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가 만사인데…국민 눈높이 벗어난 인선에 '회초리' [중도층의 경고 ②]
여야 합의 없이 임명 강행한 장관급도 18명
부정평가 이유로 '독단적' '인사 문제' 등 꼽혀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다. 좋은 인재를 잘 선택해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일하게 하는 것이 모든 일을 잘 풀리게 하는 순리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 1년 5개월 만에 치러진 10·11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여권의 완패로 귀결된 건, 독단·독선적인 인사가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는 중도층의 표심에 악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20일 한국갤럽에 따르면, 지난 17~19일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수행을 평가한 결과 긍정평가는 30%로 직전 조사(10월 10~12일)보다 3%p 하락했다. 부정평가는 61%로 3%p 올랐다. 대통령 국정 지지율 30%는 지난 4월 둘째 주(27%) 올해 최저치를 기록한 이후 6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부정평가 이유로는 △경제·민생·물가(17%) △독단적·일방적(10%) △소통 미흡(9%) △통합·협치 부족(6%) △인사(4%) 등이 꼽혔다. △독단적·일방적 △소통 미흡 △통합·협치 부족 항목은 '인사 문제'와도 연관 지을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실제 정치권에서는 인사 문제가 중도층 민심 이반의 결정적 요인이 됐다고 분석하고 있다. 천하람 국민의힘 순천갑 당협위원장은 최근 한 라디오방송에서 "지금 용산(대통령실)과 우리 당, 정부·여당이 험지 메이커다. 서울·수도권 선거를 험지로 만들고 있는 것"이라며, 연이은 인사 참사를 그 중 한 요인으로 꼽았다.
천 위원장은 "민주당의 불공정에 실망해서 넘어왔던 스윙보터들도 윤석열 정부 출범하고, 인사 하고, 인사 참사 나오고 똑같이 낙하산 인사하고, 여러 가지로 잘못했는데 오리발 내밀고 이런 거 하는 거 보면서 (여권에 실망했을 것)"이라며 "민주당에 실망해서 공정과 상식 찾아서 왔더니만 여기도 공정과 상식이 없네 하고 다시 돌아가 버렸다"라고 꼬집었다.
지난 12일 자진사퇴한 김행 전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사례가 대표적이다. 김 전 후보자는 지난달 여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뒤 '주식 파킹'(우호적 제3자에게 주식을 맡겨 두는 것) 등 여러 의혹이 잇따라 불거졌는데도 제대로 된 소명 없이 국회 인사청문회 도중 퇴장해 여론 악화를 초래했다. 김 전 후보자를 두고 '김행랑(김행+줄행랑)'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이명박 정부 시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연루 의혹이 제기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여야 합의로 부적격 의견이 병기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가 채택됐으나, 윤 대통령은 지난 7일 유 장관을 임명했다. 특히 '막말' 논란 등에 휩싸인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 강행됐다. 현 정부 들어 18번째 사례다.
앞서서는 이균용 전 대법원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헌정 사상 처음으로 부결되기도 했다. 야당의 임명동의안 부결 명분은 이 전 후보자가 '대통령의 친구'라는 점이었다. 입법·사법·행정 권력 간 견제와 균형은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기본 원칙인데, 사법부에 자기 사람을 채우는 건 이를 위반하는 것이라는 게 야당의 주장이었다. 이 전 후보자는 부동산 투기 및 농지법 위반, 비상장주식 미신고 및 배당금 수령 등 여러 의혹에도 휩싸이면서 낙마했다.
민주당이 거대 의석을 이용해 사법 공백을 일으키며 삼권분립을 훼손했다는 게 여당의 주장이었지만, 당시 국민 여론은 민주당의 손을 들어줬다. 한길리서치가 지난 7~9일 실시한 조사에서, 국민의 47.1%가 "부결은 잘한 것"이라고 응답했다. "잘못한 것"이라는 의견은 오차범위(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p) 밖인 34.5%로 나타났다. 특히 중도층에서도 부결 찬성이 52.3%로 기록됐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장 후보로 또 '친구'인 이종석 헌법재판관을 지난 18일 지명했다. 대법원장과 마찬가지로 헌법재판소장도 국회의 인사청문회와 임명 동의 표결을 거쳐야 임명할 수 있어, 윤 대통령과 이 후보자의 특수관계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민주당은 "대통령 친구의 절친이라는 이유로 부적격자글 사법부 수장으로 지명하고, 이번에는 아예 대학교 같은 과 동기 친구를 헌재소장으로 임명하다니 공사 구분이 되지 않느냐"(박성준 대변인)라고 비판했다.
비판 여론이 커지자 윤 대통령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로 드러난 민심을 겸허하게 수용하고 몸을 낮추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8일 참모들에게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 어떤 비판에도 변명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민생 현장으로 더 들어가서 챙겨야 한다"고 말했다. "차분하고 지혜로운 변화 추진"(13일), "국민 소통, 현장 소통, 당정 소통 강화"(16일)에 이은 세 번째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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