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가자는 ‘나쁜 녀석들’…김정은 “북·러 전략적 신뢰관계”
불법 무기 거래를 중심으로 똘똘 뭉치고 있는 북한과 러시아가 장기적·포괄적 관계 발전 방안을 논의했다. 북·러 정상회담 후속조치 이행을 강조하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 협의도 속도가 붙는 분위기다.
20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9일 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방북 중인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을 접견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김정은은 라브로프에게 “조로수뇌회담(북·러 정상회담)에서 이룩된 합의들을 충실히 실현해 안정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새시대 조로관계의 백년대계를 구축”하자는 입장을 밝혔다.
“쌍무적 연계 계획적 확대하자”
통신은 또 “담화에서는 조로(북·러) 두 나라가 굳건한 정치적 및 전략적 신뢰관계에 토대해 복잡다단한 지역 및 국제정세에 주동적으로 대처해나가며 공동의 노력으로 모든 방면에서 쌍무적 련계(연계)를 계획적으로 확대해나가는 것”을 논의했으며 “견해 일치를 봤다”고도 전했다.
김정은이 직접 ‘백년대계’를 언급하며 지역 및 국제정세에 주동적으로 대처해나가는 방안을 논의한 건 양측이 한반도 문제를 넘어 우크라이나 전쟁 등 글로벌 이슈에서도 함께 대응하자는 취지로 읽힌다. 기존에 양측은 ‘전략적 협력관계’라는 표현을 써왔는데, 이번에는 ‘전략적 신뢰관계’로 층위를 높여 표현한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특히 김정은이 이미 ‘대미 장기전’을 선언한 가운데 우크라이나 침략전쟁을 수행하며 미국과 대립 중인 러시아와 반미 연대의 공고화를 꾀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러시아와 장기적 관계 발전을 계획하는 김정은의 속내는 국제사회에서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굳히기 위해 푸틴을 ‘후견인’으로 두려는 것일 수 있다.
푸틴 ‘핵보유 후견인’ 삼으려는 김정은
러시아 외교부도 19일(현지시간) 라브로프가 김정은을 1시간 이상 접견했다고 전했다. 이에 따르면 라브로프는 “푸틴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모든 사항을 이행할 준비가 됐다는 확인을 전달하라고 요청했다. 관련 작업은 이미 시작됐다”고 밝혔다. 11월 평양에서 열리는 무역·경제·과학·기술 협력을 위한 정부간 위원회 제10차 회의 준비 상황도 공유했다.
김정은은 지난달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과 만나 군사뿐 아니라 정치·경제 분야 협력을 약속했고, 푸틴은 김정은의 초청에 응해 북한을 방문하기로 했다. 이번 라브로프의 방북에서도 푸틴 답방이 논의됐을 가능성이 크다.
19일 이뤄진 라브로프와 최선희 북한 외무상 간 회담에서도 “조로수뇌상봉에서 이룩된 합의들에 기초해 국가간 관계를 새시대와 현 정세의 요구에 맞게 보다 높은 단계에 올려세우며, 경제·문화·선진과학기술 등 각 분야에서의 쌍무교류와 협력사업을 정치·외교적으로 적극 추동하기 위한 실천적 방향과 방도들을 구체적으로 토의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은 전했다.
‘2024~2025년 교류계획서’도 체결
북·러 외교장관 회담에서 ‘선진과학기술’ 협력사업이 의제로 오른 건 정찰위성, 핵잠수함 등 북한의 신무기 관련 러시아의 기술 이전을 염두에 둔 것일 수 있다. 경제 분야 협력은 북한의 고질적 식량난, 에너지난 해소와도 연결된다.
러시아 외교부도 회담 소식을 전하며 “양측은 아태 지역 상황 악화를 초래하는 미국의 헤게모니 정책에 대항하려는 단호함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또 “한반도와 동북아 상황에 대한 관심 깊은 의견 교환이 이루어졌다. 해당 지역 문제들의 정치·외교적 해결에 대한 양국의 의지와 역내 긴장 완화를 위해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려는 자세가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회담 뒤 양국은 외교당국 간에 이례적으로 ‘2024~2025년 교류계획서’도 체결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최소 2025년까지 북·러 간에 다방면에서 실질적이고 가시적인 성과 도출에 집중하겠다는 북·러 정상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며 “미국의 대선, 2025년에 종료되는 북한의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 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이는데, 러시아와의 경제 협력 등이 북한의 국가경제발전 계획 목표를 달성하는 데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진행한 대국민연설에서 러시아의 침략 전쟁을 거론한 뒤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드론과 무기를 구입하기 위해 북한과 이란에 기대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백악관과 미 언론들은 북한발 선박이 탄약을 적재한 것으로 보이는 컨테이너를 실고 러시아 항구에 입항했다고 밝혔는데, 대통령이 이를 직접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을 중심으로 한국, 일본, 호주, 유럽연합(EU) 등이 다층적 독자제재 등을 통해 대러·대북 압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B-52 반발 北 “첫 소멸 대상 될 것”
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무력은 우리 국가의 물리적 제거를 노린 핵선제공격성의 엄중한 군사적 움직임으로 간주”한다며 “미국은 조선반도가 법률적으로 전쟁상태에 있으며 적측 지역에 기여드는 전략자산들이 응당 첫 소멸대상으로 된다는 데 대해 모르지 않을 것”이라고 무력 대응 가능성을 시사했다. 또 선제적 핵 사용 요건을 규정한 핵무력 정책 법제화 및 헌법 명기를 다시 언급하며 “미국과 《대한민국》깡패들이 우리 공화국을 향해 핵전쟁도발을 걸어온 이상 우리의 선택도 그에 상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대미·대남 업무를 맡는 책임 있는 당국자가 나서지 않고 조선중앙통신 논평의 형식으로 비난한 건 나름의 수위 조절로 볼 여지도 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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