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진실을 머금은 일본 관동의 봉선화

[1923 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모제 동행기 4]

저는 지난 9월 2~7일, 씨알재단(이사장 김원호)이 주관한 '일본 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모제'에 참석하고 왔습니다. 관동대학살은 1923년 일본 관동대지진 때 일본 관헌과 민간인들이 재일조선인을 무참히 살해한 사건을 말합니다. 학살 당한 대부분이 먹고 살 길을 찾아 현해탄을 건넌 일용직 노동자에, 부두 하역 잡부들, 그리고 그 식솔들이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씨알(민초)이었을 뿐인데... 가슴이 아리고 눈물이 납니다. 그 원혼들을 달래기 위해 치른 5박 6일간의 추모제 동행기를 쓰고자 합니다. <기자말>

[신아연 기자]

▲ 100년의 진실을 머금은 일본 관동의 봉선화 ⓒ 장영식

 
(*지난 기사, '어느 추모비 앞에 놓인 참이슬과 신라면'에서 이어집니다)

오늘은 일본사람들이 만든 재일조선인 관동대학살 추모단체의 이름이 왜 '봉선화(호센카)'인가를 말씀드리겠다고 했지요?

그 답은 추모제 때 발표한 씨알재단 김원호 이사장의 일본 정부를 향한 촉구문으로 대신합니다.

"지난 여름, 저희 집 화단 한 편에 봉선화가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언제 한 번이라도 화사한 적 없이 늘 수줍던 봉선화, 그럼에도 올해 그 모습이 유난히 처연했습니다. 마치 100년 전 일본 관동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조선인들의 넋으로 피어난 듯...

1923년, 9월 1일, 관동대지진이 발생한 지 올해로 꼭 100년이 되었습니다. 정오 무렵, 도쿄를 중심으로 한 진도 7.9급의 초강력 지진이었습니다. 지진의 여파는 곧바로 대화재로 이어졌고, 도쿄, 요코하마를 비롯한 관동 지역 일대가 궤멸되다시피 초유의 피해가 발생, 사망자, 행방 불명자가 14만, 이재민은 무려 340만 명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역대급 지진보다 더 잔혹한 일은 그 다음에 발생했습니다.

참변에 절규하던 국민의 원망과 시선을 돌리기 위해 일본 정부는 희생양을 급조했습니다. 재난의 주범이 재일 조선인이라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관동대지진을 '관동대학살'로 몰아간 것입니다. 폭도로 변한 조선인들이 불을 질렀고, 우물에 독을 탔고, 일본인들을 몰살시키려 한다는 날조된 소문이 삽시간에 퍼지면서 7천 명 가까운 조선인이 그 자리에서 살해당한 것입니다.

학살이 가장 먼저 행해진 동경과 가나가와현에서는 군대와 경찰이 주동이 되어, 지바·사이타마현 등지에서는 자경단까지 구성하여 죽창·일본도·곤봉·철봉 등으로 부녀자와 어린아이들까지 닥치는 대로 무차별 학살했습니다. 심지어 시신조차 찾을 수 없도록 악랄한 조처를 취했습니다.
 

▲ 100년 전 학살된 조선인의 피로 흘렀던 도쿄 인근 아라카와 강 ⓒ 장영식

 
잊혀진 세월 속에서 60년이 지난 어느 날, 지역 조사를 하던 일본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인근의 아라카와 강이 학살당한 조선인들의 피로 흐른 사실을 알게 되면서 '호센카(봉선화)'라는 이름의 추모단체를 만들어 추도식을 열고 추모비를 세웠습니다. 일제 강점기, 작곡가 홍난파가 조선인들의 고난을 위로하기 위해 지은 '울 밑에선 봉선화'에 착안했던 것이죠. 일본에 건너와 열악하고 험한 일을 하던 조선사람들이 시름을 달래며 '울 밑에선 봉선화'를 흥얼거리던 것도 떠올랐다고 합니다. 추모비 주변에는 봉선화도 심었습니다. 뒤로는 무궁화를 심었습니다. 

그 많은 희생자의 유해도, 유골도 행방이 묘연한 채 또다시 세월만 무심히 흘러 어느덧 100년이 지났습니다. 한 세기가 다 가도록 진상조사도, 사건 규명도 이뤄지지 않은 채 말입니다.

이제 더 이상은 미룰 수 없습니다. 더는 기다릴 수 없습니다. 더는 참을 수 없습니다. 더는 숨기지 말아야 합니다. 숨겨서도 안 됩니다.

일본 정부는 수치스러운 역사적 과오 앞에 용기를 내기 바랍니다. 대한민국에 용서를 빌고, 일본에 양심을 돌려주며, 인류에 사죄하기를 요청합니다. '100년의 진실'이 낱낱이 드러나고 고백되어지며, 충분하고 적절한 사후조치가 즉시 이행되어지기를 강력히, 간곡히 촉구합니다.

2023년 9월 2일
씨알재단 이사장 김원호"
     

▲ 호센카(봉선화)집에서 관동대학살 희생자를 추모하는 두 여성 ⓒ 장영식

 
(* 다음 기사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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