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레 유순해진 ‘시진핑 외교’ 원인은 절박한 국내 경제 탓?

사공관숙 2023. 10. 20. 09: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제3회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 개막식이 지난 18일 오전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렸다. 사진은 정상회의에 앞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이 외국 국가원수, 국제기구 대표 등 귀빈들과 단체사진을 찍는 모습. 신화통신


공세적인 중국의 ‘전랑(戰狼) 외교’가 유순해지고 있다. 중국은 지난주 스리랑카와 42억 달러 규모의 부채 구조조정에 합의했고, 중국계 호주 언론인을 석방했다. 이달 말 열리는 ‘중국판 샹그릴라 대화’인 샹산포럼(香山論壇)에 미국을 초대했다. 그간 날을 세워 온 경쟁국들에도 화해의 손길을 뻗고 있는 모양새다. 최근 중국 외교에 한층 누그러진 분위기가 조성된 이유는 뭘까?

로이터 통신은 지난 17일 중국이 최근 개발도상국뿐만 아니라 경쟁국에도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가 심각한 국내 경제 상황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내 자본의 해외 유출, 부동산 위기, 청년 실업률 급상승 등 여러 경제적 압박이 중국의 외교 분위기를 바꿔 놨다는 해석이다. 프랑스 투자은행 나틱시스에 따르면 2023년 해외로 유출된 중국 자산은 약 1500억 달러로 추정된다. 앞서 중국은 청년 실업률이 지난 6월 21.3%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자 7월부터는 통계 내용 공개를 잠정 중단했다.

미 싱크탱크 제임스타운재단 윌리 람 연구원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서방과 관계를 개선하려는 이유는 다국적 기업의 중국 철수를 늦추고 전 세계 공급망에서 중국이 배제되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함”이라고 로이터 통신에 밝혔다. 미 시장조사기관 로듐그룹 분석가이자 중국 대외관계 전문가인 노아 바킨도 “중국은 통상 분야만큼은 평소와 다름이 없다는 확신을 세계에 주고 싶어 한다”며 “중국 지도층은 중국과 미국 및 그 동맹국들의 관계가 갈등만 일방적으로 고조되는 게 아니라는 점을 해외 투자자들에게 부각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계 호주 언론인 청 레이가 3년간 중국에 구금됐다가 풀려났다. 중국 관영 CCTV의 국제 방송인 CGTN 앵커였던 청 레이는 2020년 8월 국가 기밀을 해외에 제공한 혐의로 체포됐다. 사진은 지난 11일 호주 멜버른 툴라마린 공항에 도착해 통화 중인 청레이의 모습. AFP


경쟁국과 화해하려는 중국의 노력은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금했던 중국계 호주인 앵커 청 레이(成蕾)를 3년 만에 석방했다. 이번 석방은 호주와의 관계 개선을 염두에 둔 중국의 결단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연내 중국 방문을 계획 중인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를 위해 방해 요인 하나를 제거했다는 평가다. 또 중국은 이달 말 베이징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지역 안보 대화체 샹산포럼에 미국을 초대했고, 미국도 참석 의사를 밝혔다. 지난 9일엔 베이징을 방문한 대표적인 대(對)중국 강경파 척 슈머 미국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와 그 일행을 환대하기도 했다.

로이터 통신은 경제적인 요인 외에도 중국의 정치적인 계산도 언급했다. 즉 중국이 개발도상국과 관계를 심화하려는 데는 ‘글로벌 사우스(남반구의 신흥국·개발도상국)’와 함께 다극화된 세계 질서를 추진하려는 시진핑 주석의 정치적 목표가 있다는 해석이다. 보도는 중국이 이런 협력을 통해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가 ‘부채 함정 외교’라는 오명을 벗고 싶어 한다고 강조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중국은 제3회 일대일로 포럼이 개최되기 일주일 전 스리랑카와는 42억 달러 규모의 부채 구조조정에 합의했다. 같은 시기 잠비아와는 채무 관련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잠비아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한 아프리카 국가다.

향후 중국 외교 전망과 관련해 로이터 통신은 낙관론과 우려론을 함께 내놨다. 현재 중국은 친강(秦剛) 외교부장과 리상푸(李尚福) 국방부장의 실각으로 외교·안보 분야의 수장들이 부재한 상황이다. 하지만 오는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미·중 지도자의 만남이 성사되는 등 미·중 관계가 어느 정도 안정된다면 중국도 외교적으로 숨 쉴 틈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다만 내년 1월 대만 대선을 앞두고 중국이 군사훈련을 강행할 경우 서방과의 마찰은 불가피할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또 내년 미국 대선도 큰 변수 중 하나로 꼽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당선 가능성 때문에 바이든 대통령이 반도체나 관세 부분에서 중국에 양보할 공간 역시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사공관숙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연구원 sakong.kwansook@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