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운수 좋은 날

강창욱,산업2부 2023. 10. 20.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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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이른 아침 차를 몰고 지방에 가던 중 고속도로에서 대형 화물차와 접촉사고가 났다.

한눈을 판 사이 내 차가 슬그머니 우측 차선을 넘었고, 그쪽에서 앞서가던 화물차 트레일러 뒷바퀴 옆면을 툭 치고 튕겨 나왔다.

주행보조 기능을 켠 상태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화물차가 내 쪽으로 바짝 붙어서 벌어진 일인가 했는데 나중에 블랙박스 녹화영상을 보니 그 차는 제 차로를 묵묵히 달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화물차 충돌 당시 아내가 그쪽 자리에 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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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욱 산업2부 차장


지난 주말 이른 아침 차를 몰고 지방에 가던 중 고속도로에서 대형 화물차와 접촉사고가 났다. 한눈을 판 사이 내 차가 슬그머니 우측 차선을 넘었고, 그쪽에서 앞서가던 화물차 트레일러 뒷바퀴 옆면을 툭 치고 튕겨 나왔다. 주행보조 기능을 켠 상태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화물차가 내 쪽으로 바짝 붙어서 벌어진 일인가 했는데 나중에 블랙박스 녹화영상을 보니 그 차는 제 차로를 묵묵히 달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내가 봐도 내 잘못이었다.

이날은 아내가 뛰는 사내 여자풋살팀이 대회에 참가하는 날이었다. 화물차 충돌 당시 아내가 그쪽 자리에 타고 있었다. 평소 운전은 8할을 아내가 맡는데 이날은 “내가 몰 테니 눈을 붙이라”고 하고는 경기장이 아니라 천국으로 데려갈 뻔했던 것이다. 잠깐 닿은 수준이라고는 해도 웬만한 승용차 높이와 맞먹는 타이어에 쓸렸으니 차체가 아주 멀쩡할 수는 없었지만 시속 100㎞ 가까운 속도로 달리며 화물차에 ‘어깨빵’을 한 것 치고는 천만다행으로 두 사람 다 아무 탈이 없었다. 쿵 하는 소리와 진동에 놀라 잠을 깬 게 전부였다.

만신창이가 된 건 정작 다른 이들이다. 아내 팀 선수들은 치열하게 볼을 다투다 수차례 잔디를 굴렀다. 예선 세 경기에 이은 16강전에선 하필 다른 대회 우승 경력이 있는 강팀과 붙었는데 경기 초반 이쪽 선수가 악 소리와 함께 주저앉았다. 심판이 휘슬을 불지 않아 부상자를 필드 한가운데 방치한 채로 경기가 계속됐다. 상대 팀이 쇄도하는 상황에서 이쪽 선수들은 볼을 쫓으면서도 쓰러진 동료 걱정에 자꾸 시선이 흔들렸다. 이렇게 주의력까지 흐트러지면서 정신없이 골을 먹었다.

참패였다. 네 경기 중 한 경기도 이기지 못했고, 한 골도 넣지 못했다. 지난해 7월 창단 이래 친선경기만 하다 처음 참가한 외부 대회였다. 그간 다른 대회에도 여러 번 지원했지만 번번이 뽑히지 못하다가 처음으로 ‘○○컵’이란 이름의 대회에 출전한 것이었다. 앞서 경기 시작을 기다리던 그들의 얼굴엔 설렘과 긴장, 희열 같은 감정이 피어 있었다. 우승도 아닌 1승을 목표로 10여명이 새벽부터 먼 길을 달려온 날이었다. 마지막 경기에서 쓰러진 선수는 감독에게 업혀서 나왔다. 한 동료가 필사적으로 전화를 돌린 끝에 영업 중인 정형외과를 간신히 찾아냈다(토요일 오후였다). 다른 동료가 부축하러 같이 갔는데 병원에서 나올 때는 두 사람 다 다리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인대 완파’ 판정을 받았고, 다른 한 사람은 종아리뼈가 네 동강 나 있었다.

날씨는 짓궂었다. 파란 하늘에 해가 쨍쨍하게 떠 있는데 경기장(옥상층) 위로는 폭우가 쏟아지는 건 뭔가. 아스팔트 바닥이 물바다가 되면서 팀별로 쉬라고 쳐놓은 천막 아래 돗자리와 그 위에 놓인 가방이며 옷들이 흠뻑 젖었다. 어떤 팀은 아래층 대형마트에서 카트를 가져와 짐을 싣고 좁은 실내에 옹기종기 모여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비는 경기 재개 직전 그쳤지만 이미 사방이 난장판이었고 물먹은 잔디는 선수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서울로 돌아가기 전 빙 둘러앉은 순댓국집에서 눈물보가 연이어 터졌다. 아쉬워서 울고, 분해서 울었다. 울 자격도 없다는 자책과 그래도 잘했다는 격려, 이날을 기억하자는 제안이 오갔다. 운이니 하는 것을 믿지 않지만 나는 그날의 운을 우리 부부가 고속도로에서 전부 당겨다 쓴 걸로 치자고 했다. 속상함을 덜어주려고 한 말이었는데 실제로 그런 셈이었다. 달리는 화물차에 달려들고도 짓밟히지 않은 사실은 생각할수록 감사한 일이다. 졌다고 함께 화내고 아쉬워하고, 위로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날은 모두에게 엉망인 날이 아니라 정말 운수가 좋은 날이었다.

강창욱 산업2부 차장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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