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하던 어르신들의 변화 "우리 딸 보여줄 거예요"

최미향 2023. 10. 20.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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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취재] 환자들에 소중한 추억 선물한 재능기부자들, '내봄눈' 프로젝트

[최미향 기자]

 .서산의료원 병원에 핀 '가을꽃에 잔치까지 더한 날' 행사 모습
ⓒ 이지환
 
가을 햇살이 부서지던 지난 17일(화). 내생애봄날 눈이부시게(대표 김은혜, 이하 내봄눈) 스태프들이 휠체어에 의지한 6인의 환자, 남편 옆에서 연신 한 몸인듯 간병하는 아내 권창순 어르신을 만나기 위해 충청남도 서산의료원을 찾았다. 이날 로비에서부터 환자들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밖에는 가을 낙엽들이 하나둘 도로에 내려앉고 있었다.

촬영을 신청한 충남 서산의료원 김영완 원장은 신청 배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몸과 마음이 지친 환자분들에게 뭔가 이 분들을 행복하게 해드릴 선물이 없을까 생각하던 차에 산타클로스 같은 내생애봄날 눈이부시게 프로젝트를 알게 됐다. 환자분들이 잊고 있었던 눈부신 하루를 찾아드림으로써 그분들에게 삶의 희망과 행복을 느끼게 해드리고 싶었다."

처음엔 "그런 건 별로"... 하시던 어르신이었지만
 
 내봄눈 프로젝트 촬영을 위해 메이크업·헤어를 하고 있는 리안헤어 중앙점
ⓒ 최미향
     
이날 아침 9시 30분 5층 대회의실 풍경, 이미 어르신들 상대로 메이크업과 머리 만지기가 한창이었다. 2층 야외데크에서는 스태프들이 미리 준비해 온 물품을 풀어 좀 더 아름답고 환상적인 배경을 꾸미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모습을 담기 위해 한켠에선 영상 기계가 쉴 새 없이 돌아갔고, 사이사이에서는 아름답게 변해가는 환자들의 모습을 담기 위해 카메라 셔터 소리가 울렸다.
 
 .김현숙 환자의 눈부신 하루 촬영
ⓒ 이지환
 
짧은 틈을 타 1952년생, 이름 예쁜 김현숙 환자분께 소감을 물으니, 말문을 흐리며 답하신다.

"저는 맨날 일만 하며 살았지, 10년째 화장 같은 건 전혀 못 했었어요. 지금 병원에 입원한 지는 9개월 됐고요. (병만) 금방 나으면 더 바랄 것이 없지만…."

그래도 예쁘게 화장하고 멋진 옷을 입으면 기분이 좋아져 금방 병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얘기하자, 어르신은 자기 모습을 거울을 통해 보시더니 금세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농협 다니는 우리 딸에게 보여줘야겠다"면서.
   
 .이음전 환자의 눈부신 하루를 찾아드린날
ⓒ 이지환
   
또 다른 환자분은 난생처음 화려한 색상의 의상을 보시자마자 "그런 건 맛 없어!(별로라는 뜻)"라고 단호하게 외치셨다. 갑작스런 발언에 당황한 스텝들이 설득했고, 이 분은 결국 빨간색 원피스에 베이지색 망사 가디건과 짙은 분홍색 모자를 쓰시게 됐다. 그런데 처음의 모습은 어디로 가버리고, 사진 속 달라진 자신의 모습에 아주 흡족해하셨다.
 
 김윤실 환자분의 아름다운 모습
ⓒ 이지환
 
이 분은 "예쁘시다"는 스텝들 감탄 소리에 맞춰, 거울에 비친 모습을 다시 보며 연신 "감사하지. 너무 고맙지"라고 감탄하셨다. 촬영 시에도 자기를 더 찍어달라며 별도로 촬영 작가를 부르기도 했다고 이날 한 스태프는 귀띔했다.

한복을 입고 단아한 모습을 한 1953년생 김윤실 환자분은, 이날 오전 만남부터 작별 때까지 감사하다는 인사를 수없이 하시며 행복해했다. 

"남편, 젊었을 땐 속만 썩이더니... 아프니까 안쓰러워"
 
 .환자 김기상(남편) 어르신과 아내 권창순 어르신
ⓒ 이지환
하얀색 망사천이 흔들그네 뒤에서 바람을 타고 살랑거렸다. 가을 분위기 물씬 풍기는 고운 한복의 주인공이던 김기상 환자분이 갑자기 울먹거리시더니 눈물을 보이셨다. 곁에 서서 남편을 바라보던 아내가 그런 남편을 다독였다. 한때는 거인처럼 커 보이셨을 할아버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자, 그곳에 모인 사람들도 저마다 돌아서서 눈물을 훔쳤다.
두 분은 병원에서도 잉꼬부부로 소문이 자자했다. 아내인 권창순 어르신은 "(남편이) 젊었을 때는 너무 속을 썩여서 미워서 잘 안 해줬어. 그런데 지금 돌아와서 생각하니까 내가 못 해줬던 게 너무 미안하더라고. 이제 허리 수술까지 하니 안쓰럽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하신다.
 
 .환자 김기상 어르신과 아내 권창순 어르신의 눈부신 하루
ⓒ 이지환
 
서로 존댓말을 쓰는 노부부의 모습이 마치 가을 국화 같았다. 하얀 백발의 남편과 다소곳하게 남편 곁에서 다리가 되어주는 아내의 모습, 아름답다 못해 경건해 보이기까지 했다.
 
▲ 김재훈 환자가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
ⓒ 이지환
 
1976년생 김재훈 환자는 타고난 패션 감각과 모델 정신이 투영된 듯 스스로 자세를 바꿔가며 능동적으로 협조해주어 주위에 서 있던 의료진과 스태프에게 박수를 받았다. 
 
▲ ‘제2회 음악과 춤이 함께하는 로빈크루 문화행사’ 단체사진 .
ⓒ 김은혜
 
사진 촬영을 마친 12시 30분, 환자들과 의료진들의 노고에 보답하고자 마음·건강치유를 위한 '제2회 음악과 춤이 함께하는 로빈크루 문화행사'가 서산의료원 본관 로비에서 환자와 보호자 등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서산의료원에서 펼쳐진 정광수 플루리스트의 공연모습
ⓒ 최미향
 
지역에서 활동하는 정광수 플루리스트의 식전공연과 함께 최근 가수 영탁 '폼 미쳤다' 댄스챌린지 창작부문 1위를 한 그룹인 로빈크루(대표 박훈, 내봄눈 촬영담당)는 스트릿댄스를 기반으로 10년 이상의 활동 경험을 갖춘 전문 댄스공연팀이다.
 
 .서산의료원에서 펼쳐진 로빈크루 공연 모습
ⓒ 김은헤
 
병원 관계자는 "사진만 대충 찍어주는 것이 아니라 환자들 마음을 달래주시면서 진심을 다해 대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며 "소품 하나하나, 의상, 메이크업까지 환자들에게 맞춤식 서비스를 해주셔서 환자들이 너무 만족해하셨는데, 여기다 공연까지 준비해주셔서 고맙다"고 말했다.

'제13회 병원에 핀 가을꽃에 잔치까지 더한 날'을 촬영한 내봄눈 김은혜 대표는 "한 어르신이, 허리 수술 중에도 중풍으로 몸이 마비돼 재활하던 중에도 꼭 사진을 찍고 싶으시다고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으며 좋아하시던 모습이 아른거린다"며 "처음엔 생소한 알록달록 옷이낯설어 어색해하셨지만 사진 촬영 후 그 옷을 입고 병실에서도 한참 좋아하셨다는 소식에 매우 보람된 하루였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아울러 "수술 후 재활하시는 어르신 부부의 울먹거리는 모습에 감동이 밀려왔고, 또 1년 가까이 병실에만 계시는 어르신은 (촬영에) 너무나 행복하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몇 번이나 하셨다"며 "다른 환자분들께서도 '우리도 사진 촬영하고 싶다는 얘기에 보람이 컸다. 또 와야겠다고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다"고 약속했다.

이날 서산의료원 김영완 원장은 "상상할 수 없었던 눈부신 하루를 환자들에게 선물해 주셔서 감사하고, 평소 쉽게 접하지 못하는 활력소 넘치는 공연을 환자분들과 내원객분들에게 보여주셔서 감사하다"며 "음악으로 마음을 치유하는 시간이 되었기를 소망하며, 아울러 서산의료원은 언제나 환자분들의 마음과 건강을 보듬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가을 꽃이 아름답게 물든 날의 이음전 환자
ⓒ 이지환
   
▲ 눈부신 하루를 선물받은 서산의료원 환자 .
ⓒ 이지환
   
 .눈부신 하루를 선물받은 서산의료원 환자
ⓒ 이지환
    
 .눈이부신 하루를 선물받은 서산의료원 환자
ⓒ 이지환
   
 .내봄날 스태프와 서산의료원 직원 그리고 환자들
ⓒ 이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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