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만난 사람]자연보호 합시다?...."쉿, 그 말은 차별입니다"
일상 속 차별어 살피고 대안 모색
노인·지도층 등 시간 지나 어감 변해
인간이 아니라 자연이 인간보호
'자연보호', 차별어 범주 속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의 ‘꽃’ 中
모든 존재는 호명됐을 때 의미나 가치가 선명해지기 마련이다. 그만큼 말은 유·무형을 막론하고 대상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다. 말 자체가 지닌 긍·부정의 의미는 식물의 생장에도 영향을 끼친다. 실제로 초등학교에선 감자나 양파에 좋은 말과 나쁜 말을 하고 결과를 비교하는 실험 내용을 가르치고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차별어 사용이 나쁘다는 건 아이들도 아는 내용이지만, 지금도 사회 곳곳에서 몰라서 사용되고, 알고도 내뱉어진다. ‘틀딱’ ‘맘충’ ‘한남충’ 등 나이, 성별, 직업, 장애 등 수많은 ‘다름’이 차별 언어로 표현된다. 다행인 건 그런 차별어를 바로잡고자 노력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 일상 속 차별어를 살피고 그 의미를 살펴 대안을 모색하는 내용을 담은 책 ‘차별어의 발견’(사람in)을 펴낸 김미형 상명대학교 한국언어문화학과 교수를 마주했다.
-다양한 언어 중 특별히 ‘차별어’에 집중한 이유가 있나.
▲대학 사회언어학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함께 사회 관련 주제를 토의하면서 차별과 관련하여 할 말이 많다는 것을 느끼곤 했다. 행동이나 언어표현으로 가해지는 다양한 사회적 차별이 존재하는 데 대해 젊은이들은 사회가 불공평하다고 비판했다. 그래서 차별어라는 문제를 따로 떼어내, 단어가 내포한 차별적 의미를 세세히 살펴보는 것도 의의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언어는 생물이란 말이 있다. 다양하게 변모하는 데 실제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본래 뜻에 차별이 더해지는 경우가 있다.
▲언어는 살아 있는 생물과 같다. 의사소통 수단으로 사용되는 언어는 사람의 생각이 바뀜에 따라 뜻도 달라진다. ‘노인’이란 말은 과거, 연세 있는 어른을 의미했고, ‘노인 공경’ 같은 문맥에서 자연스럽게 쓰였다. 하지만 차별 맥락에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선뜻 좋은 마음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어감을 갖게 됐다. ‘어르신’으로 고쳐 부르자는 제안까지 나온다. ‘지도층’이란 말도 본래 뜻은 나쁘지 않으나 비리 사건과 함께 쓰이면서 부정적 어감을 갖게 됐다. 언어는 사람들의 쓰임에 따라 뜻이 생기거나, 변하거나, 소멸한다.
-예전보다 언어 사용에 주의를 기울이는 분위기가 생겨났다. 다만 온라인상에서 혐오 표현을 어렵지 않게 접하게 된다.
▲일차적 원인은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사회 뉴스를 보면 권력지향적 이기심과 극단적 배타주의가 가득하다. 무서운 사건을 접할수록 사람들의 정서가 고갈되고 파괴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그에 따른 울분을 쏟아내기 가장 쉬운 곳이다. 익명성에 숨어 극단적이고 과격한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 누가 뭐라 하면 ‘아니면 말고’라고 생각한다. 또 급변하는 세상에서 마음, 인격에 소홀한 것도 원인이다.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지혜로워지기보다는 신경 안 써도 되는 변화를 따라가다가 길을 잃는다. 온라인에 혐오 표현을 도배하는 사람이 다수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자정 노력이 일어나지 않으면 다수가 소수의 혐오 표현을 접해야 하는 불편이 지속될 것이다.
-‘장애우’처럼 선의로 건넨 말이 불쾌하게 해석되는 경우도 있다.
▲‘장애우’란 표현에는 장애인을 친근하게 대하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다. 다만 대등한 인격체로 여김 받지 못하는 경험을 많이 하게 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그런 표현이 가식으로 느껴질 수 있다. ‘장애우’보다 ‘장애인’으로 불러달라는 건 어쩌면 좋은 마음을 좋게 해석할 수 없을 정도의 힘듦이 내재되어 있는 건 아닐까…. 또한, ‘우(友)’는 친근한 또래를 부르는 ‘벗’이라는 뜻으로, 일반적인 표현도 아니다. 바른 표현이 쉽지 않으나 그렇다고 ‘말을 말자’는 식의 태도는 피해야 한다. 바른말이 우리 사회를 더 낫게 만들고, 행복으로 인도한다는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런 마음이 통하면 설령 표현을 잘못했다 해도 비난받지 않을 것이다. 바른 표현 앞에 머뭇거리는 마음조차 헤아려주는 인간관계가 이뤄지길 바란다.
-‘노약자석’보다는 ‘배려석’이란 말이 훨씬 부드럽게 느껴진다. 이처럼 말은 그 자체로 ‘넛지’ 효과를 부르는 힘을 가진 것 같다.
▲같은 표현이라도 어감이 더 친절하고, 특별한 의지를 갖게 하는 말이 있다. 청소하시는 분을 ‘환경미화원’으로 부르는 표현이 그렇다. ‘환경미화원’이라고 했을 때 환경을 개선하며 주변을 아름답게 하는 가치가 분명해진다.
-‘자연보호’란 말도 차별어라고 했다.
▲자연을 보호하자는 말이 왜 차별일까라고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다. 이럴 때는 차별이란 어색한 표현에서 느껴지는 폭력이란 관점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과연 자연을 잘 보호하면서 살아왔을까. 현재 지구는 심하게 오염됐고, 보전 위험에 처해 있다. 사람들은 자연을 훼손하면서도 자연보호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자연 입장에서 보면 "너희가 아니라 내가 너희를 보호하는 거야"라고 말할 수 있다. 자연을 훼손하면서 인간의 관점에서 일방적인 언어표현을 하고 있으니, 대상을 고려하지 않는 차별이라 할 수 있다.
-사전적 의미가 실제 통용되는 의미와 다른 경우도 많다. 간혹 해석을 놓고 ‘불쾌했다’는 쪽과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는 쪽이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언어의 의미는 한가지로 고정되지 않고 전이된다. 연관성을 지닌 제2, 제3의 뜻이 덧붙는다. 때로는 그런 변화가 사전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기도 한다. 대개 언어를 올바른 뜻이 아니라, 정략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때 논쟁이 일어난다. 그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허무하고 알맹이 없는 논리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과거 통일부는 ‘탈북자’라는 말을 ‘새터민’으로 바꾸었으나 은연중에 느껴지는 차별성을 내포했다는 점에서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었다. 지금은 ‘북한이탈주민’ 등으로 불리는데, 이런 경우 표현 방식에 상관없이 그 말 자체가 차별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특정 상황에서 지칭하는 말이 필요할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굳이 새터민이나 탈북자와 같은 단어로 특정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건 상대방의 사적 사연을 굳이 드러내 선별하려는 색안경을 낀 태도가 될 수 있다. 전라도인, 경상도인 같은 표현을 안 쓰지 않나. 북한에서 한국으로 와 한국민이 된 사람을 굳이 그렇게 부를 이유가 없다.
-차별어를 바로잡기 위해 우리 사회는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나.
▲언어 정책을 수립하고 관리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에 국립국어원이 있고, 국어기본법에 의거해 지역별로 세워진 국어문화원이 있다. 이들 기관은 바른 언어생활을 위한 정책을 세워 교육을 진행한다. 주요 목적은 차별어와 혐오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순화어를 만들어 알린다. 이때 각 지방자치단체도 힘을 보탠다. 자발성에 기인한 언어를 제도로 강제할 수 없지만, 올바른 언어생활을 위한 노력은 지속되고 있고, 그래야 한다. 차별어 논의에 사회적 관심이 커지게 하기 위한 언론의 역할이 크다. 언론부터가 바른 표현을 쓰고, 널리 전하는 데 앞장섰으면 좋겠다.
김미형 저자는 상명대학교 한국언어문화학과 교수이자, 상명대학교 천안캠퍼스 교학부총장, 한국공공언어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상명대 국어문화원 원장, 국어문화원연합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30년 넘게 한국 언어문화를 가르치고 있다.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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