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걸릴 일, 1분 만에… AI가 이커머스 혁신 불렀다”
“백화점 MD(상품기획자)가 판촉을 시작하면 가장 먼저 상품 사진을 찍어 디자인팀에 보냅니다. 디자인팀이 시안을 완성하면, MD는 가장 좋은 이미지 파일을 고른 뒤 문구를 삽입하기 위해 외주사에 발송합니다. 글자나 숫자 하나만 틀려도 이미지 파일을 외주사로 돌려보내고 다시 받는 일을 반복하게 됩니다. 보통은 20시간, 길면 열흘도 걸리는 일이에요. 인공지능(AI)은 그 시간을 1분으로 줄여줬습니다.”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사무실에서 지난 6일 만난 AI 스타트업 아이클레이브의 최윤내(사진)대표는 “생성형 AI의 등장이 중소형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시장에 혁신을 불러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최 대표는 20여년 전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면서 몸집보다 큰 보따리 짐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에게 발품을 파는 것만큼이나 고된 일은 온라인 쇼핑몰에 노출할 배너(banner) 이미지 제작에 매번 긴 시간을 들여 같은 작업을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최 대표는 “과거의 이커머스는 육체적으로 힘들고 반복 작업이 많은 노동집약적 산업이었다. AI가 이커머스에서 반복 작업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2015년부터 이커머스 전용 AI 개발에 몰두했다. 15개 딥러닝 알고리즘으로 300만건의 데이터를 학습한 AI ‘로보MD’를 2016년 개발했고, 5년 만에 상용화했다. 로보MD는 학습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온라인 쇼핑몰에서 고객 반응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잘 팔리는 상품’을 적합한 곳에 노출한다.
로보MD의 진가는 생성형 AI를 활용한 온라인 배너 제작에서 발휘된다. 로보MD에 상품 사진을 등록하면 온라인 쇼핑몰에 노출할 이미지 파일의 디자인과 문구가 자동으로 생성된다. 로보MD를 활용하는 온라인 쇼핑몰 운영자는 원하는 문구와 디자인을 몇 차례 클릭으로 선택하면 자사 홈페이지나 제휴한 유통 플랫폼으로 상품 배너를 노출할 수 있다. 로보MD는 실시간으로 고객 반응을 파악해 온라인 배너를 노출할 곳을 찾아준다.
최 대표는 “지난 20년간 온라인 쇼핑몰 운영 방식이 개선됐지만, 디자인 분야는 MD에게 넘어설 수 없는 한계처럼 남아 있다. 특히 중소상공인에게 디자인은 넘기 힘든 벽”이라며 “디자인 비전문가인 MD가 생성형 AI를 이용하면 3초 만에 온라인 배너를 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클레이브 고객사인 온라인 의류 쇼핑몰 A사의 경우 로보MD 도입 뒤 업무를 90%가량 줄였고, 매출은 30% 늘렸다. 최 대표는 “로보MD를 상용화한 2021년부터 고객사 숫자가 매월 평균 15%씩 늘어났다. 현재 1087개사가 로보MD를 이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1월 미국 스타트업 오픈AI의 ‘챗GPT’ 등장 이후 생성형 AI는 우리 일상으로 깊숙하게 스며들었다. 미국‧중국 빅테크 기업이 천문학적인 자본을 앞세워 세계 AI 시장을 선도하는 중에도 국내 스타트업은 조용하지만 확실한 추세로 성장하며 ‘제2의 챗GPT’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챗GPT 주도의 초거대언어모델(LLM) 분야에서도 국내 기업의 주목할 성과가 나왔다. 지난 8월 ‘하이퍼클로바X’를 출시한 네이버 외에도 코난테크놀로지, 솔트룩스, 업스테이지, 뤼이드 같은 국내 강자들이 LLM 모델을 생활에 접목했다. AI 개발에서 20년 넘게 업력을 쌓은 코난테크놀로지와 솔트룩스는 자체 LLM인 ‘코난LLM’과 ‘루시아’를 각각 선보였다. 한국은 미국, 중국, 이스라엘과 함께 ‘세계 4대 LLM 보유국’으로 꼽힌다.
업스테이지는 미국 SNS 기업 메타플랫폼스 LLM ‘라마2’를 기반으로 생성형 AI 응용 모델을 개발했다. 이 모델은 챗GPT의 상용화 초창기 LLM 모델인 ‘GPT-3.5’를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8월 세계 최대 머신러닝 플랫폼 허깅페이스의 ‘오픈 LLM 리더보드’ 평가에서 72.3점을 얻어 1위에 올랐다. 당시 GPT-3.5가 받은 점수는 71.9점이었다.
권순일(사진) 업스테이지 부사장은 “기업들이 과거부터 쌓아온 비정형데이터를 LLM으로 정형화하는 시도가 국내에서 진행되고 있다. 특히 보험업계에서 수요가 많다”고 말했다. 병원마다 다른 병원 수납 명세를 재조합하는 시도가 보험업계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다.
업스테이지는 자체 개발 AI인 ‘도큐먼트 AI’를 활용해 기업 데이터 정형화를 서비스한다. 한 번의 클릭으로 문서를 처리하면 수작업 방식 대비 82%의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다고 업스테이지는 설명했다.
권 부사장은 “지난해 챗GPT 등장 이후 생성형 AI 시장이 강한 성장성을 보이면서 다양한 사업 전략과 방향을 제시하는 해외 기업이 셀 수 없이 등장했다”며 “생성형 AI를 통해 노동의 질과 생산성을 향상하는 추세가 분명해졌다. 앞으로 생성형 AI를 사용할 수 있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 사이의 경쟁력 차이가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런 추세에서 정부는 국내 AI 시장 확대에 힘을 싣기 시작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달 13일 ‘전 국민의 AI 일상화’ 추진을 목표로 내년에 9090억원의 예산을 투입할 계획을 밝혔다. 복지, 의료, 보건, 문화, 공공행정 등 생활 영역에서 국민에게 체감되는 수준으로 AI 산업을 육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국가 주도의 AI 강국으로 올라가기 위한 과제도 남았다. LLM에서 생산되는 거짓 정보, 학습 데이터 저작권 침해, 합성 기술 ‘딥페이크’를 악용한 범죄 같은 오용과 부작용을 차단하며 성장 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해야 할 법제화는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국내에서 윤곽도 드러나지 않은 AI 관련법은 스타트업 앞에 불확실한 미래로 놓여 있다.
심민선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국회에서 AI 관련 법안 3건이 발의됐지만 아직 심사 단계를 넘어가지 못했다. 한국은 좋은 AI 기술을 개발하고도 법제화 속도에서 유럽연합(EU)이나 일본보다 다소 뒤처졌다”며 “최근에는 정치권, 산업계, 법조계, 저작권자들이 AI를 활용해 상생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긍정적인 해법을 찾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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