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에서 '최악'은 막는다…네타냐후도 무시 못하는 이 국제법

유지혜 2023. 10. 20.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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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명 가까운 희생자를 낸 가자지구 알아흘리 아랍 병원 폭발 참상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전쟁 양상뿐 아니라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에도 중대기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아랍권의 반발로 중재역에 타격을 받으면서도 이스라엘과의 연대에 방점을 찍었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을 설득해 가자지구에서 이집트로 이어지는 라파 통로 개방, 가자지구 남부 인도주의구역 설정 등 가자지구 인도적 위기에 최소한의 숨통을 텄다.

17일(현지시간) 알아흘리 아랍 병원 폭발 뒤 부상당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들이 알샤이파 병원에서 치료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AP=연합뉴스

하마스의 기습 공격 이후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고 강조해 온 바이든은 18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를 찾아 한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 이스라엘은 민주주의 국가이며, 여러분은 테러리스트의 규칙에 따라 살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법치주의를 지키며 살고 있으며, 분쟁이 일어나면 전쟁법(law of wars)을 지킵니다. "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지지하는 그가 이처럼 과잉대응을 경계하는 것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인도적 조치를 압박하는 것도 법적 근거가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그러면서 바이든은 “분노를 느끼더라도 분노에 잠식돼선 안 된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은 분노에 휩싸였고, 정의를 얻었지만, 실수도 저질렀다”고 강조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이 대테러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포로 학대, 사실상의 고문 허용 등 전쟁법에 어긋나는 불법 행위들을 염두에 둔 듯한 발언이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를 찾았다. UPI=연합뉴스

문명을 잊은 듯한 야만적 행위들이 자행되는 전장에서 공허한 외침처럼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최선’을 만들지는 못해도 ‘최악’은 막아설 수 있는 희망의 근거가 되는 게 전쟁법, 즉 국제인도법이라는 게 국제법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8일(현지시간)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국제법에 도전하는 방법’ 제하의 기사에서 “(국제인도법의 근거인) 제네바 협약이 설정한 경계는 이미 심각하게 넘어섰지만, 이는 여전히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민간인 살상 용인하는 슬픈 법


국제인도법으로 불리는 전쟁법은 말 그대로 무력분쟁을 전제로 한 법 개념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민간인 살상도 허용한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뒤 체결된 제네바 협약은 끝을 알 수 없는 인류의 잔혹성을 목격한 데서 비롯된 충격과 반성을 기반으로 하며, 어떤 경우에도 지켜져야 하는 최소한의 인도적 원칙을 담고 있다. 여기서 핵심은 ‘구분의 원칙’과 ‘비례성의 원칙’이다.

구분의 원칙은 말 그대로 군사적 표적과 민간인을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네바 협약은 네 개의 협약과 두 개의 의정서를 포괄적으로 칭하는데, 이 중 제1의정서는 “모든 민간인은 공격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특정한 군사목표물을 표적으로 하지 않는 공격”은 제네바 협약이 금지하는 ‘무차별 공격’에 해당한다.

이스라엘방위군(IDF)이 전쟁 개시 뒤 하마스 관련 타깃만 식별해 공습하고 있다고 강조하는 것도 이런 구분의 원칙을 의식한 조치로 보인다. 실제 이스라엘군은 연대급 이상에는 군 변호사를 두고 지휘관에 타깃에 대해 조언하는 역할을 맡긴다고 한다.

17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내 알아흘리 아랍병원 폭발 뒤 찍힌 항공사진.로이터=연합뉴스

국제인도법에서 비례성의 원칙은 ‘상대방이 로켓 한 발로 공격하면 우리도 로켓 한 발로 응수한다’는 식의 개념이 아니다. ‘예상되는 민간의 피해’가 ‘얻을 수 있는 군사적 이익’에 비례하는지 아닌지를 보는 것이다. 제1의정서는 “우발적인 민간인 생명의 손실, 상해 등을 야기할 우려가 있는 공격으로서, 소기의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군사적 이익보다 과도한 공격”을 금지한다.

즉, 적의 핵심 군사시설이 민가에 둘러싸여 있는 경우처럼 공격을 통해 얻는 군사적 이익이 그만큼 크다면 민간인 100명이 죽어도 전쟁법에 부합하는 것일 수 있고, 군사적 이익이 크지 않은데 공격을 감행했다면 민간인 1명이 죽어도 전쟁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는 뜻이다.


‘결백하지 않은 민간인’도 보호해야


사실 일반적으로 쓰이는 것과 달리 제네바 협약에는 ‘결백한 민간인’이나 ‘무고한 민간인’ 같은 개념도 명확히 등장하지 않는다.

‘전시에 있어서의 민간인 보호’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제4협약은 “연령, 종교, 성별, 정치적 의견에 따르는 불리한 차별 없이” 민간인을 보호하도록 규정한다. 직접 총을 들고 적대행위에 가담하지 않는 이상은 하마스를 지지하는 가자지구 주민도 그저 보호의 대상인 민간인에 속하는 셈이다.

팔레스타인 구조대가 가자지구 내에서 이스라엘 공습으로 다친 이들을 구하기 위한 구조 활동을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특히 제1의정서에는 “어떤 사람이 민간인인지 아닌지가 의심스러운 경우에는 민간인으로 간주한다”고 돼 있다. 또 다쳤거나 항복의 의사를 밝혀 전의를 잃은 적군조차도 보호의 대상에 포함된다.

하지만 “하마스는 가자지구의 무고한 가족을 인간 방패로 삼아 사령부, 무기, 통신 터널을 주거 지역에 설치하는 등 무고한 사람들을 이용한다”는 바이든의 지적(18일 텔아비브 연설)처럼 가자지구 내에서는 민간인과 군사 표적 간 구분이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임박한 이스라엘의 지상전에서 법이 가하는 제한이 명확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바이든이 네타냐후에 “나는 이스라엘의 친구로서 어려운 질문들(tough questions)을 던졌다”고 한 것(바이든 X 계정)도 이런 상황에서 가자지구 민간인의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 등을 강구하라고 요구했다는 뜻으로 읽힌다.

지난 7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무장대원들이 크파르 아자 키부츠에서 인질로 잡은 이스라엘 민간인을 가자 지구로 옮기고 있다. AP=연합뉴스

극우 강경파인 네타냐후라 해도 국제인도법을 정면으로 어기는 것은 정치적 부담이 크다. 국제적 여론은 물론이고 국제인도법의 ‘중대한 위반’은 국제형사재판소(ICC)가 다루는 전쟁범죄에 해당할 수도 있다.


북한이 ‘하마스식 남침’한다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북한의 기습 남침에 대한 우려도 커지는 가운데 이런 국제인도법 준수 문제는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닐 수 있다. 국제인도법은 무력 분쟁이 시작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그 이유가 정당한지와 관계없이 분쟁에 관여하는 모든 당사국에 의무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조선중앙TV가 2016년 12월 11일에 공개한 북한군 제525군부대(총참모부 작전국) 직속 특수작전대대의 청와대 타격 훈련모습. 당시 영상에는 특작부대원이 패러글라이딩으로 침투하는 모습이 담겼다. 연합뉴스

예를 들어 북한이 하마스처럼 패러글라이더를 이용해 특수부대원들을 남한에 침투시켜 경기도 파주나 연천 등 접경지역에 거주하는 한국민들을 살상하고 수백명을 인질로 납치했다고 해서 우리 군이 전투기를 띄워 평양을 초토화한다면 이는 국제법의 중대한 위반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 유엔사 교전 규칙은 ‘비례 대응’을 따르게 돼 있지만, 우리 군 내부적으로는 몇 배로 응징하는 ‘충분성의 원칙’도 설정하고 있다고 한다. 새로 취임한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적의 도발에 ‘즉시, 강력히, 끝까지 응징’할 것을 강조하며 현장 지휘관의 재량권을 존중한다는 방침을 수차례 밝힌 가운데 이와 관련한 국제법적 검토도 사전에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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