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공석? 국힘이 혁신위원장 못 찾는 이유

곽우신 2023. 10. 20.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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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김한길마저 "안 한다"... 계속되는 국민의힘 혁신기구 구인난

[곽우신 기자]

 국민의힘이 전국에 걸린 정쟁성 현수막을 자진 철거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인근에서 현수막 제작 직원이 국민의힘 현수막을 철거하고 있다.
ⓒ 유성호
 
"조금만 말미를 달라." -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

국민의힘이 20일 현재까지 심각한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 당초 국민의힘은 이번 주말(22일)까지 후보군을 추려서 인선을 완료하고, 다음주 월요일(23일)에는 당 혁신기구를 띄우겠다는 구상이었다. 서울특별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를 계기로 당 쇄신 작업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계획이었지만, 김기현 국민의힘 당 대표조차 기자들 앞에서 쉽지 않은 상황임을 토로하는 지경이다.

실제 여러 인물이 호명되고 있지만, 대체로 '식상하다'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혁신기구의 권한을 어느 정도나 부여할지도 미지수이다. 마땅한 카드를 뽑아들지 못하면서, 당은 내년 국회의원 총선거를 위한 분위기 일신 시작도 전에 삐걱거리는 모양새이다. 23일 발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분위기가 커지고 있다.

혁신기구, 권한도 위치도 불분명

당은 혁신기구의 장을 외부에서 영입하는 데 우선 방점을 찍고 있다. 그러나 당장 혁신기구에 권한을 얼마나 부여할지가 문제이다. 외부에서 인지도와 자질을 갖춘 인사를 영입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그에게 상당한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과거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키를 잡고 당으로 복귀한 게 좋은 예시이다.

당시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관리형'이 아닌 '쇄신형' 그것도 '전권형' 비대위를 약속받고 들어왔다. 실제로 당명과 당의 강령까지 뜯어 고치고, 기본소득 같은 의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전향적인 태도를 취하는 등 여러 변화를 주도적으로 만들어 왔다.

문제는 현재 국민의힘이 혁신기구에 그만큼의 큰 권한을 부여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당은 김기현 당 대표를 위시한 지도부 체제를 일단 유지하기로 했다. 당의 리더십을 완전히 교체하는 급격한 변혁 대신 윤석열 대통령의 주문대로 '차분한' 변화를 선택한 것이다. 임명직 당직자를 교체하며 김기현 체제 2기를 꾸린 것도, 비대위로의 전환이 아니라 당 지도부 밑에 혁신기구를 출범하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내년 총선은 김기현 대표 얼굴로 치르겠다는 취지이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있다.
ⓒ 남소연
 
이런 상황에서 혁신기구에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고, 상당한 인지도의 외부 인사를 데려오면, 사실상 당의 간판이 바뀌게 된다. 애써 현 김기현 체제를 유지하고자 한 게 도루묵이 되어 버린다. 총선까지 6개월도 채 남지 않은 시점이라 공천 문제도 걸려 있다. 혁신기구가 공천에 관해서도 건드릴 경우, 당의 리더십도 흔들릴 수 있다.

그렇다고 당 혁신기구의 권한을 제한적으로 규정하게 되면, 이 혁신기구가 당의 쇄신을 실질적으로 이끌 수 없다는 문제에 직면한다. 바로 직전 '최재형 혁신위'가 이준석 전 당 대표 축출과 함께 사실상 좌초한 것처럼, 아무리 혁신적인 제안들을 내어 놓아도 당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위기에 처하자 뒤늦게 당에서 과거 혁신안들의 수용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채널A 등을 통해서 나왔으나, 당에서는 박정하 수석대변인을 통해 공식적으로 이를 부인했다.

권한이 없는 혁신기구는 결국 총선을 앞둔 구색 맞추기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등 돌린 유권자의 마음을 다시 잡기 위해 연일 '민심'을 내세우는데, 정작 혁신기구가 장식용이라면 그 효과 역시 반감될 수밖에 없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드러난 민심은 '윤석열 대통령, 국정 기조를 바꿔라'와 '김기현 대표 체제로는 총선 어렵다', 이 두 가지인데 그 어떤 것도 혁신위원회가 건드릴 수 없는 것"이라며 "김기현 체제 유지를 위한 면피용 혁신위이기 때문에 그 한계가 뚜렷하다. 그래서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라고 짚었다.

장 소장은 "예컨대 혁신위가 '내년 총선 공천은 100% 국민 경선제로 실시하자'라고 했을 때, 용산 대통령실에서 가만히 있겠느냐?"라며 "이재명 대표가 임명한 김은경 혁신위가 민주당 혁신에 실패했듯, 김기현 대표가 임명하는 혁신위원장이 김기현 체제를 개혁할 수는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김한길 "어디 안 간다", 하태경 "독립성과 자율성 달라"

혁신위의 기능과 역할이 불분명하다 보니 그에 맞는 카드를 맞추기도 쉽지 않다. 당초 정운찬 전 국무총리 이름이 거론됐으나 윤희석 선임대변인은 백그라운드 브리핑을 통해 "특정 인물에 대해서 말씀드리기 적절하지 않다"라며 거리를 뒀다. 정운찬 전 총리 이름이 언급되는 데 대해 당내 반응도 마뜩잖다는 후문이다. 김병준 전 비상대책위원장도 이야기가 나왔으나, 이미 한 번 썼던 카드이기에 '재탕'이라는 이미지가 발목을 잡는다.

최근 하마평에 자주 오르내리는 인물은 김한길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장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신임을 크게 받는 인물이라는 점, 민주당 출신으로 중도층 호소력이 있다는 점 등이 이유로 꼽힌다. 특히 김기현 지도부 2기와의 만찬 자리에 그가 등장하면서 '김한길 등판설'이 힘을 크게 받았다. 윤 대통령은 "국민통합위의 다양한 정책 제언을 우리 당과 내각에서 좀 관심 있게 꼼꼼하게 한번 읽어달라"라고 주문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김한길 위원장 본인이 별 뜻이 없다는 후문이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김한길 위원장이 최근 국민통합위 간부회의에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끝나고 나의 거취에 대해 말들이 많은데 어디 안 간다"라며 "통합위 본연의 업무를 더욱 열심히 해야 한다. 동요하지 말고 열심히 일하라"라고 말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지난 만찬 자리는 사실상 김한길 위원장을 위한 자리인 셈이다. 당권을 김한길 위원장에게 넘기는 수순인 것"이라며 "벌써부터 바로 김한길 위원장한테 권한이 싹 다 가버리면 이제 막 다시 출범한 김기현 지도부가 너무 힘이 확 빠져버리니까 좀 빠른 감이 있다"라고 짚었다. "혁신기구를 안 거치고 추후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올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라는 예상이었다. 권한이 불분명한 혁신 기구와 사실상 총선을 책임지고 이끄는 선대위의 위상 차이 탓이다.

당 외부 인사가 마땅치 않은 만큼, 당 내부 인사에게 혁신기구를 맡기는 안도 동시에 고려되고 있다. 하지만 내부 인사 등용도 쉽지 않다. 선전 효과가 외부 인사 영입보다 떨어진다는 건 둘째치고, 이들 역시 상당한 권한을 요구하며 지도부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최고위원회 논의 자리에서 윤희숙 전 국회의원 이름이 언급되고, 부산을 벗어나 서울 도전을 선언한 하태경 의원도 거론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하태경 의원은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몇 가지 조건은 필요하다"라며 "예를 들어서 혁신위에서 결정이 된 사안은 거부하지 마라. 그리고 혁신 인사 내가 누굴 뽑든 관여하지 마라"라고 이야기했다. "독립성과 구성의 자율성"을 언급하며 "지도부에서 공식적으로 지원을 해줘야 되겠다"라는 지적이었다. 하 의원은 전권이 전제되지 않으면 "제대로 된 혁신위원장 뽑기 힘들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여기에 당 내 가장 민감한 사안 중 하나인 이준석 전 대표를 언급하며 "이준석과 연합정치"를 주장하기도 했다. 이준석 전 대표를 안고 가자는 기조의 하태경 의원을 혁신위원장으로 선뜻 뽑기는 당 지도부 차원에서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

'어떤 혁신안도 소용없다' 비판도 

최악의 경우 혁신기구의 장이 공석으로 가는 가능성까지 언급되고 있다. 워낙 인물이 없다보니 무리하게 누구를 앉혀서 덧나느니, 김기현 대표나 당 지도부 중 누군가가 직접 혁신기구를 챙기자는 아이디어이다. 실제 지난 긴급 의원총회에서 관련 사안이 언급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혁신기구 장 공석'은 곧, 당의 혁신 의지가 그만큼 부족하다는 상징으로 읽힐 수 있다. 여당에 쇄신을 요구하는 국민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겠음을 당 스스로 시인하는 셈이다. 당 안팎의 거센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김기현 대표 측도 당초 혁신기구의 장을 비워두는 방안까지 고려했으나, 최근 기류는 다시 바뀌었다. 언론과 여론의 관심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혁신기구의 장을 비웠을 때의 후폭풍을 당이 감당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임명장 수여식에 입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물론, 반론도 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훌륭한 사람을 모셔와서 혁신위원회를 맡기는 게 당연히 최선이지만, 검증이 안 된 사람을 앉혔다가 실패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공석이 나을 수도 있다"라며 "처음에야 여론의 비판을 받겠지만, 지금 이미 여러 대의 매를 맞은 상황에서 한두 대 더 맞는다고 큰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라고 짚었다. 대신 더불어민주당의 '김은경 혁신위'가 실패한 사례를 언급하며 시간에 쫓겨 무리하게 혁신기구의 장을 임명하는 게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윤 실장은 "혁신위원장이 할 수 있는 건, 기본적으로 당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인 경우가 보통이다"라며 "위원장을 누구를 앉히느냐보다 어떤 혁신안을 마련해서 당이 어떻게 바뀌는지가 더 중요하다"라고도 밝혔다.

한편, 엄경영 소장은 "혁신위원회를 여당에 설치해서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봐야 한다"라며 "어차피 권한을 다 용산이 갖고 있을 것이라면, 당을 혁신할 필요가 없다"라고 꼬집었다. 용산 대통령실이 바뀌지 않는다면, 국민의힘이 혁신위원장으로 누구를 모셔오든, 어떤 혁신안을 내놓든 무소용이라는 비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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