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보다 비싼 서울 물가…“공급자 중심 시장구조가 원인”

안세진 2023. 10. 20.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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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안세진 기자

최근 몇 년 새 우리나라의 식품, 외식, 의류 등 전반적인 물가가 일본을 크게 앞질렀다. 그동안 경제 규모가 우리나라보다 두 배 이상 큰 일본은 아시아에서 물가가 비싼 나라로 인식됐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 국민이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생활비를 지출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문가들은 “공급자 중심의 유통구조”를 하나의 문제점으로 짚었다. 각종 공급자 집단의 강한 입김이 가격인상에 결정적인 시장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나아가 관세 등 정부의 정책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비판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글로벌 인력관리컨설팅업체 ECA인터내셔널 조사 결과를 인용해 올해 외국인 생활비가 가장 비싼 도시는 뉴욕이었다고 보도했다. 이 업체는 매년 통화가치, 임대료 등 생활비를 기준으로 ECA 지수를 책정해 ‘외국인에게 가장 비싼 도시’를 선정한다. 올해 서울은 일본 도쿄를 제치고 9위를 차지했다.

실제 서울 물가는 도쿄와 비교했을 때도 큰 차이가 났다. 글로벌 물가 통계 사이트인 넘베오에 따르면 서울의 식료품 물가는 도쿄보다 평균 34%가량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품목별로 살펴보면 빵(500g)의 경우 서울은 4128원, 도쿄는 1994원으로 가격이 두 배가량 차이가 났다. 쌀(1㎏) 가격도 서울(4780원)이 도쿄(3777원)보다 21% 높았다. 소고기, 계란, 상추 등 다른 식료품 가격도 서울이 도쿄보다 두 배 이상 비쌌다. 한국의 우유 가격(1L)도 2.06달러(6위)로 지난해 같은 시기(1.86달러·12위)보다 올랐다.

주요 외식업체의 물가도 서울이 평균 13.1% 더 비쌌다. 전 세계 맥도날드 매장에서 팔리는 빅맥 가격을 보면 한국은 5200원, 일본은 약 4098원으로 한국이 더 비싸다. 스타벅스 카페라떼 한잔 값을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의류 가격도 마찬가지였다. 서울의 청바지 한 벌 가격은 평균 8만1912원으로 도쿄(4만2531원)보다 두 배 가까이 비쌌다. 남성용 구두 한 켤레 가격도 서울은 평균 16만6982원이었지만 도쿄는 8만6122원에 불과했다.

일본 도쿄의 세븐일레븐 편의점. 사진=안세진 기자

이같은 물가는 실제 소비자들 사이 더 큰 체감을 불러일으켰다. 서울에서 생활 중인 곽모(33)씨는 “스타벅스, 맥도날드 등 글로벌 프랜차이즈 가격을 보면 서울이 항상 제일 비싼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며 “아무래도 원재료비와 인건비 등이 연동돼 이같은 가격 차이가 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도쿄에서 유학 중인 김모(26)씨는 “서울에 있을 때는 비슷한 수준의 국가들의 물가가 다 이런줄 알았다. 특히 일본의 경우 한국보다 물가가 더 비싸다는 얘기를 어릴 때부터 들어왔었는데 실제 와보니 전혀 다르더라”며 “과일 정도를 제외하곤 거의 모든 생활물가가 한국이 비싼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같은 물가차이의 원인을 ‘유통구조’에서 찾았다. 일본의 경우 버블경제가 끝나고 ‘잃어버린 20년’을 겪어오면서 이른바 소비자 중심의 ‘가성비’ 시장이 인기 있어졌다는 설명이다. 실제 당시 성장한 ‘가성비’ 기업으로 패션업계 유니클로, 생활용품업계 100엔샵을 포함해 중고제품 산업 등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의 경우 아직까지 공급자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며 “일본 경제도 과거엔 공급자 중심이었지만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장기불황을 겪으면서 소비자 중심으로 시장의 판이 새로 짜여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다고 제품의 질이 떨어지진 않았다”며 “과거 높은 수준의 생활을 경험해본 국민 특성상 질 좋은 제품에 대한 수요는 여전했고, 기업 입장에선 제품의 가격과 질을 동시에 가겨가야만 했다”고 덧붙였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시장은 기본적으로 과점구조다. 그렇다보니까 이같은 물가 이슈가 있을 때 1위 업체가 가격인상을 하면 2, 3위 기업들도 쉽게 올린다”며 “소비자는 가격을 선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농수산물 공급자들과 기업들은 힘을 모아 협회나 단체를 만들어 자신들의 이익만을 목적으로 정부에 목소리를 내지만 소비자들은 이에 대항하기 쉽지 않다”며 “소비자단체가 있지만 이 과점 구조를 깨기엔 역부족”이라고 덧붙였다.

사진=안세진 기자

이 교수는 근원물가를 잡아야 한다는 정부의 기조와 관세 정책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근원물가는 계절적 요인이나 일시적 충격을 제외한 기조적인 흐름을 파악할 때 쓰는 물가지수다. 농산물은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아 가격 변동성이 크다. 국제 유가도 지정학적 이슈에 따라 가격이 자주 바뀐다. 이런 변수를 제거한 물가 흐름을 보여준다.

이 교수는 “정부는 근원물가가 잡히면 인플레이션이 잡힌다고 하지만 지금 한국 소비자가 고통 받는 이유는 근원물가에서 빠져있는 농수축산물과 에너지”라며 “문제의 본질을 잘못 짚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관세를 낮추거나 해서 질 좋은 제품들이 국내 들어와야 새로운 경쟁이 생길 텐데 이익집단들의 저항이 원체 심할뿐더러 수입제품이 들어오더라도 수입업자들이 폭리를 취하는 이상한 구조”라고 꼬집었다.

기업들도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고물가로 소비자들의 지갑이 쉽게 열리지 않다보니 기업 입장에선 ‘유통비를 어떻게 하면 낮출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고민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내년도 유통가의 가장 큰 이슈는 아무래도 ‘물류’가 될 것”이라며 “물가가 너무 올라 당장 먹고 사는 일이 최우선이 된 상황에서는 ‘어떻게 하면 상품가격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물류비를 낮출까’가 기업들의 가장 큰 고민이다”라고 말했다.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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