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은 저주였을까... 판타지 출연한 배우들, 이후는?

양형석 2023. 10. 21.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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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소설 원작 <나니아 연대기:사자,마녀 그리고 옷장>

[양형석 기자]

영화계에서는 하나의 영화가 크게 흥행하면 비슷한 장르의 영화들이 대거 제작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난 2002년부터 2005년까지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이 개봉했을 때는 오히려 충무로에서 복수관련 영화들의 제작이 위축됐다. 어설프게 복수를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었다가는 시너지는커녕 박찬욱 감독이 만든 '복수 3부작'의 완성도와 비교되면서 관객들의 비난을 받을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이유로 할리우드에서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 판타지 영화의 제작이 위축됐던 시절이 있었다. 뉴질랜드 출신의 피터 잭슨 감독이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동명의 판타지 소설을 원작으로 한 판타지 모험액션 <반지의 제왕> 트릴로지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피터 잭슨 감독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반지의 제왕> 이전의 이야기를 다룬 또 하나의 삼부작 영화 <호빗> 시리즈를 만들며 '판타지 영화의 거성'임을 재확인했다.

피터 잭슨의 존재 때문에 소설을 원작으로 했던 많은 판타지 액션영화들이 본의 아니게 <반지의 제왕>과 비교 당하면서 한 동안 재미와 완성도가 과소평가되곤 했다. 하지만 2005년에 개봉했던 판타지 소설 원작의 이 영화는 2005년 북미흥행 2위, 세계흥행 3위를 기록하며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영국의 C.S.루이스 작가의 판타지 소설을 영화화했던 <나니아 연대기: 사자,마녀 그리고 옷장>이었다.
 
 <나니아 연대기:사자,마녀 그리고 옷장>은 피터 잭슨 감독의 차기작 <킹콩>보다 높은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 브에나비스타인터내셔널코리아
 
봉준호 감독도 반한 영국의 연기본좌

스코틀랜드의 유서 깊은 가문에서 태어난 틸다 스윈튼은 케임브리지 대학 진학 후 배우의 길을 선택해 극단에서 활동하던 중 고 데릭 저먼 감독에게 발탁됐다. <카라밧지오> 등 저먼 감독의 대표작들에 출연하며 경험을 쌓던 스윈튼은 90년대까지만 해도 경력에 비해 대중적인 인지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러던 2000년, 스윈튼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을 맡은 대니 보일 감독의 <비치>에 출연하면서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2001년 <바닐라 스카이>의 레베카, 2005년 <콘스탄틴>의 천사 가브리엘을 연기하며 인지도를 쌓은 스윈튼은 같은 해 <나니아 연대기>에서 악역 하얀 마녀 역을 맡으며 관객들에게 자신의 얼굴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스윈튼은 2007년 조지 클루니와 함께 <마이클 클레이튼>에 출연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고 2008년에는 데이빗 핀처 감독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로 런던비평가협회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그렇게 연기 잘하는 배우로 할리우드에서 자리를 잡아가던 스윈튼이 국내 관객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2013년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출연이 결정적이었다. 열차의 2인자인 메이슨 총리 역을 맡은 스윈튼의 연기는 남자로 설정했던 캐릭터를 여성으로 바꿀 정도로 봉준호 감독을 매료시켰다. 그 후 스윈튼은 <옥자>의 루시와 낸시 미란도(1인2역), 내년 개봉 예정인 신작 <미키17>까지 봉준호 감독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대중들에게 익숙한 스윈튼의 또 다른 대표 캐릭터는 바로 <닥터 스트레인지>와 <어벤저스: 엔드게임>의 에인션트 원이다. 에인션트 원은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사고로 손을 크게 다친 스티븐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 분)에게 멀티버스의 개념을 알려주는 스승 역할을 했다. <어벤저스: 엔드게임>에서는 <어벤저스1>의 시간대에서 시간여행을 한 '헐크' 브루스 배너(마크 러팔로 분)와 만나 브루스에게 타임스톤을 건네줬다.

스윈튼은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렸던 2020년대에도 <메모리아>,<프렌치 디스패치>,<3000년의 기다림>,<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 등 여러 작품에 출연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스윈튼은 지난 8월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고 국내에서 오는 25일, 북미에서 27일에 개봉하는 데이빗 핀처 감독의 12번째 장편영화 <더 킬러>에서 마이클 패스밴더와 연기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복잡하지 않은 스토리와 화려한 볼거리
 
 하얀 마녀를 연기한 틸다 스윈튼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며 국내 관객들에게도 매우 친숙한 배우가 됐다.
ⓒ 브에나비스타인터내셔널코리아
 
<나니아 연대기: 사자,마녀 그리고 옷장>은 영국 출신의 작가 겸 비평가인 고 C.S. 루이스가 1950년부터 1956년까지 발행한 7편의 판타지 소설 시리즈 중 가장 먼저 발표한 <사자와 마녀와 옷장>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나니아 연대기>는 2008년 <캐스피언 왕자>와 2010년 <새벽 출정호의 항해>까지 세 편에 걸쳐 영화화됐고 <사자,마녀 그리고 옷장>은 200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돼 분장상을 수상했다.

<사자,마녀 그리고 옷장>의 장점이자 단점은 바로 복잡하지 않은 단순한 스토리에 있다. <사자,마녀 그리고 옷장>은 우연히 옷장 속 나니아라는 세로운 세상을 발견한 네 남매가 정의의 사자 아슬란(리암 니슨 분)과 함께 나니아를 지배하려는 하얀 마녀(틸다 스윈튼 분)를 막아내는 이야기다. 중간에 셋째 에드먼드(스캔다 케인즈 분)의 배신이 나오지만 에드먼드는 배신의 속도만큼 속죄와 반성의 속도도 상당히 빨랐다.

<반지의 제왕>이 보여줬던 웅장한 분위기와 엄청난 규모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피터(윌리엄 모즐리 분)가 이끄는 아슬란의 부대와 하얀 미녀의 부대가 격돌하는 전투씬도 관객들에게 상당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피터가 승산이 높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나니아와 아슬란을 위하여"라고 외치며 진격하는 장면은 꽤나 멋지게 연출됐다(하지만 이 장면은 12년 후 <어벤저스:인피니티 워>의 "와칸다 포에버"가 나오면서 초라하게 묻히고 말았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네 자매의 연기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특히 이야기의 발단이 되는 옷장 속 나니아를 발견하는 막내 루시를 연기한 조지 헨리는 깜찍한 표정연기로 관객들을 무장해제시킨다. 고작 과자 때문에 형제들을 배신하는 에드먼드 역시 중반까지는 얄미운 배신자 연기를 선보이다가 아슬란에게 정신교육(?) 및 개인상담을 받은 후 정신을 차리고 하얀 마녀 부대와의 전투에서 멋진 활약을 선보였다. 

<사자,마녀 그리고 옷장>은 1억80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 7억4500만 달러의 높은 흥행성적을 올렸고 3년 후 2편 <캐스피언 왕자>를 선보였다. 하지만 2억5000만 달러의 많은 제작비가 들어간 <캐스피언 왕자>는 4억1900만 달러의 실망스런 성적에 그쳤다. 그 후 제작사 디즈니는 <나니아 연대기>의 판권을 20세기 폭스에 넘겼고 20세기 폭스는 2010년 <새벽 출정호의 항해>로 간신히 '본전치기'에 성공한 후 시리즈를 마무리했다.

<엑스맨> 프로페서 X의 신인시절
 
 <나니아 연대기>에서는 신인에 가까웠던 제임스 맥어보이는 2008년 <원티드>를 통해 흥행배우로 급성장했다.
ⓒ 브에나비스타인터내셔널코리아
 
1993년 <쉰들러 리스트>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해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전성기를 연 배우 리암 니슨은 <나니아 연대기>에서 아슬란 목소리를 연기하면서 성우로서 가능성을 발견했다. 아슬란은 원작 소설에서도 7권 모두에 출연하는 <나니아 연대기>의 '진주인공'으로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에서도 매우 중요한 인물로 등장했다. 특히 죽음 후 돌탁자에서 부활하는 장면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는 의견도 있었다.

<사자,마녀 그리고 옷장>에는 이 영화 출연을 계기로 유명배우로 떠오른 신예스타도 있었다. 바로 <엑스맨> 뉴 트릴로지의  찰스 자비에 교수와 <원티드>, <23 아이덴티티>,<그것: 두 번째 이야기> 등에 출연했던 제임스 맥어보이가 그 주인공이다. 맥어보이는 <사자,마녀 그리고 옷장>에서 루시가 나니아에 들어와서 처음 만난 툼누스를 연기했다. 루시를 돕다가 하얀 마녀에게 잡혀 돌로 변한 툼누스는 부활한 아슬란의 입김을 맞고 다시 살아난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헤르미온느' 엠마 왓슨은 <미녀와 야수> 실사판으로 10억 달러 흥행을 견인했고 '해리 포터' 다니엘 레드클리프도 꾸준히 배우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나니아 연대기>의 4남매는 상대적으로 그리 크게 성장하지 못했다. 네 명의 배우 모두 <나니아 연대기>를 끝낸 후에도 배우활동을 이어가고 있지만 <나니아 연대기>에 버금가는 또 다른 대표작을 만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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