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무인점포 절도범 양산 사회
십대들 사이에서 점포 터는 게
‘놀이’처럼 유행하고 있어
아이의 범죄자 전락도 문제지만
점주 피해도 크고, 범인검거와
수사에 경찰력 허비도 막대해
점주는 무인경비 강화하고
아이들에 대한 훈육도 긴요
방치 시 큰 사회문제 될 우려
옛 어르신들 말 중에 귀에 딱지가 앉은 말이 경찰서와 법원은 무조건 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고 치거나 송사에 휘말려서 경찰서나 법원 들락거리다 보면 신세 망치기 십상이니 애초부터 착하게 살라는 뜻일 테다. 시간이 지나 생각해도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특히 법 집행이 엄격해지는 추세이고, 화해나 용서보다는 고소·고발이 앞서는 요즘 세태에 비춰보면 더더욱 새겨들을 말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요즘 사흘돌이로 들리는 소식이 무인점포 관련 범죄 뉴스다. 무인으로 운영되는 상점에서 아이스크림이나 과자, 인형, 식품을 훔치는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물건을 산 뒤 카드 결제를 하는 것처럼 시늉하다가 그냥 들고 나오는 경우나 아예 상점 안의 동전교환기를 부수고 돈을 훔치기도 한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무인점포 절도는 6018건이 발생해 3609명이 검거됐다. 이는 무인점포 범죄를 처음 집계하기 시작한 2021년에 비해 단 1년 만에 2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창업하기 쉽고 관리비용도 적게 들어간다는 이유로 무인점포가 급증세인 점을 감안하면 올해 말에 나올 범죄 통계는 더 기가 막힐 것이다.
범죄는 대다수가 10대에 의해 발생한다. 돈을 훔치는 것 같은 과감한 범죄는 10대 후반이나 20대가 저지르지만, 10~14세의 형사책임 능력이 없어 처벌을 받지 않는 촉법소년들의 범행도 부지기수다. 훔치는 물건이 과자나 아이스크림 같은 군것질이다 보니 죄의식 없이 일종의 ‘놀이’처럼 범죄가 유행하고 있다.
이 범죄가 얼마나 급증세인지는 포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무인점포 절도’를 검색하면 이 분야 전문 변호사들의 법률상담 광고가 쏟아진다. 훔친 아이들 부모를 위한 수사 대응 요령이나 점주를 응대하는 방안을 상담해주겠다는 변호사부터 가게를 털린 주인이 범인을 잡기 위해 효과적으로 수사를 의뢰하고 절도범 또는 그 부모를 대할 때 어떻게 하면 좋은지에 대한 법률서비스까지 다양하다. 어떤 사례에는 차라리 몇 천원, 몇 만원어치 털리고 아이 부모와 거액의 합의를 보는 걸 반기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물건을 훔치면 말이 촉법소년이지 나이랑 상관없이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하고, 소년원은 안 가더라도 법원 등에 넘겨져 보호처분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학교나 이웃에 알려져 불량학생으로 낙인 찍히기 마련이다. 어떤 점주들은 훔친 아이들 얼굴을 점포 입구에 붙여 사적 처벌 논란이 일기도 했다. 무엇보다 자녀들이 절도죄로 경찰서와 법원을 들락거리면 온 집안의 평화가 깨질 수밖에 없다. 범죄자로 전락하는 아이들도 문제지만 점주들의 피해도 막대하고, 절도범을 잡는 데 동원되는 경찰력 손실 또한 만만치 않다.
상황이 이 정도이면 한시바삐 모든 주체가 무인가게 범죄를 막기 위해 바짝 나서야 한다. 우선은 무인점포 측의 경비 시스템이 더 강화돼야 한다. 이용자가 QR코드 등 신분을 인증하고 점포에 출입할 수 있게 하는 장치를 설치하면 범죄를 줄일 수 있지만, 비용도 문제이거니와 손님의 출입 편의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설치를 꺼리는 점주가 적지 않다고 한다. CCTV도 움직임을 포착해 감시할 수 있는 회전형 CCTV와 같은 고성능 기기를 설치할 필요가 있다. 경비강화 장치 비용 지원 같은 대책도 모색해봐야 한다. 그 외 다른 효과적인 방안이 없는지 정부나 경찰, 점포들이 묘안을 더 짜내야 할 것이다.
얼마 전 미국에서 뜨거웠던 이슈가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현대·기아차 절도를 둘러싼 책임소재 논쟁이었다. 뉴욕타임스가 현대·기아차의 도난방지 장치가 허술해 절도를 조장한 것이라는 비판 칼럼을 게재하자 ‘훔치는 사람 잘못이지 그게 왜 제조사 탓이냐’는 반론이 거세게 일었다. 이런 반론처럼 무인점포가 절도에 매우 취약한 게 사실이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훔치는 사람의 잘못이 더 크다. 청소년들에게 무인점포 절도에 대한 경각심을 확실히 심어줘야 한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아이스크림, 과자 같은 절도가 결코 놀이가 아니며 바늘도둑이 소도둑 될 수 있다는 걸 제대로 훈육해야 한다. 무엇보다 아무리 작은 절도라도 엄청난 후과가 뒤따른다는 걸 각인시켜야 한다. 과거에 사행성 게임 ‘바다 이야기’가 소리소문 없이 퍼져 전국적으로 문제가 됐던 것처럼 지금같이 무인점포 범죄를 방치해 둔다면 나중에 막대한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올지 모른다.
손병호 편집국 부국장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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