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손 기부' 유대인 잡는 바이든…그런데 민주당 둘로 갈렸다 왜

이유정 2023. 10. 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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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UPI=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전시 상태인 이스라엘을 방문해 지지 표명을 하는 승부수를 띄웠지만, 정작 미 민주당과 정부 안에서 분열된 목소리가 고개를 들고 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내년 대선을 앞두고 터진 민감한 외교 문제를 놓고 당내와 진보 진영의 입장이 엇갈리면서 바이든 대통령이 줄타기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8일 미 현직 대통령 사상 처음으로 전쟁 중인 이스라엘의 수도 텔아비브를 찾았다. 이날 ‘7시간 방문’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만나 “이스라엘의 뒤에는 미국이 있다”며 전폭적인 지지 의사를 밝혔다. 동시에 가자지구 지상 침투를 준비하는 네타냐후 정부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똑같은 방식으로 민간인에게 피해를 줘선 안 된다”며 제동도 함께 걸었다.


美여론 76% “이스라엘 지지”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이스라엘로 출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언론과 전문가 분석을 종합하면,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이스라엘 방문 배경은 비교적 명확하다. 우선 내년 대선을 앞두고 미 유권자들의 마음이 초당적으로 이스라엘 지지 쪽에 기울어 있다. 하마스에 의해 미국인 10여명이 붙잡힌 탓도 있지만, 이번 사태가 ‘이스라엘판 9.11 테러’로 알려졌다는 점도 작용했다.

지난 17일 미 퀴니피액대가 1700명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6%는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게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 중 어느 쪽에 공감하느냐’는 질문엔 10명 중 6명(61%)이 이스라엘이라고 답해 팔레스타인(13%)을 압도했다. 2021년 5월 같은 질문에 대한 응답이 각각 41%, 30%였던 걸 보면, 최근 이스라엘 지지 분위기가 급격히 커졌다.

이런 가운데 지난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 이후 하버드대 학생 단체가 낸 친팔레스타인 성명이 논란을 빚자, 뉴욕과 같은 대도시에서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이런 여론의 압력이 높아지면서 바이든 대통령이 이스라엘에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바이든, 유대인 챙기며 트럼프와 차별화


조 바이든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유대인 지역사회 지도자들과 원탁회의를 하면서 연설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하마스의 공격은 홀로코스트 이후 유대인에 대한 가장 치명적인 공격"이라고 발언했다. AP=연합뉴스
바이든에겐 민주당의 ‘전통 표밭’인 유대계 유권자들의 표심을 챙긴다는 측면도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사태 나흘 만인 11일 백악관에 유대인 단체 대표들을 초청해 “홀로코스트 이후 유대인에 대한 최대 공격”이라고 말했다. 이후 일주일이 채 안 돼 이스라엘 방문을 결정했다.

2021년 미 여론조사 기관 퓨리서치센터 조사에 따르면 미국 유권자 가운데 본인이 유대교를 믿거나 부모 등이 유대인인 유권자는 약 1000만명이다. 이는 전체 유권자 1억 6800만명(2020년 등록 기준) 가운데 6% 정도로 한줌에 불과하다. 그러나 지난 대선 바이든 캠프의 ‘큰손 기부자’ 중에는 유대인 부호가 많았다. 올해 6월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의 미국 내 유대인 유권자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2%가 “내년 선거에서 바이든을 지지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의견은 22%에 그쳤다.

NYT는“대선 경쟁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스라엘 관련 발언으로 물의를 빚는 동안 바이든 대통령이 ‘안정적인 위기관리자’ 면모를 부각한 점도 대조를 이뤘다”고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앞선 11일 집회에서 “헤즈볼라는 똑똑하다”“이스라엘 국방부는 멍청하다” 등의 발언으로 공화당 내에서도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스라엘 여론 놓고 분열한 美진보 진영


'평화를 위한 유대인 목소리' 등 진보 성향 활동가들이 18일(현지시간) 미 의회 홀에 모여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그럼에도 이번 사태는 상대적으로 공화당보다 민주당에 더 분열을 일으키고 있다. 민주당 내 초선 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34)와 팔레스타인계 러시다 탈리브(47) 의원 등 13명은 최근 “이스라엘에 즉각적인 휴전과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하며 바이든 정부를 비판했다. 진보 성향 유대 단체 회원들이 백악관·의회에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는 일도 벌어졌다. ‘평화를 위한 유대인의 목소리’ 회원 400여명이 18일 워싱턴의 의회 점거 시위를 벌이다 약 300명이 체포됐다.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최근 같은 민주당 지지자라도 세대·인종별로 특정 이슈에 입장이 크게 다른 양상을 보인다”며 “미국의 정치 지형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민주당 지지자, 심지어 유대인 가운데서도 젊은 세대일수록 팔레스타인 인권 문제를 더 중시하는 사례가 늘었다”고 덧붙였다.

앞선 퀴니피액대 여론조사에서 18~34세 유권자의 과반인 51%는 “이스라엘에 무기를 보내는 것에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이런 차이는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두드러졌다. 정치 분석 기관인 정의로운 민주당의 분석가 왈리드 샤히드는 NYT에 “바이든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포용할수록 젊은 이슬람권 유권자들은 멀어지게 된다”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선 전통적 지지층과 새로운 유권자들의 마음을 동시에 사로잡아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 셈이다.

17일 가자병원 폭발 사건으로 팔레스타인 주민 다수가 목숨을 잃은 것도 반대 여론을 악화할 수 있다. NYT의 파라 스톡만 외교 담당 논설위원은 같은 날 “이스라엘은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저질렀던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면서 “가자지구 지상 침투는 이제 실수가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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