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조작 의혹’ 문제의 하한가 종목들 지금은?…상장폐지 위기 몰리기도
바른투자연구소발 하한가 5개 종목, 하락률 70~80%대로 부진
설범 대한방직 회장, 폭락 틈타 장내매수로 지분율 끌어올려
감사의견 거절된 만호제강은 상장폐지 절차 진행 중
코스피 상장사인 영풍제지와 대양금속이 지난 18일 동시에 갑작스러운 하한가를 맞으면서 금융당국이 조사에 나섰다. 올해 들어서만 벌써 세 번째 '하한가 사태'다. 지난 4월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발 8개 종목 주가 폭락, 6월 온라인 주식투자 카페 '바른투자연구소'발 5개 종목 하한가 사태에 연루된 종목들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특정 세력의 주가조작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4월과 6월의 하한가 사태 등으로 당국이 시세조정 의혹 등에 예민한 상황에서 세력이 간 큰 행동을 한 것 같다"고 전했다.
더 큰 문제는 주가조작 세력의 혐의가 구체적으로 밝혀지기까지는 오랜 시일이 걸려 관련 종목에 투자한 개인들은 고스란히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실제 앞선 두 차례에 걸쳐 하한가를 맞은 종목들의 주가는 4~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대부분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개인 투자자들이 여전히 큰 손실로 고통받는 가운데 몇몇 종목의 최대주주는 주가가 폭락한 틈을 타서 지배력을 강화하는 기회로 삼았다. 또 일부 종목은 상장폐지 위기에 내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2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4월24일과 6월14일 각각 무더기 하한가를 맞았던 13개 종목의 주가는 수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대부분 회복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성홀딩스는 첫 하한가 당일 대비 등락률(전날 종가 기준)이 -90%에 달했다. 선광(-89.47%), 서울가스(-86.47%), 삼천리(-80.16%) 등도 급락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른바 '라덕연 게이트'로 불리는 사건의 표적이 된 종목들로, 첫 하한가 사태가 터진 지 6개월 가까이 지났지만, 주가는 사태 이전 대비 10~20% 수준에 그친 상태다.
지난 6월 무더기 하한가를 맞았던 5개 종목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한방직은 사태 이전 대비 주가 등락률이 -83.07%를 기록했고, 이어 동일산업(-76.67%), 방림(-72.78%) 등 순으로 부진했다. 두 번째 하한가 사태가 불거졌던 당시 금융당국은 해당 5개 종목에 대해 투자자 보호를 위해 약 2주 동안 매매거래 정지 조치를 취했지만, 거래 재개 직후 다시 주가가 폭락했다.
가장 최근 갑작스런 하한가를 기록한 영풍제지와 대양금속도 현재 매매거래가 정지된 상태다. 하지만 앞선 사례에 비춰보면 이 같은 조치가 추가 주가 하락을 방어하기에는 역부족이란 점에서 해당 종목 투자자들은 불안에 떨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주가조작의 표적이 돼 주가가 폭락한 틈을 타서 일부 상장사들의 최대주주는 추가로 지분을 사들이기도 했다. 설범 대한방직 회장(대표이사)은 하한가 사태 이후 지난 7월부터 장내매수 등 방식으로 지분을 매입했다. 이에 따라 설 회장이 보유하고 있었던 대한방직 지분율은 25.89%(7월11일 기준)에서 30.46%(10월6일 기준)으로 늘었다. 이 중 일부는 모친인 임희숙씨로부터 상속받은 것이다. 주가가 대폭락한 사이 발 빠른 상속 및 지분 매입으로 지배력을 강화한 것이다.
동일금속 최대주주인 오길봉 대표이사도 하한가 사태 이후인 지난달 21일 보유 지분이 기존 58.66%에서 58.73%로 늘어났다고 공시했다. 또 오 대표이사의 자녀인 오중권씨와 오성환씨도 지난 8월25일 각각 3000주씩 장내매수해 지분율이 늘었다.
그나마 주가 하락폭이 덜한 다올투자증권의 경우, 하한가 사태 발생 이후 주가가 폭락하자 김기수 프레스토투자자문 대표가 지분을 대거 사들이면서 경영권 분쟁 가능성에 직면한 상태다. 김씨는 다올투자증권 지분 7.07%를 보유한 2대 주주다. 특별관계자가 보유한 지분까지 합치면 총 14.34%에 이른다.
하한가 사태에 연루된 종목 중 상장폐지 위기에 내몰린 곳도 있다. 만호제강은 지난해 사업연도에 대한 감사보고서에서 감사의견이 거절됨에 따라 상장폐지 절차가 진행 중이다. 지난달 25일부터 매매거래도 정지됐다. 다만 회사 측은 전날 상장폐지에 대한 이의신청서를 제출했다고 공시했다.
두 번의 무더기 하한가 사태 이후 지난달 25일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는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감시체계 고도화를 위한 종합 개선 방안'을 내놨다. 문제가 된 종목들의 주가조작 시도가 길게는 수년에 걸쳐 이뤄진 데 비해 현재의 이상거래 적출 기준은 100일에 불과한 탓에 사전에 걸러낼 방법이 없었다. 이에 당국은 6개월 및 연간 이상거래 적출 기준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1년 전 대비 주가가 200% 이상 급상승한 종목에 대해서는 투자경고지정을 할 수 있도록 요건을 신설하는 등 시장경보제도도 개선할 방침이다.
다만 관련 규정 개정, 시스템 개발 등에 시간이 걸려 실제 적용은 내년 상반기에나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시장경보제도는 세칙 개정 사안이어서 관련 절차가 필요하다"며 "내달 초 개인 투자자를 포함한 전체 시장참여자를 대상으로 의견수렴을 진행한 후 시스템 개편 등을 거쳐 내년 초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국은 이번 영풍제지와 대양금속의 하한가 사태도 앞선 두 번의 사례와 유사한 수법일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해진다. 특히 과도하게 주가가 급등한 영풍제지에 대해서는 이미 증권가에서 경고가 많았다. 그럼에도 당국의 조치가 늦어지면서 유사한 사태가 또 불거져 추가 피해자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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