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하이엔드] 70주년 된 '이 신발'…올드머니 룩과 함께 돌아왔다
1953년 출시 후 브랜드 상징돼
할리우드 스타, 감독 즐겨 신어
6월엔 밀라노서 기념 전시 개최
올해 패션 트렌드를 꼽으라면 뭐니뭐니해도 ‘올드머니 룩’이다. 쉽게 말하면, 부의 대물림이 이루어지는 상류층 패션이란 의미다. 화려한 로고나 컬러 플레이 없이 클래식 아이템들로 구성한 단정한 스타일로 축약할 수 있다. 아이비리그 스타일을 말하는 프레피룩이나 영국 왕실 일가가 보여주는 로열 룩 또한 이에 맞다. 이런 스타일엔 신발 역시 클래식 코드를 가지고 있으면서, 본연의 내재된 힘이 있는 것이라야 어울린다.
그래서 지금 세계적으로 재조명받고 있는 신발이 바로 구찌의 ‘홀스빗 로퍼’ 다. 무던한 듯하면서도 시선을 잡아끄는 힘이 있는 이 신발은 ‘올가을의 신발’이 가져야 할 모든 것을 갖췄다. 스트리트 패션의 오랜 장기집권으로 운동화에 길든 발은 제아무리 멋진 구두라 해도 착화감이 좋지 않다면 선택을 거부한다. 굽이 높지 않지 않고 부드러운 가죽으로 만들어져 신었을 때 발이 편안하면서도, 패션성에 있어선 뒤쳐지지 않아야 한다. 홀스핏 로퍼는 이런 조건들을 완벽하게 만족시킨다.
브랜드 DNA에 있는 마구에서 영감
올해는 홀스빗 로퍼가 출시된 지 70주년이 되는 해다. 처음엔 발을 부드러운 가죽을 감싼 모카신의 형태에서 시작했다. 부드러운 가죽으로 착화감을 높이고, 발등 부위엔 말 입에 물리는 재갈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구찌의 장식물, 홀스빗을 붙였다.
홀스빗을 주요한 장식물로 활용한 데는 브랜드의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오랜 역사를 지닌 유럽 태생 명품들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그 시작은 마구(馬具)로부터 비롯된 게 많다. 구찌 역시 그런데, 창립자인 구찌오 구찌(Guccio Gucci)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운영한 마구용품점이 브랜드의 출발점이 됐다. 젊은 시절 영국 런던으로 건너간 그는 사보이 호텔의 말단 직원으로 취직해 지배인까지 올라갔다. 당시 접했던 영국과 유럽 상류층의 마구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1921년 다시 고향인 피렌체로 돌아와 마구용품을 제작해 판매하는 공방을 열었다. 이 마구들은 브랜드의 유산이 되어 지금까지 구찌 제품에 말과 관련된 장식이 들어가는 이유가 됐다.
구찌가 홀스빗을 제품의 장식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부터다. 구찌오 구찌의 아들 알도 구찌(Aldo Gucci)는 말에 사용하는 굴레(재갈과 이를 고정하는 고리, 고삐를 포함한 장치)에 착안해 두 개의 링과 이를 연결하는 막대를 디자인 요소로 사용해 독자적인 홀스빗 장식을 만들었다. 이를 가방· 신발·벨트 등 액세서리부터 의류에까지 활용했고, 실크 스카프의 프린트 문양으로도 선보였다. 지금은 이 장식만 봐도 ‘구찌’란 이름이 떠오를 정도로 브랜드를 상징하는 표식으로 자리 잡았다.
성 구분 없는 혁신의 신발
홀스빗을 사용한 여러 제품 중에서 홀스빗 로퍼는 그 의미가 특별하다. 세상에 첫선을 보인 것은 1953년으로, 이때는 구찌가 미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뉴욕에 첫 번째 매장을 열었던 해다. 당시 구찌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특별한 신발 출시를 준비했는데, 이것이 바로 홀스빗 로퍼였다.
캐주얼하면서도 감각적이고, 우아함을 담아낸 새로운 남자 신발. 안창이 따로 없이 가볍고 유연해 마치 양말을 신은 것처럼 편안했다. 끈으로 묶지 않아 신고 벗기도 편했다. 이런 독특한 디자인과 편안한 착용감 덕분에 홀스빗 로퍼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미국을 포함해 유럽 전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60년대엔 이에 힘입어 여성용도 출시했는데, 초기엔 앞코를 슬림하게 만들고 높은 뒷굽을 달았다가 70년대 이후엔 남성용 같은 낮은 로퍼 디자인으로 바꿨다.
특히 미국 할리우드 스타들이 이 신발을 좋아했다. 영화감독 프랜시스 코폴라와 배우 알랭 들롱, 더스틴 호프만, 존 웨인, 조디 포스터 등이 즐겨 신었다. 이들의 사진이 공개되면서 홀스빗 로퍼는 ‘젯셋족’의 스타일을 대표하는 신발로 여겨졌다. 80년 대에는 커리어 우먼들의 등장과 함께 그 문화에 맞춰 변형되기도 했으며, 85년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마련한 ‘패션 명예의 전당’ 에 선정돼 영구 전시되기도 했다.
또 한 가지, 구찌 홀스빗 로퍼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장인 정신이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가죽으로, 안창이 따로 없는 가볍고 유연한 신발을 만들기 위해서는 숙련된 기술이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홀스빗 로퍼는 신발 가죽, 인솔, 아웃솔 등을 동시에 꿰매 붙이는 블레이크 스티칭(Blake stitching) 기법으로 제작하는데, 이는신발 제작 기법 중에서도 내구성이 뛰어난 것으로 잘 알려진 제화기법이다.
지난 6월 열린 밀란 패션위크 기간에는 밀라노의 문화예술 공간 ‘스파지오 마이오치’에서 홀스빗 로퍼의 탄생 7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 ‘구찌 홀스비트 소사이어티(Gucci Horsebeat Society)’가 열렸다. 10명의 아티스트와 디자이너가 만든 설치 작품을 통해홀스빗 로퍼의 헤리티지를 조명하는몰입형 전시였다. 전시 명의 홀스비트(Horsebeat)는 ‘말의 비트’ ‘말의 심장박동’ 등의 의미로 홀스빗의 발음에 착안한 유사어를 사용해 재미를 줬다. 전시는 밀라노 기반으로 활동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겸 스파지오 마이오치의 큐레이터 알레시오 아스카리(Alessio Ascari)가 기획했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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