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하이엔드] 바닷속에서 목숨 잃을 뻔한 경험으로 만든 시계... 현대 다이버 워치 표준이 되다
1950년대 초 블랑팡을 이끈 장-자크 피슈테르는 다이빙 중 산소 부족으로 목숨을 잃을 뻔했다. 산소통에 남은 공기량을 알 수 없어서였다. 그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곧장 시계 제작에 들어갔다.
남은 다이빙 시간을 잴 수 있는 단방향 회전 베젤, 케이스로 물이 들어가지 않게 이중 밀폐 처리한 크라운을 갖춘 시계였다. 어두운 데에서 쉽게 시간을 볼 수 있는 야광 인덱스, 약 100m에 달하는 방수 성능 등 바다 탐험을 위해 필요한 기능도 갖췄다. 1953년, 그렇게 세상 빛을 본 시계의 이름은 피프티 패덤즈(Fifty Fathoms). 당시 유럽의 레크리에이션 다이빙 허용 깊이에 해당하는 50 패덤즈(약 91.45m)에 착안해 이름 지었다.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피프티패덤즈는 다이버 시계 분야의 최강자로 추앙받는다. 현대적인 모습을 갖춘 세계 최초의 다이버 워치 타이틀도 있다. 1735년 탄생, 현존하는 세계 최고령 시계 브랜드가 가진 정통 파인 워치 제작 기술을 등에 업고 진화한 것이 성공의 열쇠가 됐다. 수많은 파생 모델도 한몫했다.
바다, 피프티 패덤즈의 고향
피프티패덤즈 탄생 70주년 기념행사 취재를 위해 지난 9월 프랑스 남부의 휴양 도시 칸을 찾았다. 왜 이 도시일까? 답은 시계 역사 속에 있다. 피슈테르가 이 시계를 차고 첫 번째 테스트 다이빙을 한 곳이 칸 앞에 펼쳐진 푸른 바다였다. 공식 행사는 이틀에 걸쳐 이뤄졌다. 첫날엔 300여 명의 기자단과 함께 해양 보호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마련됐다.
블랑팡은 지난 20년간 ‘블랑팡 오션 커미트먼트’라는 이름 아래 전 세계 해양 단체와 긴밀한 관계를 쌓으며 활동을 벌여왔다. 고래상어 보존 프로젝트(2003년), 원시 해양 탐사 프로젝트인 프리스틴씨즈(2011~2016년), 해양 희귀 생물을 발견하고 보호하는 곰베싸 프로젝트(2013~현재)가 대표적이다. 구체적 성과도 있었다. 블랑팡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활동을 통해 전 세계 해양 보호 구역 면적이 2배로 커졌다.
토론에는 현재 블랑팡의 최고경영자 마크 A.하이에크, 해양 희귀 생물을 탐구하는 곰베사 프로젝트의 수장 로랑 발레스타, 전문 다이빙 강사협회 PADI의 대표 드류 리처드슨 등이 패널로 참석했다. “블랑팡은 해양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알리는 단체,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통해 긍정적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을 돕는다.” 하이에크의 말이다. 시계 탄생 70주년을 기념하는 일정의 일부임에도 시계에 대한 언급을 전혀 하지 않았다. 바다를 지키려는 블랑팡의 헌신과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현대 다이버 워치의 이정표
메인 행사는 둘째 날 오후 칸 해안에서 배로 20여분 거리에 있는 생뜨 마르그리트 섬에서 열렸다. 14세기 지은 수도원과 20세기에 운영을 멈춘 교도소가 있는 유서 깊은 장소다. 칸의 아름다운 도시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블랑팡이 단 하루를 위해 섬에 지은 행사장은 피프티 패덤즈의 요새이자 발자취를 기리는 작은 박물관 같았다.
1953년 첫 시계를 포함해 지난 70년간 선보인 빈티지 모델이 진열됐다. 프랑스 전투 잠수 부대를 시작으로 미국 최정예 엘리트 잠수 특전대인 네이비실과 독일 및 이스라엘 해군이 이 시계를 선택하게 된 배경을 담은 사진과 기록물도 흥미로웠다. 로랑 발레스타가 촬영한 바닷속 희귀 생물 사진전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였다.
70년 역사를 기리는 기념 모델 출시
행사의 대미는 피프티패덤즈 70주년 기념 액트(ACT) 3 모델의 공개. 액트 3는 만 70살이 된 컬렉션을 기념하기 위해 블랑팡이 올해 초부터 차례로 공개한 피프티패덤즈 액트 시리즈의 완결판이다.
이 시계는 1950년대 중반 당시 주요 해군 특수부대가 선택한 밀스펙(MIL-SPEC) 워치의 디자인 코드를 계승한다. 다이얼 6시 방향에 있는 수분 표시기는 트레이드마크다. 충격이나 파손 등의 이유로 시계의 방수 성능이 떨어졌을 때 빨갛게 색이 변한다. 이를 탑재한 시계의 수량이 워낙 적어 지금도 오리지널 밀스펙 워치는 컬렉터 수집 대상 영순위다.
액트 3의 케이스는 밀스펙과 같은 지름 41.3mm다. 9캐럿 골드와 구리에 은∙팔라듐∙갈륨을 섞은 ‘브론즈 골드’로 만들었다. 군용 시계 특유의 남성성과 골드가 내뿜는 온화한 빛이 조화롭다. 케이스 뒷면으로는 건축미가 느껴지는 자체 제작 오토매틱 무브먼트 1154.P2를 확인할 수 있다. 다이빙 워치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엿볼 수 있는 시계가 탄생했다.
칸(프랑스)=이현상 기자 lee.hyunsa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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