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남은 것에서 힘을 찾다
심리에 좌우돼… 내 방 여행
통해서도 아름다움 발견해
자신의 침실을 여행하고, 그 이야기를 적어 ‘내 침실 여행’이란 책을 낸 스물일곱 살의 프랑스인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알랭 드 보통 작가 덕분이다. 1790년 드 메스트르는 여행에서 얻는 즐거움은 여행의 목적지보다 여행하는 심리에 좌우된다고 생각했다. 이 여행의 심리를 사는 곳에 적용할 수 있다면 어떤 도시나 밀림만큼이나 흥미로울 수 있겠다는 통찰에서 출발해 책을 썼다. 알랭 드 보통은 드 메스트르의 책 이야기를 전제로, 여행하는 심리란 수용성이 제일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겸손한 마음으로 새로운 장소에 다가가는 것, 어떤 것이 재미있고 어떤 것이 재미없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 기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눈여겨볼 것이 없는 사소한 것에 감탄사를 연발하고 카메라를 들이대는 여행객이 낯설 수 있다. 익숙하지 않은 자잘한 것들 속에서 풍부한 의미를 찾아내는 여행의 심리는 그런 것이다.
나는 지금 내 방 여행을 시도하고 있다. 보름 전 끝낸 포르투갈 여행의 여운이 꽤나 강해서 몸살을 앓다가 마음을 바꾸었다. 내 방을 여행하자. 익숙한 침대와 책장, 컴퓨터와 화장대, 옷장이 있는 평범한 공간에서 감탄을 자아낼 흥미로운 것이 있지 않을까.
포르투갈의 리스본 여행은 특별했다. 책과 영화를 통해 접한 리스본을 여러 번 다녀온 느낌으로 떠났다. ‘낡은 노란 전차가 땡땡거리며 다니고, 다 쓰러져가는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골목에서 낮부터 술을 한잔하는 리스본의 삶’을 묘사한 책을 읽고 땡땡, 다닥다닥 같은 부사가 썩 마음에 와닿지 않았지만, 그림 벽화가 아름다운 골목길과 작은 전차에 대한 그리움이 생겼다. 세 명의 출판인이 오랜 준비 끝에 리스본에 도착했을 때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지붕과 벽화, 길 바닥의 색감이 뛰어난 도시였다.
무엇보다 현지 사람들이 소박하고 친절했다. 구글맵이 잘 일러주지 못하는 골목길에서 헤매는 우리를 붙들고 해당 목적지에 데려다준 노인의 미소는 천사의 것과 같았다. 그림 타일 벽화 박물관인 ‘아줄레주박물관’에서는 또 얼마나 놀랐던가. 여행객이 박물관이나 대중교통을 편리하게 사용하도록 만든 리스본카드란 게 있다. 우리 셋은 각자 카드를 잘 보관하려고 노력했는데 아줄레주박물관 앞에서 내 카드만 사라진 것을 알아챘다. 입장 티켓을 나만 따로 구입해야만 했다.
“세 친구 중 당신만 리스본카드를 잃었군요. 속상한 당신을 위해 이 티켓은 선물입니다”라며 5유로 입장권을 무료로 주었다. 이게 웬일인가. 그에게 이런 권한이 있는 줄은 모르겠으나 누가 봐도 카드를 잃은 게 분명한 나를 위로하는 그 마음은 리스본을 통째로 내 안에 다정한 도시로 들어앉혔다. 돌아와서 포르투갈 여행에 대해 묻는 사람에게 이 에피소드를 들려줄 때마다 놀라운 모양이었다. 사람이 먼저구나. 역시 친절함이 모든 걸 이긴다. 여행객에게 다정한 사람이 도시 인상을 정하는구나.
출판인들의 여행에 서점 방문이 빠질 수 없다. 1732년 문을 열어 세계 최초의 서점으로 이름난 ‘베르트랑’의 베스트셀러 코너엔 포르투갈 대표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의 시집이 놓여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90년이 다 돼가는데도 그 시적 정서는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있다. 오래된 것들과 새로운 친절. 굉장한 위용의 건축물을 압박감을 받지 않고 관람할 수 있는 여유는 결국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얻었다.
“풀의 광휘의 시간, 꽃의 영광의 시간을/ 다시 불러오지 못한들 어떠랴./ 우리는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뒤에 남은 것에서 힘을 찾으리라.” 알랭 드 보통의 책에 인용된 윌리엄 워즈워스의 ‘영생불멸의 노래’ 시구는 내 방 여행의 의미를 부여했다. 내 방 여행에서 오래된 시집들, 책 사이에서 이런 시구를 새롭게 발견한 것이다.
여행길에서 본 아름다움을 붙들고, 그것을 소유하는 방식은 무엇일까.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다. 리스본과 내 방의 여행을 통해 오래된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한 것을, 손에 잡히지 않는 아름다움을 이렇게 소유하기로 한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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