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에 묻다]④노무라 "韓, 저성장 고착…꼭 비관적은 아냐"

문제원 2023. 10. 20.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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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우 노무라 수석 이코노미스트 인터뷰
박정우 노무라 수석 이코노미스트

"그동안은 우리나라 성장률이 계속 떨어졌어도 세계 경제 성장률과 비슷하게 갔는데, 앞으로는 그만큼 못 따라가게 될 겁니다. 하지만 주력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측면에서 봤을 땐 저성장을 꼭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일본계 투자은행(IB) 노무라의 박정우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6일 아시아경제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 성장률을 올해 0.9%, 내년 1.5%로 전망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이코노미스트는 노무라 글로벌 경제팀 소속으로, 현재 싱가포르에서 한국 경제를 주로 담당하고 있다.

노무라는 지난해 말 유일하게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0.6%라는 비관적인 수치로 전망해 눈길을 끌었다. 이후 몇차례 수정을 통해 전망치를 0.9%까지 올렸지만 여전히 한국은행(1.4%), 국제통화기금(IMF·1.4%), 경제협력개발기구(OECD·1.5%)는 물론, 다른 글로벌 IB 평균에 비해서도 낮은 '0%대' 성장률로 전망하고 있다.

박 이코노미스트는 "한은보다 성장률 전망치가 낮은 이유는 가계의 소비 여력이 많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라며 "여름부터 가계가 고금리에 버틸 수 있는 여력이 많이 소진됐고, 해외여행을 나가서 쓰는 부분도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2% 전후이고, 앞으로 낮아지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소비나 내수경기는 부정적으로 본 반면, 주력 산업과 수출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박 이코노미스트는 "저성장 자체보다 더 중요한 건 주력 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이 있느냐는 점"이라며 "한국은 성장률이 떨어지고 있지만 산업적 포트폴리오 측면에서 봤을 때는 미국을 제외하고 굉장히 좋은 구조"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한국의 높은 가계부채 비율에 대해선 고금리와 맞물려 가계 소비를 제약할 수 있다면서도, 너무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박 이코노미스트는 "가계부채가 많지만 연체율은 낮은 편"이라며 "대출을 받아 흥청망청 쓰지 않고 일종의 투자 자산인 주택에 넣는 것이기 때문에 금융시스템 측면에서 봤을 때 리스크가 작다"고 했다.

아래는 박정우 수석 이코노미스트와의 일문일답.

(사진=블룸버그)

-한국은행은 우리나라가 올해 1.4%(내년 2.2%)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노무라는 그보다 더 낮게 본다.

▲노무라는 한국 경제성장률을 올해 0.9%, 내년 1.5%로 전망한다. 한은보다 낮게 보는 이유는 가계의 소비 여력이 많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소비에 대한 전망이 다른 것 말고는 큰 차이가 없다.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가계가 고금리를 버틸 수 있는 여력이 있었던 것 같은데 여름부터 많이 소진됐다. 그래서 7~8월 소비가 상당히 안 좋았다. 9월에는 되살아났지만 추석 연휴가 있었던 걸 고려해야 한다. 또 국내 소비에 한정시켜 보면 해외여행 나가서 쓰는 부분이 커졌다. 일본의 경우 한국인이 전체 입국자 1등이다.

-노무라는 지난해 말 한국의 올해 성장률을 -0.6%로 전망했었는데 0.9%로 높인 이유는.

▲국내 수요가 안 좋다 보니까 무역수지가 저희 예상보다 많이 늘었다. 수출보다 수입이 훨씬 더 줄면서 생긴 흔히 '불황형 흑자'라고 하는 부분이다. 수입이 자본재, 소비재 기준으로 최근 몇 달 사이 급감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순수출의 성장기여도가 많이 올라갔다. 하지만 올해는 어렵고 안 좋은 상황이 맞다. 2분기에도 소비가 기대 대비 위축됐고 3분기와 4분기도 넉넉하진 않을 것 같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소비나 내수경기는 우려가 있지만 주력 산업이나 제조업 수출 부분은 긍정적으로 본다.

-내년 이후에도 우리나라의 저성장이 이어질까.

▲아주 심플하게 잠재성장률을 계산하려면 노동인구 증가율에 생산율 증가율을 더하면 된다. 우리나라는 전체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해 경제활동인구 증가율이 0.5% 정도밖에 안 된다. 그럼 우리가 2% 성장하려면 생산성 향상에서 1.5% 이상 나와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나오기 힘들다.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2% 전후이고, 앞으로 낮아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그동안은 우리나라 성장률이 계속 떨어졌어도 글로벌 성장률과 비슷하거나 조금 높았는데, 앞으로는 그걸 못 따라가게 되는 거다.

그런데 선진국 경제와 비교해보면 그렇게 나쁜 건 아니다. 경제 규모가 커졌기 때문에 성장률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더 중요한 건 주력 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이 있느냐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과거 고비 때마다 성장을 이끌었던 주력 산업이 있었다. 아주 멀게는 신발과 가발, 그다음에는 건설, 조선, 중공업, 최근에는 반도체와 제약, 이차전지 그리고 이제는 콘텐츠 산업도 있다. 성장률은 떨어지지만 산업적 포트폴리오 측면에서 봤을 때는 미국을 제외하고 굉장히 좋은 산업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저성장을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한국의 높은 가계부채 비율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가계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36% 이상이면 가계가 소비를 줄이기 시작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래서 정부가 40%를 가이드라인으로 잡고 있는 거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한은에서 계산한 것만 봐도 부채를 가진 가계의 DSR이 40% 정도이고, 다중채무자도 400만명이 넘는다. DSR이 높은 수준이기 때문에 가계의 이자 부담을 늘려 소비를 제약하는 요인이 된다.

하지만 가계부채를 우리 스스로 너무 부각할 필요는 없다. 가계부채가 그렇게 많은데 은행 연체율은 0.4%, 다중채무자 연체율도 1%대(2분기 1.4%)밖에 안된다. 굉장히 성실한 나라다. 돈을 빌려서 흥청망청 소비하면 문제겠지만 우리나라는 주택을 일종의 투자 수단으로 본다. 가계 저축이 예금이나 주식으로 가는 게 아니고 주택이라는 자산에 넣는 거다. 외부에선 가계부채가 높다고 하면 금융시스템 리스크나 재정위기로 연결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금융시스템 측면에서 봤을 때 리스크가 작다.

-최근 미국의 금리인하 기대감이 축소되면서 고금리 장기화 전망이 많아졌다. 고금리가 뉴노멀이 될 수 있다고 보나.

▲나라마다 다를 것 같다. 미국은 2008년 이후 가계 부문의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이 성공적으로 됐고, 특히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금리 등이 대부분 고정금리이기 때문에 금리 상승의 효과가 잘 나타나고 있지 않다. 그래서 미국은 고금리를 장기화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 반면 한국은 다중채무자가 많고 가계와 기업의 이자 부담을 줄 수 있는 변동금리의 비중이 커서 고금리를 유지하기가 미국에 비해 힘들다. 미국의 고금리가 미국의 뉴노멀일 순 있는데, 한국 등 주변국은 차별화된 모습을 보일 것 같다.

-노무라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와 한국은행의 금리가 언제 인하될 것으로 전망하나.

▲Fed는 내년 3월에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내년 연말까지는 3.5%로 본다. (현재 상단 기준 5.5%) 그런데 지난주 미국의 슈퍼코어 물가(주거비 제외 근원물가)가 여전히 강한 것으로 나와, 금리인하 시점이나 인하폭이 바뀔 수 있는 리스크는 있다. 한국은행은 내년 4월 정도에 금리인하를 할 것으로 본다. 미국의 금리인상이 올해 종료될 거라는 걸 전제로 한다. Fed도 내년 금리는 올해보다 낮을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내년 금리인하 기조에 대해선 큰 부담이 없을 것 같지만, 시점이 문제다. 한국은 지금 수출이 회복되는 가운데 소비는 계속 약세라서 내년 정책 포커스는 부진한 내수 경기를 어떻게 살리느냐가 될 것 같다.

-최근 미국과 한국 등 주요국이 고물가로 시름하고 있다. 2000년대 세계화와 중국의 값싼 제품 수출로 인한 '저물가 시대'가 끝나고 '고물가 시대'가 올까.

▲과거 저물가 시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크게 3가지였다. 첫째 기술 발전, 둘째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한) 중국의 저임금 노동력, 셋째 중앙은행의 2% 물가상승률 목표다. 저물가 시대의 3대 축이다. 이 중에서 중국의 저임금 노동력은 많이 약해졌다. 하지만 저는 기술 발전과 인플레이션 목표 달성을 위한 중앙은행의 강력한 통화정책이 훨씬 더 물가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중국 (인건비 상승) 효과로 인해서 저물가 시대가 끝나고, 고물가 시대가 이어질 것이라는 데 크게 동의하지 않는다.

-한국은 고령화 등 영향으로 저성장 국면에 들어갈 거란 분석이 많다. 그럼 물가도 중장기적으로 2% 아래로 내려갈 가능성이 큰가.

▲우리나라는 고물가보다 저물가를 더 걱정해야 하는 건 맞다. 석유를 많이 수입하는 국가다 보니 간혹 국제유가가 크게 오를 때 물가도 따라서 움직이는 경향이 있지만 앞으로 고령화나 가계 소비 여력이 크지 않다는 점에서 보면 자연스럽게 노동시장에서도 임금 등이 오를 가능성이 크지 않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반도체, 첨단기술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 경제 전망은.

▲3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최근 중국 화웨이가 7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공정으로 만든 모바일 프로세서를 탑재한 '메이트60 프로'를 공개해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미국의 수출 규제를 받는 극자외선(EUV)이 아닌 구형 심자외선(DUV)으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중국이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기술 발전에 성공하는 시나리오가 있고, 홍콩이나 말레이시아 등 백도어(뒷문) 시장에서 장비를 수입할 가능성도 있다. 또 미국과 중국이 어떤 이벤트로 화해하는 국면도 생각할 수 있다. 현재 시장이나 전문가들은 이 3가지 모두 힘들다고 본다.

만약 중국이 7나노급 반도체 등을 만들 수 있더라도 이걸 대량 생산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시장성, 경제성을 따져야 한다. 중국 반도체 업체들은 정부 지원금을 많이 받는다. 손실이 계속 나면서 만드는 거다. 중국과 미국·한국 등은 반도체 분야에서 4~5년(특정 분야는 10년 정도) 기술 격차가 있는데 장기적으로 봤을 땐 그 격차가 유지되거나 더 벌어질 것 같다. 중국 경제는 장기적으로 3~4%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중국도 대도시는 국민소득이 2만~3만달러까지 올라온 만큼 성장률이 낮아지는 건 당연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23일 저장성 항저우에서 열린 제19회 아시안게임 개회식에서 인사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중국의 중간재 자립도가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중국에 대한 중간재 수출을 많이 했던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은.

▲중국의 수준이 올라가면서 자국 산업이 육성되고, 그럼 자연스럽게 한국에서 수입하던 것을 스스로 만들게 된다. 우리나라도 20년 전만 해도 일본 코끼리 밥솥을 썼지만 지금은 쿠쿠를 쓴다. 우리가 기존에 중국에 팔았던 제품을 더이상 팔 수 없게 될 수 있다. 앞으로 중국이 필요로 하는 제품이나 서비스 중 우리가 비교우위에 있는 걸 발굴해야 한다. 다행히 미국이 이번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중국 공장에 미국산 반도체 장비 반입을 무제한 연장해줬기 때문에 중국과의 무역을 연착륙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일본 경제가 활력을 되찾고 있다. 노무라는 어떻게 보나.

▲일본은 지난 30년간 디플레이션(물가하락)으로 고생을 했는데, 지금은 물가가 오르는 쪽으로 문화가 바뀌고 있다. 양적완화와 제로금리 정책도 효과가 있었지만 (인구감소로) 노동 자원이 줄면서 자연스럽게 임금이 올랐다. 이것만 보면 기업의 비용이 늘어 안 좋은 건데, 여기에 최근 해외에서도 투자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 TSMC나 인피니온 등 중국에서 나오고 싶은 반도체 기업들이 일본을 대안으로 삼고 있다. 투자가 들어가면 그 지역에 활력이 생긴다. 이게 맞물리면서 일본은 선순환 고리로 가는 거 같다.

박정우 노무라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일본 최대 IB 노무라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현재 싱가포르에 있는 글로벌 경제팀에서 한국과 대만 경제를 담당하고 있다. 한국 경제와 경제 정책 분야에서 2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노무라 이전에는 한국투자증권과 삼성증권 등에서 일했다. 런던정경대에서 경제학 석사, 서울대에서 커뮤니케이션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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