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채를 금한 성스러운 산, 그림처럼 떠 있는 섬 주도

완도신문 유영인 2023. 10. 20.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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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소멸대응프로젝트] 완도의 숲과 나무... 주도의 상록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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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신문 유영인]

ⓒ 완도신문
완도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보이며 발길을 잡는 섬이 있다. 완도항 앞 바다에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며 그림처럼 떠 있는 섬 주도이다.

우리는 주도를 바라보면서 저 노목들이 어느 날 갑자기 죽거나 쓰러진다면 어린 싹이 언제 자라서 그 자리를 매울까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그 큰 나무는 자기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한다. 그대로 두어도 되는가 생각해 봄직한 일은 아닐까? 자랑스러운 주도 앞에 서있던 주도의 설명문이 요즘 보이지 않는데 왜일까?

예로부터 완도사람들은 이곳이 저울 추 처럼 생겼다하여 추섬(錘섬)이라 부르며 주도만조명월(珠島滿潮明月)을 완도팔경 중 제 1경으로 꼽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드론의 발달로 공중에서 바라본 섬의 모양이 하트처럼 생겼다하여 사랑의 섬으로도 불리운다.  

주도는 일제 강점기인 1936년에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난대식물의 보고로 인정받아 최초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1962년에는 우리나라 식물학자들이 재조사를 통하여 천연기념물 28호로 재 지정한 난대수림의 보고이다. 

풍수지리적으로는 완도항의 여의주(如意珠)로 완도읍의 동망산과 서망산이 청룡과 백호로 뻗었고, 공고지(空高地)와 객사등(客舍登), 비석산(飛石山) 등 다섯 마리의 용이 떠 받치는 오룡배주(五龍杯珠)형국으로 주도가 육지에서 흐르는 물을 막고 있어 완도읍의 경우 어디에 지하수를 개발하더라도 물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주도 상록수림은 식생의 다양성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난대림 천연기념물 중 그 모습이 가장 잘 유지·보존되고 있으며, 높이 25m, 1만7355㎡(약 5200평)의 척박하고 좁은 면적에 비해 많은 종류의 식물들이 자라고 있어 난대림의 학술연구에 귀중한 자원이 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좋은 임상은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숲에서 생성된 풍부한 유기물로 물고기 떼를 해안으로 유인하는 어부림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목포대학교(책임교수 김철수)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원래 주도에는 124종의 식물이 서식하였으나 완도항을 준설하면서 남겨진 갯펄에 네 종류의 식물이 귀화하여 오늘날은 128종류의 목·초본류(木·草本類)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수림을 형성하는 전체 나무 1700여본 중  대표적인 나무들은 구실잣밤나무(땟밤나무) 500여본, 감탕나무 400여본, 육박나무 110여본, 광나무 120여본, 황칠나무 60여본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기타 다정큼나무, 참식나무, 돈나무, 사스레피나무, 광나무, 후박나무, 생달나무, 소나무, 청가시덩굴, 인동덩굴, 고란초, 콩짜개 등이 있다.

원래 완도읍에는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할아버지 당과 할머니 당이 있었는데, 할아버지 당은 완도중학교 위 소나무 숲에 있었으나 사라호 태풍으로 사라지고, 주도는 할머니 당으로 신성시 되어 숲이 잘 보전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정상에는 당제를 모셨던 당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옛날, 이곳 섬의 중앙에는 작은샘이 하나 있었다. 작은샘의 물은 영험한 기운이 있어 복통이 있거나 위장장애가 있을 때, 마시기만 해도 씻은 듯이 낫게 되어 주민들은 이곳 샘을 애지중지했다.

이곳 샘에서 크게 효험을 본 어떤 이는 샘에서 물을 퍼올릴 수 있게끔, 은그릇 하나를 마련해 주었고,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 은그릇으로는 오직 식수만을 뜰 때 사용해야하는 불문율이 만들어져 대대로 내려오게 됐다.

주도는 예부터 벌채를 금해온 봉산(封山), 그래서 지금도 섬 중앙에는 원시림이 그대로 남아 있어 해상의 나무 전시장으로 나무랄 데가 없다. 일제 때 일인들은 섬 꼭대기에 금북라(金北羅)라는 신사를 짓고 참배하도록 했으나 주민들이 신성한 이곳에 일본 왕을 찬양할 수 없다고 거부했던 이야기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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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글쓴이는 다도해해양문화연구원 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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