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포커스] '명장'과 '초보' 사이…이승엽 감독, 승부사 '야성'이 필요해
차승윤 2023. 10. 20. 09:15
우여곡절 많았던 이승엽 두산 베어스 감독의 첫 가을이 막을 내렸다.
두산은 지난 19일 창원 NC파크에서 열린 2023 KBO리그 포스트시즌(PS) 와일드카드(WC) 결정 1차전에서 9-14로 완패했다. 이날 패배로 5위 두산은 WC 시리즈에서 패하고 2023년 가을야구 일정을 모두 마감했다. 순위만 두고 보면 성공이다. 지난해 9위였던 두산은 올해 계단을 4개나 올랐다. 이승엽 감독의 취임식 목표도 가을야구였다.
이날 경기에서 드러난 두산과 NC의 전력 차도 분명했다. 두산은 핵심 타자 양의지가 다소 컨디션 난조를 겪은 데다 경기 초반 장타 2개를 때린 호세 로하스가 파울 타구를 맞고 교체됐다. 두산이 장타가 실종돼 흔들리는 동안 NC는 만루 홈런과 백투백 홈런을 터뜨리는 등 장타로 두산 마운드를 무너뜨렸다. 명백히 힘 싸움에서 NC의 승리였다.
그러나 두산은 충분히 이겨볼 수 있었다. 경기 중반까지만 해도 점수 차는 한 점이었다. 9회 NC 마무리 이용찬이 흔들렸기도 했다. 이날 경기를 본 모두가 '혹시나'했던 이유다. 혹시는 역시로 끝났다.
5위 두산이 4위 NC를 이겨내려면 정도(正道)가 아닌 변칙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날 두산의 기용은 지나치게 모범적이었다. 선발 곽빈은 3회까지 완벽하게 던지다 4회 일시에 무너졌으나 제때 대처할 수 없었다. 5실점을 하고 추가 주자를 내보내고 나서야 김명신이 나섰다. 모든 불펜 투수들은 1이닝을 넘기지 않았다. 선발을 믿고 모든 불펜 투수는 1이닝만 깨끗하게 맡긴다. 분명 모범 답안이다.
하지만 모범 답안은 힘이 더 우위일 때만 통한다. 이날 두산 불펜 중 변수 없이 한 이닝을 완벽하게 막은 건 최승용 뿐이었다. 세 타자를 10구만 던져 잡았다. 스트라이크 7구-볼 3구로 비율도 좋았다. 그러나 최승용을 길게 쓰는 일은 없었다. 선발 투수였던 최승용에게 멀티 이닝을 쓰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는데도 그랬다. 그리고 최승용의 다음 투수인 김강률은 흐름을 내주는 2실점을 했다.
교과서를 멀리서 찾을 필요 없다. 7년 연속 한국시리즈(KS)에 올랐던 김태형 전 두산 감독은 변칙의 대가였다. 오히려 변칙 속에 원칙이 있는 승부사였다.
김태형 감독도 전력이 압도적일 때는 정도대로 갔다. 2015년 더스틴 니퍼트와 장원준 원투 펀치의 힘으로 우승했고, 2016년에는 니퍼트-마이클 보우덴-장원준-유희관으로 이어지는 '판타스틱 4' 선발진이 우승을 순탄하게 끌었다. 2019년 역시 두산은 '탑 독'이었고 김 감독은 큰 무리 없이 트로피를 들었다.
그러나 명백히 전력 열세였던 2020, 2021년 PS에서는 승부사 기질이 발동했다. 특히 4위로 시작해 준우승까지 거둔 2021년 PS 투수 기용이 대표적이었다.
당시 김태형 감독은 투수를 순서대로 쓰지 않고, 1이닝 소화에도 매달리지 않았다. 김 감독은 "8, 9회가 아니라 가장 급할 때, 가장 중요할 때 기용한다. 뒤로 둘 때가 아니다"라며 "(불펜 에이스인)홍건희가 무너지면 끝이었다"라고 했다. 홍건희, 이영하 의존도가 높았던 당시 두 명은 8, 9회 1이닝이 아니라 경기 중반 3이닝을 소화할 정도로 변화무쌍하게 기용됐다.
김 감독과 달리 이 감독은 이날 최승용 기용을 두고 "그런 부분은 생각하지 않았다. 투수 코치와 이야기를 나눴고 1이닝을 맡기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시즌 중 충분히 멀티 이닝 기용을 선택했던 이 감독이 실제 멀티 이닝을 생각하지 않았을리 없다. 지도자 경험이 없던 만큼 코치진의 결정을 믿고 존중했을 가능성이 크다. 말 그대로 '모범생'같은 선택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정글과 같은 단기전을 이겨낼 수 없다. 언제나 가을야구에서 웃는 건 모범생이 아닌 과감한 승부사였다. 겨우 WC가 감독 커리어를 좌우하진 않는다. 그러나 이 감독이 내년에도 가을에서 웃고자 한다면, 겨우내 승부사가 돼 돌아와야 한다.
창원=차승윤 기자 chasy99@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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