잃은 소녀의 이야기
채영은 그 시절을 회상하며 말한다. 고작 열 살 남짓의 어린 아이가 학교에서 엄마를 엄마라 부르지 못했다고 말이다. 엄마는 모두에게 정겨운 사감이고, 저는 늘 엄마를 가까이 하는 언니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으므로 저만 엄마라고 부르지 못했다 말한다. 지금 보면 누가 제 엄마를 엄마라 부르는 걸 막았느냐 할 수도 있는 노릇이지만, 사춘기에 접어들지도 않은 어린 아이가 제게 가장 가까운 혈육조차 갖지 못한 시기를 보냈단 걸 생각하면 그리 쉽게 바라볼 수만도 없는 일이다.
영화는 호주 숙소에서 채영이 생활하는 장면을 담으며 "엄마의 삶과 내 삶이 별개라는 걸 해내고 싶다", "엄마가 나한테 영향을 미친 게 있지만, 그걸 감당해내는 게 내 삶이다. 책임을 엄마한테 묻지 않고" 같은 목소리를 덧입힌다. 채영에게 엄마에 대한 충족되지 못한 애정이 크다는 사실을, 이제야 비로소 엄마의 삶과 한 걸음 떨어져 저를 바라보려 시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두 사람을 위한 식탁 스틸컷 |
ⓒ 필름다빈 |
여성서사가 외면하는 아빠의 자리
상옥은 말한다. 제가 엄마와 모녀사이인 게 싫은 것과, 제가 딸과 모녀사이이고 싶은 마음이 복합적으로 들곤 한다고 말이다. 그녀는 제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저의 조문객을 받지 않았을 만큼 괴로운 사이로 지내왔음을 알리고, 제가 사랑하는 딸 또한 엄마로부터 저를 거치는 3대의 연결선상에 있다는 사실을 수시로 깨닫는다 말한다. 지극히 개인적이어서 영화가 깊이 담아내지 못한 이 가족의 3대에 걸친 여성 서사 가운데 누구도 온전한 승리자는 없다. 받아야 할 사랑을 받지 못한, 그로부터 생긴 엄마에 대한 불만과 미움으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치는 피해자들만 있을 뿐이다.
채영은 이에 대해 "우리 엄마가 저 엄마보다는 괜찮은 엄마구나" 싶었다고 말하면서도 "엄마가 할머니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약간 밑바닥을 본 것 같다"고 이야기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아무렇지 않게 서로를 찌르는 말들이 오가는 동안, 너무 많은 시간과 사연이 자리해 말 몇 마디로 이를 수 없는 간격이 둘 사이에 생겼음만 깨닫게 된다. 엄마는 다가서려 하지만, 딸과의 사이엔 영원한 평행선이 놓여 있다. "너랑 나랑은 영원한 평행선일까?"하고 묻는 엄마에게 "평행선도 나쁘지 않아"하고 말하는 딸의 모습은 끝끝내 좁혀지지 못할, 회복될 수 없는 관계가 있음을 알게 한다.
흥미로운 건 영화 내내 아빠의 존재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는 채영으로부터 상옥을 거쳐 할머니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서도, 채영이 자연스레 느꼈을 아빠의 부재에 대해서는 단 한줌의 정보도 주지 않는다. 이러한 선택적 집중으로부터 누구는 연대기적 여성서사가 주는 특별한 감흥을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하나의 문제 아래 자리한 여러 이유를 총체적으로 살피는 데는 편협한 시각이 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을 갖는다.
엄마와 딸의 복잡미묘한 관계로부터, 개인사에서 연유한 거식증이란 질병, 그로부터 건강한 나를 되찾으려는 발버둥까지를 여성 중심의 시각에서 짚어나가는 보기 드문 영화다. 바로 이 점만으로도 이 영화에 기꺼이 박수를 치려는 관객이 적지만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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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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