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없고 빽없는 국민 구해달라”…부산 돌려차기 피해자의 눈물
질의 답변 도중 부산고등법원장 태도 논란
조정훈 “어떤 대접받는지 모르겠는데 여기가 우습냐”
여야 한목소리로 “사법불신” 질타…김 법원장 “깊은 검토하겠다”
“높으신 분들이 알아서 잘 해주시겠지 싶어서 기다렸는데…1심 기록을 받아보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피해자들에게는 재판이 하나의 업무가 아니라 인생이 걸린 일입니다.”
“제 사건을 계기로 국가가 수많은 범죄 피해자들 중 힘 없고 빽 없는 국민을 구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부산지방법원 등 지역 법원 대상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의 호소에 국감장은 일제히 숙연해졌다.
이날 피해자 A씨는 법사위 국감장에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설치된 가림막 뒤에서 직접 증언했지만, 신원 비공개를 위해 얼굴·성명은 공개되지 않았다. A씨는 현재 수감 중인 가해자로부터 보복 협박을 받는 상태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은 지난해 5월2일 오전 5시 30대 남성 이모씨가 부산 부산진구에서 귀가 중인 A씨를 성폭행할 목적으로 10여분간 쫓아간 뒤 오피스텔 공동현관에서 무차별 폭행한 사건이다. 이씨는 성폭력처벌법상 강간인미수 혐의로 기소돼 징역 20년형을 확정 받았다. 가해자 이씨는 최근 피해자에게 보복하겠다고 협박한 혐의로 부산지검 서부지청에 송치됐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공판 기록 열람이 제한돼 방어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었고, 성범죄가 뒤늦게 인정된 점을 문제 삼았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이름과 주소 등 신원이 가해자에게 노출됐다고도 호소했다.
A씨는 “첫 공판에서 사각지대 7분이 있다는 걸 듣고 그때 처음 성범죄를 의심하기 시작했다”라고 운을 띄었다. 이어 “재판부에서 수차례 공판 기록 신청을 거절했고, 겨우 받을 수 있는 건 공소장뿐이었다”라며 “피해자는 재판 당사자가 아니니 가해자에게 민사소송을 걸어서 문서송부 촉탁을 하라고 권유를 받았다. 피고인의 방어권은 주장이 되면서 피해자의 방어권은 어디에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A 씨는 “자료를 1심이 끝난 뒤에 받았기 때문에 누가 봐도 명백한 성범죄에 대한 허위 진술들이 가득한데 이것에 대해서 따질 수도 없었다”며 “2심이 시작하고 성범죄가 인정되고도, 3심에서는 양형부당을 신청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성범죄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판결을 받지도 못했다”고 했다.
가해자의 보복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A씨는 “피해자(참고인)가 계속 참여를 하고 공판 때마다 열심히 참석하니, 가해자는 오히려 형이 피해자 때문에 키워졌다고 했다”라며 “(저에게) 증오심을 표출했고 구치소 같은 방 재소자한테 외출하면 저를 찾아가서 죽이겠다, 현재 주소를 달달 외우면서 다음번에는 꼭 죽여버리겠다라는 얘기를 했다”고 전했다.
이어 “혼자서 이 피해를 감당했으면 끝났을 일을 괜히 가족한테까지 부과하는 것 같아 숨이 막히는 공포를 느꼈다”고 울먹였다.
가해자의 반성문이 양형에 참작된 점도 문제 삼았다. A씨는 “피해자들은 항상 피해 사실을 밝혀야 하고, 가해자들은 일상생활을 잘하고 있다”며 “재판에 가더라도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가난한 불우환경을 양형 사유로 참작하는데 이해가 안 된다. 재판과 관련 없는 피고인의 반성과 힘없고 가정환경을 참작해주는 것은 국가가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A씨는 마지막 발언에서 “저는 20년 뒤에 죽을 각오로 (전국의)피해자들을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제 사건 재판이 끝난 상황에서 어떻게 해달라는 게 아니라, 지금 제 사건을 빌미로 해서 많은 범죄 피해자분들 중 힘없고 빽없는 국민들을 국가에서 구제해주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피해자들에게는 (재판이) 하나의 업무가 아니라 인생이 걸린 일”이라며 “단순히 하나의 사건이라는 숫자로만 치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부산고등법원장 태도 논란 설전…조정훈 “어떤 대접받는지 모르겠는데 여기가 우습냐”
해당 사건 관할 법원장인 김흥준 부산고등법원장은 “안타깝다. 위로의 말씀을 전해드린다”면서도 “제도의 구체적인 면에 관해 말씀드리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법원이 피해자 권리 구제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 “동의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혀, 여야 의원들의 공분을 샀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김 고등법원장에게 “‘안타깝다’라는 표현을 하셨는데 남 일이냐. 고등법원장님이 관할하는 법원에서 일어난 일 아니냐”며 사과를 요구했다. 이에 김 법원장은 “제가 어떤 면에서 피해자의 감정을 제가 상하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단순한 표현상의 차이뿐”이라고 답했다. 또 “화살의 방향은 법원이 아니라 검찰을 향하고 계셔야 한다”라고 했다.
김 법원장이 질의에 답하는 과정에서 웃음을 띄우자, 조 의원은 “웃을 일이냐. 지금 여기가 우습냐. 부산에서 당신이 어떤 대접받는지 모르겠는데 국민들이 그 웃음을 보고 (어떻게 생각하겠느냐)”고 격분을 토했다.
여야 한목소리로 “사법불신” 질타에…김 법원장 “깊은 검토하겠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도 “결국 피해자에게 공판 기록을 주지 않아서 가해자에게 피해자의 신원정보가 노출됐고 보복 범죄를 발생시키는 원인을 제공한 점을 반성하셔야 한다”며 “본인이 모은 재판기록이 모두 1268장이다. 이 재판 기록의 무게가 바로 우리 국민의 사법 불신의 무게”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은 ‘법률상 감경’ 이뤄진 부분을 집중적으로 질타했다. 그는 “이 사건은 항소심에서 공소장이 변경돼 성폭력특별법상 강간 살해 미수죄로 죄명이 바뀌었다. 이 범죄는 사형 아니면 무기징역 밖에 없는 형인데, 징역 20년으로 법률상 감경이 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해자 입장에선 법원 판단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법원이 이같은 점을 되짚어 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에 김 법원장은 “저희 법원과 재판부에서 미처 헤아리지 못한 부분에 대해 법원장으로서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이어 피고인에 대해 법률상 감경을 기계적으로 한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깊은 검토를 해보겠다”고 답했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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