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그날엔]안철수·이준석 악연…'병X' 욕설징계의 속사정
욕설이 징계의 배경? 정치 노림수 논란도
질긴 정치적 악연, 총선 정국에선 어떻게
편집자주 - ‘정치 그날엔’은 주목해야 할 장면이나 사건, 인물과 관련한 ‘기억의 재소환’을 통해 한국 정치를 되돌아보는 연재 기획 코너입니다.
“저는 아픈 사람 상대하지 않는다.”(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악마의 눈물 쇼를 보여줬다.”(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과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설전이 점입가경이다. 이준석 전 대표는 안철수 의원을 ‘아픈 사람’에 비유했다. 안철수 의원은 이준석 전 대표의 국회 기자회견과 관련해 ‘악마의 눈물 쇼’라고 평가했다.
정치인은 격한 언어로 말싸움을 할 때가 있다. 보통은 여당과 야당 정치인 사이에서 그런 말이 오간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극한 대립 상황에서도 적정선은 넘지 않도록 노력한다. 정치에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얘기처럼 언제 손을 잡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정치인 안철수와 이준석은 지난해 3월 대선을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던 대표적인 이들이다. 서로의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 목표는 똑같았던 셈이다. 두 사람은 지금 한 지붕(국민의힘) 아래에서 적정선을 넘어서는 대립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문제는 이념이나 노선, 정책을 둘러싼 대립을 넘어 감정싸움으로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관계가 회복 불능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정치 프레임의 측면에서 본다면 이번 대립은 정치인 이준석에게 불리한 요소가 있다. 국민의힘은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이후 충격과 혼란을 겪고 있다. 선거에서 대패하면 책임 소재를 따지기 마련인데 '안철수-이준석' 대립 구도가 여권 성향 지지자들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정치인 이준석은 본인 의지와는 무관하게 강서구청장 패배 책임론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윤석열 대통령과 각을 세우며 향후 정국의 포석을 이어가던 정치인 이준석의 밑그림도 흔들리고 있다. '윤석열-이준석' 대립 구도가 아니라 '안철수-이준석' 대립 구도가 형성되는 것 자체가 정치인 이준석에게는 달갑지 않은 그림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인 안철수의 정치인 이준석 공격은 정치적으로 일정 부분 효과가 있었다. 다만 차기 대선을 꿈꾸는 정치인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정치인 안철수는 덧셈 정치를 토대로 여권의 우호 그룹을 넓혀야 차기 대선 레이스에서 힘을 받을 수 있는데 정치인 이준석과의 신경전은 뺄셈 정치의 일환이다.
정치인 이준석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정제되지 않은 언어를 노출한 것도 부담 요인이다. 당의 대표를 지낸 정치인을 향해 '악마'라고 표현하는 것은 한국 정당사에서 이례적인 장면이다. 결과적으로 정치인 안철수는 정치인 이준석의 정치 행마에 일정 부분 제동을 거는 데는 성공했지만, 본인도 만만찮은 내상을 입게 됐다.
두 사람이 서로 상처를 주면서 대립하게 된 배경은 정치권의 관심 대상이다. 정치 악연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2016년 제20대 총선이다. 당시 서울 ‘노원구 병’ 지역구 국회의원을 놓고 경쟁했다.
정치인 안철수는 국민의당 후보로 나섰고, 정치인 이준석은 새누리당 후보로 출전했다. 더불어민주당도 후보를 냈는데 3위에 그쳤다. 안철수 후보와 이준석 후보의 총선 맞대결은 안철수 후보의 완승으로 끝이 났다.
당시 안철수 후보는 52.3%를 득표했고, 이준석 후보는 31.3%를 득표했다.
서울 노원구 국회의원을 놓고 경쟁했던 두 사람의 관계가 지금의 원한을 가져온 배경일까. 2016년 총선 당시의 감정적 앙금이 남아 있다는 게 중론이지만, 선거 무대에서의 경쟁만으로는 두 정치인의 감정 다툼을 설명하기 어렵다.
정치 악연의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2019년 10월18일 바른미래당 윤리위원회의 징계 결정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바른미래당 윤리위원회는 이준석 최고위원이 안철수 전 대표를 비하했다는 이유로 ‘당직 직위해제’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이준석 당시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은 최고위원 자격과 서울 노원병 지역위원장직을 모두 내려놓아야 했다.
문제의 발언은 2019년 3월25일 바른미래당 주관 청년정치학교 입학식 관련 행사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인 이준석은 정치인 안철수를 겨냥해 '병X' 등의 욕설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석에서 한 발언이라는 반박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중징계의 대상이 됐다.
당시 바른미래당 징계는 논쟁의 대상이었다. 이른바 정적 죽이기 일환으로 윤리위원회 징계 결정이 이뤄졌다는 지적도 있었다. 당시 정치인 이준석은 바른미래당 윤리위원회 결정과 관련해 “사당화의 도구로 윤리위원회가 사용되는 것 자체도 개탄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안철수 의원 쪽 관계자는 21일 "2019년 징계 결정은 손학규 지도부와 이준석 최고위원 사이 갈등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안 전 대표는 독일에 있었고, 2020년 정계 복귀 선언 전까지 국내 정치에 관여하고 있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당시 징계 결정은 이준석의 전 대표의 정치 인생에서 진한 시련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2019년 10월 바른미래당은 분열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같은 정당에 몸담았지만 2020년 4월 총선을 바라보는 시각은 서로 달랐다.
당내 헤게모니 다툼이 거세게 일었다. 정치인 안철수와 정치인 이준석은 서로 대척점에 있었다. 바른미래당 윤리위원회 결정은 갈등을 자극하는 기폭제가 됐다. 두 사람은 모두 바른미래당을 떠나 새로운 길을 찾았다. 다시는 함께하지 않을 관계로 보였지만, 현재 두 사람은 국민의힘이라는 같은 공간에 있다.
두 사람은 대선 정국에서 여권의 '정치 대주주'로서 정치적인 위상을 높였지만, 2023년 10월 현재 정치적 입지는 예전 같지 않다.
서로 다른 이유로 권력의 주류에서 한 발 떨어져 있다. 총선은 6개월도 남지 않았다. 총선 과정에서 두 사람은 어떤 길을 걷게 될까. 만약 정계 개편의 소용돌이가 여권을 휘감게 된다면 두 사람의 정치적 선택은 무엇일까. 그들의 정치적 관계는 앞으로도 계속 악화할까. 아니면 정국의 변화 속에서 극적으로 손을 잡는 상황이 만들어질까.
정치인 안철수와 이준석의 질긴 악연의 드라마, 내년 4월 총선 정국에서 그들의 역할이 궁금해진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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