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전 대신 핀셋제거?…바이든 경고 뒤 이스라엘 분위기 변했다
이스라엘의 지상전 계획이 축소될 조짐이다. 최근 이스라엘을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전쟁 이후에 대한 시나리오가 마련되지 않으면 '제한된 군사작전'을 벌여야 한다고 이스라엘 지도부를 압박하면서다. 지상전이 전개된다 해도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핵심시설과 지도부 제거 등에 국한한 특수작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20일(현지시간) 의회 외교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가자지구 전쟁은 3단계로 진행되는데, 공습을 통해 1단계 전쟁을 치르고 있고, 2단계 지상전에선 하마스 인프라를 망가뜨리고 궤멸시킨 후, 마지막 3단계에선 가자지구에 새로운 안보 정권을 만들고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2단계 지상전에선 싸움은 계속되지만 그 강도는 낮아질 것이며 숨어있는 저항 세력을 제거하는 작업을 할 것이라고 했다.
앞서 전날 갈란트 장관은 가자지구 인근에 집결한 장병들과 만나 "너희는 곧 가자지구를 밖이 아닌 '안쪽에서'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상전 개시가 임박했음을 시사하는 발언이었다.
이같은 표면적인 움직임과 달리 바이든 대통령의 이스라엘 방문을 계기로 기존 대규모 지상전 계획이 바뀌는 분위기도 동시에 감지되고 있다. 가디언은 이날 소식통들을 인용해 "바이든 대통령이 이스라엘 군과 미군이 가자지구 전면 침공에 대한 대안을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 방문 뒤 워싱턴DC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지상공격 이외에) 어떤 대안이 있는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자세한 대화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지난 주말까지 이스라엘 군은 하마스의 본거지인 가자지구 총공세를 예고했다. 그러나 이번주 들어서도 지상군 침공은 계속 미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바이든 대통령이 군사작전에 대한 확고한 지지 의사를 밝히면서도, 민간인 피해 최소화를 강조하는 등 이스라엘을 압박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이스라엘에서 연설을 통해 2001년 '9·11 테러' 이후 20년 넘게 장기화됐던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을 언급하며 "분노에 잠식되지 말라"고 강조했다. 이스라엘도 같은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의미로, 이번 사태를 키우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였다.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19일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팟캐스트에 출연해 "반군은 1∼2년 안에 제압할 수 없다. 우리가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 목격했듯 대개 10년이나 그 이상 걸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이 하마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판단한 이후에는 기본적 서비스를 복원하고 가자지구를 재건하며 거버넌스를 강화하기 위한 계획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이스라엘 정부 안팎에선 "이스라엘의 지상전 계획이 '기존과 다른 것'으로 바뀌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이스라엘 고위관계자들은 블룸버그통신에 "(이스라엘이) 인명 피해를 줄이고, 전쟁 이후 계획을 세우는데 미국의 영향력이 크다"며 이스라엘군이 작전계획을 변경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 점을 강조했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승리를 믿지만, 관건은 이후의 관리 문제라는 분석도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미국은 하마스를 군사적으로 축출하면, 이후 가자지구 내 대체 통치 세력으로 누굴 내세울지 복안이 있지 않는 이상 '제한된' 군사작전을 벌이라는 메시지를 지속해서 보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 방문 중 비공개 회담에서 네타냐후 총리에게 "전쟁 이후 이스라엘 영토에 대한 계획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5일 방송된 CBS 시사프로그램 '60분'과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점령하는 건 안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스라엘군이 대규모 병력을 가자지구에 한꺼번에 투입하지 않고, 특수부대가 먼저 들어가 하마스 수뇌부를 제거하거나 인질을 구출하는 '외과적 공격(surgical strikes)’에 먼저 나설 수 있다고 본다. 외과적 공격은 마치 집도의가 메스로 환부만 도려내듯이 공격 목표 이외에는 주변 피해를 최소화하는 특수작전을 의미한다. 또 일각에선 하마스 본부가 있는 가자지구 북부에선 지상군 작전을 벌이고, 남부는 전투기와 미사일 등으로 표적만 족집게식으로 제거하는 공습을 벌일 수 있다고 내다본다.
하마스의 근거지 변경도 또 다른 대안으로 거론된다. 이스라엘군 사정에 밝은 언론인 요시 멀먼은 "1982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가 레바논에서 튀니지로 근거지를 옮긴 것처럼 이슬람권이 하마스에 압력을 가해 가자지구에서 합의된 장소로 떠나게 하는 방법도 있다"며 "이것이 바이든 대통령이 요르단에서 (관련국 수뇌부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가디언에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당초 이스라엘 방문 후 요르단 암만에서 요르단 국왕, 이집트 대통령,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만날 계획이었다. 하지만 가자지구 병원 폭발 참사로 요르단 측이 회의 개최 중단을 통보했다.
다만 '하마스 근거지 이전'은 실현 불가능한 아이디어라는 지적도 있다. 이스라엘 정부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시나리오라는 분석이다. 전직 이스라엘 정보기관 관계자인 아비 멜라메드는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전 세계가 나서고 하마스가 응하는 것을 볼 수 있을지 매우 의문이지만, (가장 중요한 네타냐후 정부 입장에서) 정치적으로 불가능한 방안"이라고 말했다.
김민정 기자 kim.minjeong4@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0억 쏟아부은 영화인데…이선균 '마약 의혹' 폭탄 맞았다 | 중앙일보
- "40대 편의점 업주가 女초등생 성추행…18명이 당했다" | 중앙일보
- 의사·판사·교수 된 서울대 삼남매…엄마의 '계룡산 집' 비밀 | 중앙일보
- 이런 곳서 살면 2년 더 젊어진다…세포 노화 깜짝 연구결과 | 중앙일보
- 위암 발생률 1위 한국…가장 큰 위험 요인 '짠 음식' 아니었다 | 중앙일보
- 이혼한 40대 엄마…10대 두 아들과 한 방서 숨진채 발견됐다 | 중앙일보
- 믹서기에 사과 갈아버린 손흥민…삼성의 '워치 도발' 왜 | 중앙일보
- 아래층 70대女 찌른 후 불 질렀다…양천구 방화범 사형 구형 | 중앙일보
- '폭발물 탐지 에이스' 럭키, 별이 되다…특공대원들 뜨거운 눈물 | 중앙일보
- 배우 오정세 탄 승합차, 경운기 들이받았다…남편 사망 아내 중상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