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홍범도 논란' 잠재워야 국민소통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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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는 일본에 두 번 큰 양보를 했다.
홍범도 지우기를 놓고 벌이는 여론 경쟁은 정부의 완패로 끝나고 있다.
강제노역·오염수로 쌓인 여론의 피로감은 홍범도에 이르러 훨씬 커졌다.
홍범도 흉상과 홍범도함을 그대로 두는 것이 국민과의 소통의 시작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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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는 일본에 두 번 큰 양보를 했다. 대법원은 일본이 일제 강제노역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으나, 정부는 국내 재단이 대신 지급하는 해법을 냈다. 또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에 대해 "계획대로 지켜진다면 국제 기준에 부합한다"는 검토보고서를 냈다. 반대 여론이 심했다. 한때 수산물 시장에 발길이 끊겼다. 대통령 국정 지지도는 적잖게 내려갔다. 그러나 한미동맹과 한·미·일 공조가 강화되고 한일 간 인적 경제적 교류가 활발해지는 효과도 있었다. 대통령 지지층은 정부의 양보가 탐탁지 않았지만 이런 효과를 확인하면서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정작 심각한 문제는 홍범도 흉상 철거 논란에서 터졌다. 국방부 등은 8월 육군사관학교 충무관 앞 독립군·광복군 영웅 흉상을 철거해 독립기념관으로 이전하겠다고 밝혔다. "홍범도 장군이 봉오동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고 하나, 자유시 참변의 주역이었고 소련군이 됐다. 왜 흉상을 육사에 세웠는지 의문이다"는 여권 인사의 발언이 실마리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8월은 강제노역·오염수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간신히 가라앉으려 할 때였다. 여권은 그러자 홍범도 국면을 만들었다. ‘대일 굴욕’ 프레임에서 가까스로 벗어났으면 적어도 한동안은 국민의 반일 정서를 자극할 만한 일을 멀리해야 한다. 이것은 판단력의 문제이자 예의의 문제다. 그러나 여권은 그 프레임 속에 다시 뛰어들었다.
이런 모습에 일부 보수층도 아연한 표정을 짓는다. ‘국가적으로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왜 홍범도인가’라고 묻는다. 여권에 따르면 강제노역·오염수 양보는 안보와 경제를 위해서다. ‘흉상 철거는 먹고사는 일도 아닌데 왜 집착하나’라는 의문이 이어진다. 정치를 성공으로 이끄는 요체는 타이밍이다. 강제노역·오염수의 상흔이 아물기도 전에 흉상 철거를 밀어붙인 세력은 타이밍 감각을 잃었다. 그 감각을 뉴라이트 역사관으로 대체했다.
홍범도 지우기를 놓고 벌이는 여론 경쟁은 정부의 완패로 끝나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흉상 철거 반대 여론이 훨씬 높게 나온다. 지난 대선 때 윤석열 후보를 찍은 70대도, 진보적인 40대도, 신세대 20대도 죄다 반대다. 현 정부에 우호적인 보수성향 신문조차 사설을 통해 흉상 철거를 비판한다.
여론과 미디어는 왜 홍범도를 지키려는 태도를 보일까? 여권의 주장을 수용하더라도, 홍범도는 항일 독립운동이라는 문화 측면과 소련군 활동이라는 이념 측면을 함께 갖고 있다. 홍범도의 자유시 참변 책임은 불분명하고 소련군 이력은 북한 인민군 이력보다 덜 치명적이다. 이럴 때 다수 국민은 이념보다 같은 언어·민족·역사를 공유하는 문화를 훨씬 중요하게 여긴다.
여권이 진정 걱정해야 할 일은 홍범도 문제가 단발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강제노역·오염수로 쌓인 여론의 피로감은 홍범도에 이르러 훨씬 커졌다. 홍범도 문제는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계속 낮게 나오는 데에도, 여당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참패한 데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홍범도 문제로 사람들이 화가 났기 때문이다. ‘보자 보자 하니까 정말’ 심리가 폭발한 것이다. 이런데도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청문회에서 해군 잠수함 홍범도함의 명칭 변경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홍범도에 정권의 운명을 베팅하겠다는 뜻일까?
여권은 여론조사에 담긴 민심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강서구 보선 참패 후 소통은 정부·여당의 화두다. 홍범도 흉상과 홍범도함을 그대로 두는 것이 국민과의 소통의 시작임을 알아야 한다.
허만섭 국립강릉원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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