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월 "그대로 움직이게 둬야"…美국채 금리, 16년 만에 5% 돌파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16년 만에 5% 선에 올라섰다. 최근 미국 경기지표가 호조를 보이면서 고금리 장기화 전망에 힘이 실린 가운데,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국채금리 급등세를 사실상 용인하는 취지의 언급을 내놓으면서다. 미 10년물 국채금리는 글로벌 시장 금리의 ‘벤치마크’로 불린다.
1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미 10년물 국채금리는 이날 오후 5시(미 동부시간 기준) 연 5.001%를 찍은 뒤 4.9898%에 마감했다. 5% 선을 넘은 건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7월 이후 16년 만이다.
파월 의장은 이날 뉴욕 경제클럽 연설에서 국채금리 급등세 원인을 ‘기간 프리미엄(term premium)’ 상승으로 짚었다. 만기가 긴 채권의 경우 금리나 물가 변동 등 불확실성에 더 많이 노출되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장기 채권에 더 높은 이자를 요구하는데, 이 같은 추가 보상을 기간 프리미엄이라고 칭한다. 파월 의장은 “(국채금리 급등 요인이) 인플레이션 상승 기대나 단기적인 통화정책 조치 때문은 아닐 것”이라며 “장기채권 보유에 대한 보상인 기간 프리미엄 상승에 주로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미 연방정부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6%가량까지 확대되는 가운데 정부가 장기채권을 계속해서 발행하자 기간 프리미엄 상승에 영향을 줬다. 국채 수급 불균형과 불확실성을 키우면서다. 최근 미 소매판매 지표 등이 예상과 달리 호조를 보이면서 경기침체 우려가 완화돼 안전자산인 장기물에 대한 선호가 약해진 영향도 있다. 파월 의장은 “견조한 경제여건이 이어지면서 투자자들이 장기물에 대해 보다 높은 수익률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파월 의장은 또 이 같은 급등세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기보다는 그대로 내버려 둬야 할 것이라며 용인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미국 대형 투자자문사 에버코어ISI의 크리슈나 구하 글로벌 정책·중앙은행 전략팀 헤드는 “파월 의장이 국채 금리 상승을 용인하려고 의도한 것은 아닐 것”이라면서도 “이런 발언은 장기금리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파월 의장은 장기금리 급등세를 고려해 통화정책을 신중히 펼치겠다는 입장을 내보이며 다음 달 기준금리 동결을 시사했다. 그는 “최근 몇 달간 장기금리 상승 등으로 금융여건이 상당히 긴축됐다”며 “금융여건 변화는 통화정책 경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장기금리가 오르면 기업과 가계의 금융비용을 높여 기준금리를 인상한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질의응답 도중 “현재 통화정책이 지나치게 긴축적이지는 않다”는 매파적 발언도 있었지만, 시장은 다음 달 기준금리 동결 전망에 힘을 실었다.
Fed가 탄탄한 경기 속에서 채권시장에 주의를 기울이는 입장이라면, 경기 회복세가 둔화하는 한국 입장에선 미국 장기금리 상승으로 인한 가계‧기업이 떠안을 부담이 걱정이다. 이미 미 장기금리에 한국 국고채 장기물 금리가 동조화되면서 대출금리가 올라 경기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는 상태다. 김석환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한국은행은 1월 이후 10개월째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있지만 같은 기간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0.7%포인트 이상 상승했다”며 “미 장기금리 상승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추가 상승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허진욱 삼성증권 연구원은 “미 장기금리 상승세를 가속한 직접적인 계기가 9월 고용‧소매판매 지표의 서프라이즈였다”며 “급등세가 진정되기 위해서는 미 경기지표 둔화가 확인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장기적인 시계에서 보면 한‧미 장기금리 동조화 현상은 더욱 고민이다. 고금리에도 탄탄한 경기를 과시하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인구 고령화로 잠재성장률이 점차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향후 미국 등 선진국 주요국의 중장기 채권금리 상승세가 한국에선 얼마나 큰 파급력을 갖는지 등이 쟁점이 될 수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기자간담회에서 “취임할 땐 중장기적으로 성장률이 떨어지고 금리 수준이 낮아지는 것에 대해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컸다면, 최근 일련의 사태를 바라보면서는 선진국 금리가 올라갔을 때 한국은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크다”고 말했다.
오효정 기자 oh.hyo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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