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감독의 첫 시즌, 아쉬운 목소리 큰 이유

이준목 2023. 10. 20.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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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가을야구, 1경기 만에 끝나... '초보 감독'임에도 성과 보여줬지만

[이준목 기자]

▲ 2023 WC 1차전 두산 이승엽 감독 19일 경남 창원NC파크에서 열린 '2023 신한은행 SOL KBO리그' 와일드카드 결정 1차전 NC 다이노스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 두산 이승엽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두목곰이 되고 싶었던 라이언킹의 첫 번째 도전은 아쉽게도 미완성으로 끝났다. 이승엽 감독이 이끄는 두산 베어스가 5강 진출이라는 절반의 성공을 남긴 채 2023시즌을 마감했다. 두산은 10월 19일 경남 창원NC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NC 다이노스에 9-14로 패배하며 이승엽 감독의 사령탑 첫 가을야구는 아쉽게도 1경기 만에 일찍 막을 내리게 됐다.

이승엽 감독은 지난해 10월 14일 두산 베어스의 지휘봉을 잡았다. 이 감독은 현역 시절 한일통산 626홈런, KBO 리그에서만 467홈런(역대 1위), 5회의 한국시리즈 우승과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등 한국야구사를 빛낸 수많은 업적을 세운 레전드였다. 두산은 이 감독을 모셔오기 위하여 계약 기간 3년, 총액 18억 원으로 초보 감독으로는 역대 최고 대우를 보장하며 예우를 다했다.

두산의 이승엽 감독 영입은 여러모로 큰 화제를 몰고 오기 충분했다. KBO리그 역사상 손꼽히는 슈퍼스타 출신 감독의 탄생에다가, 이 감독이 두산과 전혀 인연이 없는 삼성맨 이미지가 강한 인물이라는 점도 파격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례적이었던 것은 이 감독이 은퇴 이후 별다른 지도자 경험없이 프로 1군 감독으로 직행한 '초보중의 초보 감독'이라는 사실이었다.

이 감독은 2017년 현역 은퇴 후 지난 5년간 프로와 아마추어를 통틀어 정식 지도자 코스를 밟은 경험이 아예 전무했다. 굳이 꼽자면 '최강 몬스터즈'(SBS <최강야구>) 정도가 있지만 예능적 요소가 가미된 이벤트 매치에 가까운 방송용 팀과 실제 전문 프로팀을 이끄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이는 이승엽 감독의 최대 불안요소로 꼽히며 물음표를 자아낸 원인이었다.

더구나 두산은 지난 시즌 9위에 머물렀다. 두산은 2010년대 중반 이후 프로야구를 지배해온 왕조로 꼽혔지만, 이승엽 감독이 지휘봉을 물려받을 시점의 전력은 잘해야 중위권 정도라는 평가를 받는 수준이었다. FA로 국내 최고의 포수 양의지를 재영입하는 등 나름의 투자도 있었지만, 유출되거나 노쇠한 전력까지 감안하면 우승권과는 거리가 멀었다.

첫 시즌 생각보다 선방했지만...
 
▲ 두산, 가을 야구 종료 19일 경남 창원NC파크에서 열린 '2023 신한은행 SOL KBO리그' 와일드카드 결정 1차전 NC 다이노스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 NC에 14대 9로 패한 두산 선수단이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다행히 뚜껑을 열어보니 우려보다는 선방했다. 두산은 정규리그 74승 2무 68패 승률 .521의 성적으로 5위를 차지했다. 지난 7월에는 구단 역대 최다 연승 신기록인 11연승을 질주하기도 했다. 시즌 막판까지 SSG-NC-KIA 등과 치열한 3위 경쟁을 펼쳤고, 몇 번의 고비를 넘긴 끝에 결국 와일드카드 결정전 티켓을 따내며 부임 첫해 가을야구 진출이라는 1차 목표를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9위팀에게 무려 +14승을 선물하며 가을야구 티켓까지 안겨줬다는 것만으로도 이승엽 감독의 첫 시즌은 결코 실패했다고 보기 어렵다. 스타 출신이나 초보 감독 중에 이승엽보다도 더 유리한 환경에서도 더 실망스러운 성적을 거둔 지도자들은 각 종목에 수두룩하다.

물론 이승엽 감독도 올드한 스몰볼 야구, 베테랑과 주전에 대한 집착, 투수교체 판단 미숙 등 얼마든지 단점을 이야기할수 있지만, 어차피 이런 이유로 지적받는 것은 다른 팀 베테랑 감독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승엽이 올해 갓 데뷔한 초보 감독임을 감안하면 시즌 전체적으로는 무난하게 팀을 이끈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승엽 감독의 첫 시즌에 대하여 아쉬움의 목소리가 더 큰 이유는 무엇일까. 그만큼 이승엽이라는 이름값이 주는 높은 기대감에 더하여, 전임자인 김태형 감독이 남긴 거대한 그늘 때문일 것이다.

김태형 감독은 두산의 최고 전성기를 이끈 주역이었다. 김 감독은 사령탑 데뷔 첫해부터 두산을 정상으로 이끌었고, 단기전인 포스트시즌에서 더욱 강해지는 모습을 보이며 이른바 '미라클 두산'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김 감독 본인은 곰탈여우(곰의 탈을 쓴 여우)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비록 마지막 시즌을 9위로 마치며 재계약에 실패했지만, 이를 김 감독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팬이나 전문가들은 거의 없었다.

김태형 감독은 두산 감독으로서만이 아니라 프로야구 역사에 손꼽힐 만한 왕조를 구축하며 '명장'으로 등극한 인물이다. 해태 시절의 김응용, 현대의 김재박, SK의 김성근, 삼성의 류중일 전 감독처럼 한 시대를 풍미한 전설적인 감독의 뒤를 잇는 지도자들은, 싫든 좋든 비교대상이 되며 전임자의 그늘에 묻혀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두산으로서는 지난 시즌을 마치고 변화가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김태형 감독과 결별했지만, 어차피 누가 오든 후임자로 김 감독 만한 경력을 지닌 대체자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잘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전임자와 비교될 수밖에 없는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두산이 초보 감독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슈퍼스타 출신 이승엽 감독을 과감히 선택하는 파격을 감행한 또다른 이유다.
 
▲ 두산 양의지 '이게 아닌데' 19일 경남 창원NC파크에서 열린 '2023 신한은행 SOL KBO리그' 와일드카드 결정 1차전 NC 다이노스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 두산 포수 양의지가 8회 말 2사 1·2루 상황 NC 포수 8번 김형준에게 홈런을 허용한 후 허탈해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와일드카드 결정전 패배 이후 현재 두산 팬덤 사이에서 이승엽 감독을 향한 반응은 매우 좋지 않은 게 사실이다. 아무래도 단 1경기 만에 가을야구에서 허무하게 조기탈락한 것도 아쉽지만, 무엇보다 패배하는 과정이 매우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산 팬들은 특히 와일드카드전 경기 중반 NC에 승기를 넘겨준 결정적인 장면이 된 투수교체 문제를 집중 거론하고 있다. 구위가 좋았던 최승용을 길게 끌고가지 않고, 이승엽 감독이 올린 김강률-정철원-홍건희가 줄줄이 난타를 당하며 대량실점을 내준 것. 매경기 벼랑끝 승부임에도 다음 경기를 염두에 둔듯 총력전을 펼치지 않은 것이 전형적인 초보 감독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다.

이는 두산이 정규시즌 막바지 3위 싸움에서 밀려난 장면과도 맞물리며 더욱 혹평을 받고 있다. 또한 지난 몇 년간 수많은 가을야구를 경험하며 김태형 감독의 신들린 용병술과 경기 운영에 익숙해져 있던 두산 팬들이었기에, 더욱 아쉽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김태형 감독은 부임 당시부터 우승권 전력을 물려받아 8년간 최전성기의 두산을 이끌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이제 감독 1년 차로 몇 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전력을 이어받은 이승엽 감독의 성과와 리더십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그리 공정하다고 볼 수 없다.

이승엽 감독은 카리스마 넘치는 김태형 감독과는 다르게 자신만의 온화한 리더십으로 선수단의 신뢰와 동기부여를 이끌어냈다. 장원준 등 베테랑 선수들을 살려내어 요긴하게 활용한 점, 결과를 떠나 절대 선수 탓을 하지 않는 배려, 자신의 단점에 피드백을 수용하여 변화를 시도하려는 유연성 등 이승엽 감독만이 보여준 장점들 역시 적지 않음에도, 그저 몇몇 경기와 결과론에 의하여 모두 묻혀버리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사령탑 데뷔 첫 해의 이승엽 감독은 '슈퍼스타 출신-초보 감독'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과도한 폄하와 미화가 모두 공존했던 감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승엽 감독의 2023시즌은 선수 시절의 명성이나 전임자와 비교하면 과대평가 받을 만큼 잘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초보 감독이나 팀전력을 감안할 때 욕먹을 만큼 못하지도 않았다. 현재 두산이 왕조 시절의 환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팀을 만들어가야 하는 것처럼, 감독 이승엽 역시 아직 더 경험을 쌓고 발전해야 하는 과도기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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