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집’·‘콩콩팥팥’ 등…비움의 미학으로 틈새 겨냥하는 콘텐츠들 [콘텐츠 피로사회②]

장수정 2023. 10. 20. 08:2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빠르고, 자극적인 유튜브 콘텐츠?…
이를 힘들어 하는 시청자 저격한 느린 콘텐츠도 이어질 것”

“요즘 인상이 진한 예능이 많아졌다. 우리는 심심한 맛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밥은 먹지 않나. ‘밥친구’라는 말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예능이다.” 나영석 PD가 설명한 tvN 예능프로그램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이하 ‘콩콩팥팥’)의 매력 포인트다.

친한 친구들끼리 작은 밭을 일구게 됐을 때 벌어지는 재미난 일들을 유쾌한 다큐 형식으로 풀어내는 프로그램이다. 이렇듯 ‘다큐’를 표방하는 ‘콩콩팥팥’은 카메라도, 스태프도 최소화해 ‘홈비디오’ 느낌을 내고자 했다. 이러한 과정들을 설명하면서 나 PD는 시청률 3%라는 다소 소박한 계획을 전했다. 많은 시청자를 아우르는 대중성은 부족할 수 있으나, 확실한 매력으로 마니아들을 저격하겠다는 의도가 묻어났다.

ⓒ‘실비집’ 영상 캡처

나 PD의 표현대로 ‘인상이 진한’ 예능이 넘쳐나고 있다. 설렘보다는 참가자들의 얽히고설킨 관계를 통해 긴장감을 조성, 각종 논란과 함께 강렬한 인상을 남긴 연애 예능 ‘나는 솔로’가 대표적이다. 돈을 걸고 극한 상황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도파민 자극’ 장르로 각광을 받기도 한다. 특히 유튜브는 물론,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들이 이러한 예능 제작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표현의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이에 이러한 흐름에 대한 피로를 호소하는 시청자들도 없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콩콩팥팥’처럼 심심한 맛으로 틈새 취향을 겨냥하는 콘텐츠도 늘고 있다.

유튜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 중 하나인 ‘핑계고’가 대표적이다. 유재석이 친한 지인들과 함께 수다를 떠는 토크 콘텐츠인데, 100만은 기본. 조회수가 높은 콘텐츠의 경우 500만 회를 돌파하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물론 ‘국민 MC’ 유재석의 영향력이 반영되지 않았다곤 할 수 없겠지만, 1시간이라는 긴 러닝타임 동안 특별한 장치 없이 수다만 이어지고 있음에도 시청자들의 반응이 뜨겁다. “밥 먹으며 틀어두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라며 ‘핑계고’만의 편안한 분위기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술과 함께 즐기는 연예인 토크 콘텐츠가 유튜브에서 주목받는 가운데, 방송인 황광희가 연예인 게스트와 함께 팬들을 위한 선물을 만들며 이야기를 나누는 소소한 분위기의 ‘가내조공업’도 수십만에서 100만 조회수를 오가는 인기 콘텐츠다.

이 콘텐츠를 연출한 이지애 PD는 ‘매운맛’ 토크쇼가 넘치는 유튜브 시장에서 ‘순한맛’으로 도전장을 내민 이유에 대해 “밥 먹으며 볼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 한 장면 정도는 놓쳐도 이해가 되는 콘텐츠들. 첫 번째 목표가 그랬다. 다큐나 조용한 교양 예능을 표방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가내조공업’은 빠른 편집은 지양하고, 효과음이나 자막을 최소화하며 출연자들의 이야기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다루고자 하는 주제에 초점을 맞춰, 느리지만 깊이 있는 전개를 이어나가는 콘텐츠도 있다.

‘핑계고’가 공개되는 유튜브 채널 뜬뜬의 또 다른 콘텐츠 ‘실비집’은 ‘밥 친구’를 넘어 ‘잠 친구’를 표방하고 있다. 방송인 남창희가 재료를 준비하고, 요리해 정갈하게 플레이팅 하는 과정을 천천히 따라가는 콘텐츠다. 코미디언 남창희가 아닌 요리하는 남창희에만 초점을 맞춰, 느리지만, 정성껏 이어지는 요리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웃음이 오가는 토크도, 침샘을 자극하는 맛깔난 먹방도 없는 요리 콘텐츠지만, 시청자들 사이에서 ‘힐링 콘텐츠’로 손꼽히고 있다. 남창희가 완성한 요리를 썸네일로 내세운 이 콘텐츠의 제작진은 “조곤조곤 나만 알고 싶은 힐링 맛집”이라고 ‘실비집’을 설명하면서 “온몸이 노곤해진다면, 실비집과 ‘잠 친구’가 될 초기 증상이오니 재생을 멈추지 말라”라는 당부까지 남겼다.

이 외에도 가수 장기하가 여러 지역의 맛집을 찾아가 낮술과 함께 음식을 즐기는 ‘낮술의 기하핰’ 등 주제의 매력을 오롯이 전달하며 편안함을 선사하는 유튜브 콘텐츠들이 ‘힐링’, ‘웰메이드’라는 평을 받으며 인기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확실한 색깔이 곧 콘텐츠의 인기로도 이어진다. ‘낮술의 기하핰’을 연출한 한창헌 PD가 “편집이나 어떤 기교로 웃기거나, 그러고 싶진 않았다. 장기하 씨가 말도 조금 느리게 하시고, 어떤 분들이 보실 때는 ‘마가 뜨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기도 하신다. 그런데 우리는 장기하 씨의 침묵 같은 것도 다 담아내며 그분의 특징을 살리고자 했다. 일부러 말을 걸지 않고 기다리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머쓱해하는 모습이 나오기도 하고. 그걸 보는 재미도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시청자들의 취향이 세분화가 된 현재, 이러한 콘텐츠들의 인기는 계속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도 있었다. 한 웹예능 PD는 “유튜브 콘텐츠라고 하면, 빠르고, 자극적인 전개를 떠올릴 수 있다. 이 또한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콘텐츠에 피로도를 느끼는 시청자도 분명히 있다. 이들의 취향을 정확하게 겨냥하는 것이 확고한 선택을 받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러한 색깔을 띤 콘텐츠들도 이어질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Copyright ©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