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숨 막히는 공포 느꼈다"[2023 국감]
20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부산고등법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이른바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가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해 사건 이후 이어진 공포심과 가해자 재판 결과에 대한 불만을 호소했다.
A씨는 신상 노출을 피하기 위해 설치된 가림막 뒤에서 증언에 나섰다. 얼굴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음성변조는 희망하지 않아 A씨의 목소리가 그대로 전달됐다. 김도읍 법사위원장은 참고인의 신원 노출이 발생하지 않도록 촬영기자들에게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공판 기록 열람이 제한돼 방어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었던 점과 뒤늦게 성범죄가 인정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이름과 주소 등 신원이 노출된 것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A씨는 1심 공판이 끝나고 공판 기록 열람을 신청한 이유를 묻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첫 공판에서 사각지대 시간이 7분 정도 있다는 걸 듣고 그때 처음으로 성범죄 가능성을 의심하기 시작했다"라며 "그래서 알고 싶지도 않았던 공판 기록을 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답했다.
이어 "(재판부로부터) 정말 여러 차례 공판 기록 신청을 거절당했고 겨우 받을 수 있는 건 공소장뿐이었다"라며 "피해자는 재판 당사자가 아니니 가해자에게 민사소송을 걸어서 문서송부 촉탁을 하라고 권유를 받았다. 피고인의 방어권은 주장이 되면서 피해자의 방어권은 어디에도 없었다"고 말했다.
A씨는 "자료를 1심이 끝난 뒤에 받았기 때문에 누가 봐도 명백한 성범죄에 대한 허위 진술들이 가득한데 이것에 대해서 따질 수도 없었다"며 "2심이 시작되고 성범죄가 인정되고도, 3심에서는 양형부당을 신청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성범죄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판결을 받지도 못했다"고 했다.
그는 가해자의 보복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A씨는 "피해자(참고인)가 계속 참여를 하고 공판 때마다 열심히 참석하니, 가해자는 오히려 형이 피해자 때문에 키워졌다고 했다"라며 "(저에게) 증오심을 표출했고 구치소 같은 방 재소자한테 외출하면 저를 찾아가서 죽이겠다, 현재 주소를 달달 외우면서 다음번에는 꼭 죽여버리겠다라는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이어 A씨는 "혼자서 이 피해를 감당했으면 끝났을 일을 괜히 가족한테까지 부과하는 것 같아 숨이 막히는 공포를 느꼈다"고 말하며 울먹이는 모습을 보였다.
또 A씨는 "범죄와 아무 관련 없는 반성, 인정, 불우한 환경이 도대체 이 재판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피해자가 용서하지 않겠다는데 왜 판사가 마음대로 용서하는가. 국가가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A씨는 국정감사장을 떠나며 "20년 뒤 죽을 각오로 열심히 피해자들을 대변하고 있다"며 "제 사건을 계기로 많은 범죄 피해자들을 구제해달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여야 의원들은 A씨에게 위로의 뜻을 전하는 한편 형사소송 재판 제도개선을 요구했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질의 도중 김흥준 부산고등법원장에게 A씨의 발언을 들은 소감을 물었는데, 김 고등법원장이 "관할 고등법원장으로서 안타까움을 많이 느낀다"고 답하자 "안타깝다는 표현이 말이 되는가"라고 언성을 높이며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조 의원은 재판부가 A씨가 여러 차례에 걸쳐 탄원서와 의견서를 내도 듣는 체도 안 하다가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이 나간 뒤 갑자기 입장을 바꿔 여러 가지 혐의를 검토해보겠다고 한 것에 대해 따져 물었고 김 고등법원장은 "탄원서가 있다고 재판장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재판부가 굉장히 적극적으로 움직인 사건"이라고 답했다.
또 김 고등법원장은 검사가 공소를 제기하지 않은 혐의에 대해 법원이 먼저 나서 증거조사를 할 수 없는 절차상 문제를 언급하면서 "화살의 방향은 법원이 아니라 검찰을 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답 과정에서 김 고등법원장이 헛웃음을 보이자 조 의원은 "이게 웃을 일인가. 부산에서 당신이 어떤 대접을 받는지 몰라도, 그 태도가 뭔가"라며 "인간이라면 좀 미안한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김 고등법원장은 결국 "혹시 피해자께서 그렇게 느끼셨다면 법원장으로서 제가 사과의 말씀을 드리겠다"고 말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은 지난해 5월2일 오전 5시 30대 남성 이모씨가 부산 부산진구에서 귀가 중인 A씨를 성폭행할 목적으로 10여분간 쫓아간 뒤 오피스텔 공동현관에서 무차별 폭행한 사건이다. 이씨는 성폭력처벌법상 강간인미수 혐의로 기소돼 징역 12년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검찰이 강간살인 미수 혐의로 공소장을 변경해 징역 20년으로 형량이 늘었고, 이 판결이 지난달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가해자 이씨는 최근 피해자에게 보복하겠다고 협박한 혐의로 부산지검 서부지청에 송치됐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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