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사건 유가족의 절규 '피해자의 인권은 어디있나'
[이준목 기자]
최근 전국 곳곳에서 불특정 다수의 시민을 향한 무차별 범죄(이상동기범죄)가 잇달아 발생하면서 사회 전반에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빈부격차와 양극화 등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인하여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외톨이가 된 이들이 '분노'를 외부나 타인에게 표출하면서 애꿎은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또한 사건 이후 가해자는 끔찍한 죄를 짓고도 반성이나 후회없이 오히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최소한의 인권을 보호받는 반면, 정작 피해자들의 인권은 보호받지 못하고 사회의 관심에서 밀려나 잊혀지는 모순은, 무차별 범죄가 낳은 또다른 부작용이다. 10월 19일 방송된 SBS 실화 스토리텔링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98회는 '옆 방 살인마-고시원 방화 살인사건' 편을 통하여 2008년 13명의 사상자를 낸 논현동 고시원 방화살인사건을 조명했다.
2008년 10월 20일 월요일 오후, 당시 횟집을 운영하던 서병호씨는 강남경찰서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병호씨는 경찰이 안내해준 병원에서 싸늘한 주검이 되어있는 막내딸 서진씨의 시신을 확인하고 큰 충격에 빠졌다.
서진씨는 당시 21세로 중국 유학 중에 휴학계를 내고 귀국했다가 불의의 변을 당했다. 그녀는 가난한 집안형편 때문에 스스로 학비를 벌기 위하여 알바를 하고 있었고, 비용과 시간을 아끼기 위하여 논현동 고시원에서 지내고 있었다. 가족들이 걱정할까봐 이를 내내 숨겨왔을 정도로 속깊은 효녀이기도 했다.
서진씨의 사인은 다발성 자상에 의한 과다출혈, 그녀의 몸에는 칼에 찔린 상처가 가득했다. 서진씨가 입주한 지 3개월 만에 고시원에서 누군가 불을 지르고 칼로 사람들을 헤치는 사건이 발생했고, 안타깝게도 서진씨는 당일 그 피해자들 중 한 명이었다.
문제의 논현동 D고시원은 5층짜리 건물의 3, 4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층당 90평 정도의 공간에 총 85개 정도의 방이 있었고, 공용공간을 빼면 방 하나당 크기가 한 평이 조금 넘는 정도로 '강남에서 가장 작은 집'이었다. 그럼에도 월 20만 원대 중반에 입지가 좋고 보증금도 없어서 가난한 서민들에겐 귀중한 보금자리였다.
당시 고시원의 입주민은 무려 70여 명에 이르렀지만, 사실상 고시생은 거의 없고 대부분 논현동 근처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었다. 각자의 사연을 지닌 다양한 세대, 환경의 사람들이 고시원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평범한 사람들 중에는 바로 희대의 살인마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건 당일인 10월 20일 월요일 아침 8시. 고시원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갑자기 화재가 발생하여 뿌연 연기가 건물을 덮치자 대피를 위하여 하나둘씩 뛰쳐나왔다. 그런데 3층 출구로 가는 유일한 길목 앞에 수상한 차림새를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머리부터 발 끝까지 검정색으로 뒤덮인 옷차림에, 머리에는 랜턴, 그리고 마스크와 물안경까지 착용하고 있었으며 허리엔 가스총, 손에는 50cm의 회칼을 들고 무장한 상태였다. 바로 이 사건의 범인이었다.
범인은 가장 먼저 김선자씨를 향해 다가와 가차없이 흉기를 휘둘렀다. 첫 희생자가 된 김선자씨는 도망가려고 했지만, 쫓아와서 수십 차례나 칼부림을 벌인 범인에 의하여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고시원은 화재로 인한 연기와 복도에서 벌어진 칼부림으로 아비규환이 됐다. 마준기(가명)씨는 소화기를 들어서 화재를 진화하려다가 범인의 공격을 받았다. 마준기씨는 중상을 입었지만 다행히 목숨을 건져 총무실로 몸을 피했다.
범인은 다시 4층으로 향하여 화재경보음을 듣고 뛰쳐나온 최정임(가명)씨와 서진씨를 잇달아 공격했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정임씨는 먼저 공격을 당하여 중상을 입은 상황에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서진씨를 구하기 위하여 범인을 붙들고 저항했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최정임씨의 동생은 "엄마니까. 누구의 엄마니까 누구의 자식이든 그냥 내 자식 같은 거다. 그건 엄마들에게 본능 같은 것"이라고 언니의 행동을 해석했다.
안타깝게도 최정임씨와 서진씨 모두 살인마의 칼날을 피하지 못하고 희생당했다. 준기씨는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다급하게 119에 신고를 하여 구조를 요청했다. 4층에 거주하던 고시생 이지섭씨는 범인의 습격으로 칼에 팔을 관통당했지만 사력을 다해 몸을 계단 아래로 굴러내리며 첫 탈출에 성공했다.
한편 범인은 다시 3층으로 돌아왔다. 총무실에 숨어서 탈출 기회를 엿보던 준기씨는 범인과 눈이 마주쳤고 그제서야 정체를 알아보고 충격에 빠졌다.
범인은 해당 고시원에 거주하던 31세의 정상진이라는 인물이었다. 정상진은 군제대 이후 논현동 먹자골목 인근에서 서빙, 주차관리 등 여러 일을 전전하며 고시원에서 5년째 거주중이었으며, 준기씨와도 안면이 있었다. 또한 그는 입이 한 번 열렸다 하면 말이 끝나지 않큼 수다스러운 '투머치 토커'로도 유명했다고 한다.
정상진은 준기씨가 살아있던 것을 발견하고는 총무실로 접근했으나, 준기씨가 문을 막고 사력을 더해 저항하는 바람에 결국 포기하고 자리를 떠났다. 고시원의 거주민들은 지옥도 속에서 각자 연기가 나도 방 안에 숨어 있거나, 목숨을 걸고 방 밖으로 뛰쳐나가거나 혹은 창문을 깨고 뛰어내리기도 했다.
소방대원들과 경찰이 현장에 도착한 건 오전 9시. 사건 발생 40분 뒤였다. 소방관들은 일단 화재부터 진압했다. 참혹했던 현장에는 곳곳에 불에 탄 흔적과 핏자국으로 가득했다. 구조대원들이 각 방을 수색하며 사람들을 하나씩 구해냈다.
범인 정상진은 무기를 버리고 피해자들 속에 섞여서 슬쩍 빠져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경찰은 온몸 곳곳에 선혈이 잔뜩 묻어있음에도 칼에 찔린 상처는 없는 정상진을 수상하게 여기고 주시한 끝에 검거했다.
논현동 고시원 방화 살인사건으로 총 6명이 사망했다. 5명이 정상진의 칼에 희생당했고, 1명은 건물에서 뛰어내리다가 추락사했다. 부상자도 7명이나 됐다. 목숨을 건진 준기씨는 다행히 대수술을 받고 5일 만에 겨우 의식을 되찾았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낯선 사람의 칼에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
정상진은 왜 그토록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을까. 정상진은 경찰 조사에서는 "살기가 싫었다", "세상이 나를 무시해서 그랬다", "사람 몇 명을 죽이면 경찰이나 다른 사람이 저를 죽여주지 않을까 생각했다"라는 횡설수설을 거듭했다고 한다.
현장에서 발견된 정상진의 노트에서는 수상한 메모들이 가득 발견됐다. "존재 가치성 없음", "집 밖에서도 가치성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생쇼만 하다가 가는 거야", "나 같은 태생은 결국 이렇게 끝나는 거야", "하는 일마다 한계에 부딪히고 삑사리 나고" 등의 글을 보면 좌절감과 피해의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정상진은 경남 합천에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정상진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초등학교 시절부터 몸집이 작고 성격도 소심해서 친구들로부터 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했다고 한다. 중1 때부터 자살을 시도한 것도 수차례였다.
심리 전문가는 "자살과 타살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공격성 자체는 똑같은데, 그 공격성이 날 향해서 공격하면 자해나 자살, 바깥으로 향하게 되면 그게 타인에 대한 공격성이나 타살로 이어지는 것이다. 소극적인 상황에서 누적이 된 스트레스가 단 한 번 적극적인 방향으로 전환이 되었는데 그게 엄청난 사고를 일으킨 것"이라고 정상진의 심리상태를 분석했다.
주변 사람들은 정상진이 말이 많기는 했지만 그리 위험해 보이는 사람은 아니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해당 D고시원의 총무는 최초로 정상진에게서 수상한 기색을 느꼈다. 고시원에서 정기적으로 소방 점검을 할 때도 유독 정상진은 5년간이나 끝까지 외부에 공개하는 것을 거부했다고 한다.
결국 사건 발생 한 달 전쯤, 참다못한 총무가 강제로 문을 따고 들어갔고, 정상진의 방을 보고서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의 방안에는 인형가게처럼 수십개의 인형과 장난감 총 등이 오와 열을 맞춰 전시되어 있었다. 정작 방바닥은 쓰레기가 가득해서 발 디딜 틈이 없었다고 한다. 그 인형들의 출처는 인형뽑기 기계에서 얻은 것이었다.
정상진은 인형뽑기에 광적으로 빠져 있었다고 한다. 목격자들은 정상진이 고시원 바로 앞 편의점에 있는 인형뽑기 기계에서 비오는 날에도 몇 시간씩 서서 하루에 60만 원까지 인형뽑기를 하는 것도 봤다고 증언했다. 정상진은 인형뽑기로 월급을 3~4일 만에 탕진하고는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으며, 총액은 1천만 원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심리 전문가는 "인형뽑기는 우연이 아니다. 그때 처한 상황이 굉장히 외롭고 사회적으로 박탈된 상황이었고, 상실감, 그리고 전혀 세상에서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이런 사람으로 생각되고 있었을 때 인형뽑기에 집착을 한 것은 탈출 수단이었을 것이다. 정상진은 그거 하나가 유일하게 도파민(흥분감)을 상승시킬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목숨 걸고 어쨌든 인형뽑기를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정상진은 인형뽑기 기계에서 인형만이 아니라 랜턴, 권총 모양 라이터 등을 얻었고 이는 모두 사건 당시 범행도구로도 활용됐다.
대량 살인을 계획한 범인들은, 허세 가득한 메시지를 종종 남기는 경우가 있다. 논현동 사건 약 1년 전인 2007년 미국 버지니아주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 조승희처럼 정상진도 그랬다. 범인들은 마치 자신이 대단한 일을 해내거나, 자신의 행위가 정당한 것처럼 포장하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상진이 범행을 결심했던 진짜 이유는 황당하고 한심했다. 정상진은 예비군 훈련을 계속 불참하며 벌금이 쌓였고, 그해 봄부터 무직 상태로 고시원 월세와 휴대폰 요금까지 미납 상황이었다. 사건 당일에 정상진은 고시원에 미납된 비용을 지불하기로 약속했고, 경찰서에도 벌금 미납으로 출석이 예정된 날이었다.
궁지에 몰린 정상진은 세상을 향한 분노를 자신이 아닌 무고한 다름 사람들에게 돌렸다. 그는 무장을 하고 자기방 침대에 불을 지른뒤, 뛰쳐나오는 사람들에게 분풀이를 하며 칼을 휘둘렀던 것이다.
정상진은 끔찍한 사건을 저지른 뒤 감형을 노린 듯 우울증과 심신미약 상태였음을 주장했다. 하지만 정신감정에서는 2년 이상 만성적인 우울증을 갖고 살아왔지만, 일종의 신경증일 뿐 현실감은 있는 상태이며 정신병질적 성격은 없어 보인다는 판정이 나왔다.
재판부는 "범행이 피고인의 치밀한 계획에 의하여 이루어진 점, 그 범행 수단이 잔혹하고 무자비한 점, 자신의 범행에 대하여 진지한 참회를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고, 피해자들과 유족들이 극도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는 점"을 고려하여,정상진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정상진은 항소하지 않았고 그대로 판결이 확정됐지만, 정작 유가족들은 법정 최고형에도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은 사형이 집행되지 않는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로 분류된다. 6명을 죽이고 수많은 가족들의 인생을 망친 정상진은 무려 15년이 지난 지금도 미집행 사형수로 아직 멀쩡히 살아있다.
피해자 유가족들은 "미칠 것 같다. 왜 비싼 세금을 가지고 밥 먹이고 잠 재우고 놀리는 건가. 내 새끼는 죽고 없는데, 정상진은 저렇게 사나 싶어서 힘들었다"며 울분을 토로했다. 내 가족을 잔인하게 살인한 범인이, 내가 낸 세금으로 먹고 자고 안전하게 지내고 있다는 사실은 유가족들을 더욱 절망하게 한다.
논현동 살인사건은 무차별 범죄의 위험성과 부작용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대표적인 사건 중 하나다. 그런데 사회적 관심이 가해자 정상진에게 집중한 사이에, 우리 사회는 또다른 중요한 이슈들을 놓칠 뻔했다.
본래 고시원의 용도는 고시생들이 시험을 준비하는 공간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서민들의 숙박시설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사건이 일어난 2008년 기준으로만 전국에 고시원은 5500여 개였다. 입주자만 20만 명에 이르렀다.
그런데 알고보니 논현동 D고시원은 무허가로 운영되고 있었다. 고시원은 독서실과 같은 근린생활시설로 분류돼 있어서, 신고만 하면 누구나 영업을 할 수 있었고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
고시원을 숙박업으로 규정하고 관련 법안을 만들어 관리했어야했지만 국가가 방치하면서 숙박시설이었다면 받았을 건축법이나 보건법이 하나도 적용되지 않았다.업주들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법에 저촉되지만 않는 선에서 방 개수를 늘리고 비상대피로나 스프링클러같은 안전대책에는 무관심했다.
정상진이 13명의 사상자를 낸 그날, 스프링클러나 비상대피로만 있었더라도, 혹은 복도의 폭이 조금만 더 넓었더라도 최소한 사상자의 숫자는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한마디로 '불법'은 아니지만 '무법' 천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유가족들은 고시원 주인과 서울시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동네의 자산가로 소문난 고시원 주인은 법정에 대형 로펌 변호사 여섯 명을 대동하고 나타났다고 한다. 그리고 소송 결과는, 고시원 주인, 서울시 모두 '혐의 없음'으로 판결이 나며 재판부는 고시원 주인이나 관할 당국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나마 이 사건 직후에 고시원 관련법이 제정된 것은 작은 위안이 했다. 피난유도선,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되고, 통로 폭도 90cm에서 최소 120cm 이상으로 강화됐다. 하지만 정작 논현동 고시원 사건은 끝내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채 끝나버렸다.
유가족들은 사건 이후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일상으로 돌아오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많은 범죄 피해 유가족은 여전히 고통 속에 살면서 삶을 포기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딸 서진씨를 잃은 서병호씨 역시 자살까지 고민했으나 "딸을 위해서라도 아버님이 힘을 내셔라"는 위로를 받고 마음을 돌렸다.
범죄 피해자들을 돕는 파랑새 재단의 대표이자 한국 범죄피해자 지원센터장 이용우 씨는 한 문구업체의 대표 출신으로 범죄 피해자와 그 가족을 돕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 인물이다. SBS 드라마 <모범택시>에서 장성철 캐릭터의 모티브가 된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는 희생자의 장례에서, 피해생존자-유가족의 심리 치료까지. 그 잊기 힘든 기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사비를 들여서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선행에 앞장섰다. 서병호씨 역시 이 회장의 도움과 격려에 힘입어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이용우 회장은 "범죄자에게는 '미란다 원칙'을 이야기한다. 범인은 변호사를 살 권리가 있다 얘기하지만, 옆에 있는 피해자는 그냥 가버린다. 범죄자 인권만 있고 피해자 인권은 없다. '어디 가서 치료받아라 어디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런 이야기를 안 했던 거다"라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아무도 지원해주지 않는 시기에 피해자들을 지원하겠다는 그런 취지로 해서 피해자 지원센터가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현재 범죄피해자센터는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으며, 20년 넘게 활동을 이어오며 범죄 피해자에 대한 인식과 지원도 많이 달라졌다. 피해 지원금 규모도 논현동 고시원 사건 때보다 10배나 늘었다.
무차별 범죄는 누구한테나 어디에서든 일어날 수 있는 비극이라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크다. 그런데 현재 대한민국은 범죄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겪는 2차 피해 또한 심각한 상황이다. 피해자들이 "당신이 거기 있었으니까 당했다", "목숨값 받으려고 쇼한다"는 악의적인 이야기도 듣는 게 현실이다.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선진국들은, 기피와 혐오 대신, '피해자는 우리를 대신해서 당한 사람들'이라고 여긴다. 국가가 피해자 지원을 온전히 책임지고 시민들도 도움의 손길을 보내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자리잡았다.
반면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도 어딘가에 살인사건이 나면 피해자에게 다가가 위로하기보다는, '재수없다', '불길하다'고 여기고 그 주변을 기피하려는 차이가 뚜렷하다. 이러한 잘못된 선입견부터 바뀌어야, 피해자와 유족들에 대한 인권 보호도 진전될수 있지 않을까.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