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人사이드]"'성실한 실패자'에 3억까지 보증, 재기 도와야야죠"

심나영 2023. 10. 20.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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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구 신용보증기금 기업개선부 부장
"재창업 기업 생존율이 훨씬 높아"
"보증심사땐 화장실 청소 여부까지 확인"
재도전 지원, 1~9월 221개업체·336억원
신용보증기금 기업개선부 강현구 부장.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우리나라는 유독 실패에 가혹한 사회였다. 한 번 창업했다가 망하면 낙인이 찍히고 재기하기도 힘들었다. 지금은 과거보다 실패를 용인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해도, 당장 빚을 탕감받았던 사업자가 재창업을 하려고 은행에 가면 빈손으로 돌아서야 하는 게 현실이다. 이런 문제를 인식한 신용보증기금(이하 신보)은 '재도전 지원 프로그램'으로 실패자들이 다시 일어설 권리를 찾아줬다. "'성실한 실패자'는 재기를 하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게 강현구 신용보증기금 기업개선부 부장이 전하는 이야기다.

-재도전 지원 프로그램은 왜 만들어졌나.

▲중소기업 사장님들이 사업 실패를 해서 대출을 못 갚으면 신보가 은행에 대신 상환한다. 이걸 대위변제라고 한다. 이후 사장님들은 신용불량자가 되고 다시 사업하기가 힘들어진다. 파산 신청을 해도 다시 대출받는 데 제약이 많다. 첫 창업 때는 은행은 물론이고 부모와 친구까지 돕지만, 한 번 실패하면 몇 년간 생계가 곤란해진다. 재도전하려고 신보에 사업계획을 가져온 분들은 대부분 개인회생자다. 신보의 목표는 ‘성실한 실패자’를 돕는 거다. 돈 빼돌리고 거래처 결제도 안 해준 사람들은 안 돕는다. 성실한 사업자들이 가진, 좋은 기술이 사장되는 걸 막자는 게 신보의 생각이다.

-성실한 실패자를 어떻게 찾아내나.

▲심사를 한다. 재도전 지원 신청을 하면 과거 사업을 할 때 최대한 상환 노력을 했는지, 거래처 관계가 제대로 정리가 되는지를 본다. 현장조사를 나가면 우편함에 전기세나 세금 연체 통지서부터 살피고 사무실로 올라간다. 회사 거래처 명세를 쭉 보면 신보와 거래하는 회사가 십중팔구 있다. 그 거래처 대표들에게 전화만 한 통 해도 과거 행위를 알 수 있다. 직원 분위기는 물론 화장실 청소 여부까지 확인하라고 교육받는다. 사업 실패해서 신보가 은행에 대신 갚아준 돈을 다시 신보에 분할 상환하고 있는 분도 계신다. 이런 분이 재창업 하고 싶다면 신규보증을 해주는 제도도 올해 1월에 만들었다. 최소한 세 번 상환하고 다른 신용불량만 없으면 도움받을 수 있다.

-지원 대상은 누구이고, 얼마나 보증해주나.

▲신보 보증률은 80%가 기본이다. 하지만 재도전은 은행에서 부담을 안 지려고 한다. 그래서 거의 90~95%까지 보증을 서준다. 일반 영업점을 대상으로 한 재도전 보증금액은 최대 3억원까지다. 사업계획·신용도·성장가능성이 있다면, 적정한 금액을 지원해줘야 재부실을 막을 수 있다. 사업자금 3억원이 필요한데 신보가 1억원만 보증해주면 나머지 2억원을 조달할 방법이 없다. 제때 자금이 안 들어가면 사업이 안 돌아가고, 지원한 1억원도 의미가 없어진다.

신용보증기금 기업개선부 강현구 부장.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지원 대상은 세 분류다. 첫 번째 단계는 부실 발생 직후에 바로 지원받는 사장님들이다. 사업 실패 후 신보가 은행에 대위변제한 금액을 갚도록 해 회생 지원을 한다. A씨가 신보의 보증금 1억원을 못 갚아서 신보가 대위변제 해줬다고 치자. 채무자는 1억원을 신보에 갚아야 하는데 돈이 없으니까 일단 신보가 1억에 대한 보증서를 새로 끊어준다. 회생부터 도운 다음 A씨가 분할에서 갚으면 된다. 두 번째 단계는 신보의 대위변제액을 성실히 상환하는 이를 도와주는 거다. 3회 이상 분할 납부한 사람에게 신규자금 보증을 제공한다. 세 번째 단계는 회생절차 완료자나 파산면책을 받은 사람들에게 신규자금을 지원하는 거다.

-재기에 성공한 사례가 있나.

▲1995년부터 공작기계 제조업체를 운영했던 사장님이 있다. 외환위기 때 거래처 도산으로 자금 회수를 못하자 부도가 났다. 이후에 취직해 빚을 갚아나갔지만 결국 법원에 파산 신청하고 2009년 빚 탕감을 받았다. 기술이 있어 재기해보려고 3년 전 회사를 차렸지만, 탕감 기록 때문에 은행에서 돈 빌리기가 쉽지 않았다. 다행히 신보에서 9000만원 대출 보증을 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사업을 해 작년 매출액이 14억8000만원에 달했다.

8년 전까지 여성 의류 제조업을 하다가 수익성이 떨어져 사업을 접고 신보 채무를 분할 상환해온 여성 사장님도 있다. 원래 요리에 관심이 많아서 한정식 납품 사업으로 2021년에 재도전했다. 손맛이 좋아 거래처가 점점 늘어났다. 운영자금이 필요해 은행 문을 두드렸지만 응답이 없었다. 신보에 하소연하다가 과거 신보 채무를 성실히 상환 중이어서 재기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회사는 올해 상반기에만 21억4900만원 매출을 올렸다.

-부실률이 높아지는 게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통계청의 2021년 조사를 보면 재창업이 살아남는 확률이 훨씬 높다. 재창업 기업의 5년 생존율은 73.3%로, 전체 창업기업 29.2%에 비해 훨씬 높았다. 재창업을 한 사람들의 경험 덕분이다. 재도전 지원 프로그램 규모도 더 늘리고 있다.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221개 업체에 336억원을 신규보증해줬다. 이 속도면 작년 한 해 보증실적(277개 업체·380억원)을 올해 뛰어넘을 거다. 코로나19 이전인 2018년(190개 업체·194억원)에 비해서 보증 액수는 두배 가까이 늘어났다. 부실률이 증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경기가 어려울 때일수록 신보가 먼저 나서야 한다. 위기 때 중소기업인들의 구원투수는 신보밖에 없다.

심나영 기자 sn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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