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다" 쓰레기 DNA 취급 받았는데…'코로나 구세주' 됐다 [BOOK]
꿈의 분자 RNA
김우재 지음
김영사
유전자 정보를 담고 있는 이중나선 구조의 DNA(디옥시리보핵산)는 알겠는데, RNA(리보핵산)에 관해서는 아직 직관적으로 뭔지 잘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RNA도 학교에서 배우기 때문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친숙하기는 하다. 다만 드라마나 영화에도 흔히 등장하는 DNA처럼 대중적이지는 않다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화이자와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이 mRNA(messenger·전령RNA)를 기반으로 제조된 사실이 널리 알려진 이후 RNA는 새로운 일상어가 되어 가고 있다. 인류가 최악의 전염병 코로나19에서 빠르게 벗어날 수 있게 한 공로를 인정받아 ‘영웅’ 커털린 커리코와 드루 와이스먼이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게 되면서 RNA도 이제 그동안 DNA가 걸었던 ‘화려한 길’을 걸어갈 채비를 마쳤다.
김우재 하얼빈공대 생명과학센터 교수가 쓴 『꿈의 분자 RNA』는 바야흐로 ‘RNA 전성시대’을 여는 바로 이런 시점에서 출간됐다. 전문 과학자들과 관계자들은 물론 일반 독자들에게도 유익한 안내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은이는 “과학자들의 훈련 방식을 익히도록 구성했다”고 밝혔다. 이 책은 RNA의 발견과 응용, 미래의 가능성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를 탐색한다. ‘혁명적인 꿈의 분자’ RNA가 어떻게 우리에게 알려지게 됐는지를 되짚어 보고, RNA가 어떻게 생명이라는 현상에 중요하게 관여하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한다.
처음에 RNA는 단순히 DNA가 가진 유전정보를 단백질로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고만 여겨졌다. 하지만 그 사이 다양한 연구를 통해 RNA가 DNA의 ‘정보 저장’과 단백질의 ‘기능’ 역할을 동시에 능동적으로 수행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DNA에서 단백질로 이어지는 단순한 경로로는 생명의 복잡성을 설명하기 힘들다는 점을 과학자들은 알아차렸다. 그 간격을 RNA가 채워 주고 있다. 생명의 역사는 RNA와 함께 시작됐을 가능성이 크다. 태초에 유전 정보와 단백질의 기능을 모두 갖춘 RNA들로 세상이 이루어졌다는 이른바 ‘RNA 세계 가설’을 대부분의 과학자가 인정하고 있다. 쓸모가 밝혀지지 않아 ‘쓰레기 DNA’ 취급을 받아왔던 98%의 DNA 대부분이 RNA로 전사(轉寫·transcript)된다는 사실, 다세포생물에 와서야 등장한 발생 과정에서도 RNA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인간과 침팬지 두뇌의 결정적 차이도 RNA 때문일 수 있음을 알려주는 증거가 발견되기도 했다.
생명현상을 조절하는 RNA의 기능이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으며, 미르(miR)라고 불리는 마이크로RNA는 생명과 진화의 비밀을 밝혀 줄 열쇠로도 주목을 받고 있다. mRNA의 꼬리 부분에 존재하는 특별한 염기서열에 미르가 결합하면 그 mRNA의 발현이 억제된다. 미르는 고등 생물의 계통발생학적 변화의 중심에 있다.
미르는 또한 개체발생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간, 췌장 등 특정 조직에서 발현되는 미르의 특성을 이용하면 특정 단계에 있는 암 환자의 종양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책에 따르면, 미르를 이용한 암 진단 및 치료 연구 등이 진행 중이다. 난치병 치료와 면역학 분야, 뇌 및 신경계 연구에도 미르가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책은 학계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교수직마저 박탈당해 하마터면 연구를 중단할 뻔했던 올해 노벨상 수상자 커리코가 겪어 온 ‘고난의 행군’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소개한다. 과학 차원에서의 RNA의 세계 못지않게 그 배경 지식, 그리고 지은이의 사회적·철학적 사고·인식의 깊이와 빼어난 글솜씨도 이 책을 빛나게 하는 ‘분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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