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너 이용훈 “‘투란도트’로 한국 오페라 데뷔는 신의 뜻 같다”

장지영 2023. 10. 20.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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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9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오페라 ‘투란도트’의 칼라프 왕자 역으로 출연
테너 이용훈은 오는 26~2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오페라 ‘투란도트’에 칼라프 왕자 역으로 출연한다. 이번 작품은 이용훈의 한국 오페라 데뷔 무대다. 세종문화회관

테너 이용훈(50)이 드디어 한국 오페라 무대에 데뷔한다. 오는 26~2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에서 칼라프 왕자 역으로 2차례 출연한다. 이용훈 명실공히 ‘월드 클래스’ 반열에 오른 성악가지만 국내에서 오페라 출연은 처음이다. 국내 무대 자체가 2016년 롯데콘서트홀의 송년음악회에서 잠깐 출연한 것이 전부다.

이용훈은 19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프로로 데뷔한 지 20년 가까이 됐는데 한국에서 한 번도 오페라 무대에 서지 못했다”면서 “스케줄이 딱 비는 상황에서 가족을 보려고 한국 방문 일정을 짰는데, 기적처럼 서울시오페라단의 ‘투란도트’ 일정과 맞았다. 주권자(신)의 힘에 의해 이 자리에 있는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가 ‘선교하는 테너’로 불릴 만큼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것은 유명하다.

이용훈은 서정적 음색과 힘 있는 목소리를 겸비한 ‘리리코 스핀토 테너’로서 세계 정상급 극장의 러브콜이 끊이지 않는 성악가다. 2007년 칠레 산티아고에서 오페라 ‘돈 카를로’로 데뷔한 이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런던 로열 오페라, 빈 슈타츠오퍼 등 세계 주요 극장의 주역으로 출연해 왔다. 그는 “해외에선 대개 3~4년 전에 캐스팅 제안을 하지만 한국은 아무리 빨라도 1년 전이다. 어떤 경우엔 ‘다음달에 할 수 있느냐’고 연락오지만 제 경우 몇 년 앞까지 수 년간 스케줄이 꽉 차 있는 상태다. 그렇게 거절하다보니 20년 가까이 됐다”고 토로했다.

이용훈은 당초 내년 8월 예술의전당이 기획한 오페라 ‘오텔로’로 국내 첫 무대를 예고했다. 예술의전당이 이용훈의 스케줄에 맞춰 공연 날짜를 잡았을 정도다. 하지만 올해 때마침 스케줄이 비었던 시기에 서울시오페라단의 ‘투란도트’와 연이 닿게 되면서 10개월 가량 한국 데뷔를 앞당기게 됐다. 그는 “박혜진 서울시오페라단장님을 비롯해 많은 분이 힘을 써주신 덕분”이라면서 “고국에서의 첫 오페라 무대에 기대가 크다”고 피력했다.

19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오페라 ‘투란도트’ 기자간담회에서 출연진들이 기념 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칼라프 역 이용훈, 류 역 서선영, 투란도트 역 이윤정, 티무르 역 양희준. 세종문화회관

그의 국내 오페라 데뷔작인 ‘투란도트’는 이탈리아 작곡가 푸치니의 유작으로 1926년 초연했다. 얼음같이 차가운 투란도트와 공주의 사랑을 쟁취하려는 칼라프 왕자의 이야기다. 푸치니는 칼라프를 대신해 희생하는 시녀 류의 죽음까지만 작곡한 상태에서 수술 후유증으로 타계했다. 칼라프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투란도트의 모습을 그린 지금의 결말은 푸치니의 후배인 작곡가 프랑코 알파노가 미완 부분을 마무리한 것이다. 국내 연극계 거장 손진책이 연출을 맡은 이번 공연에선 기존의 프로덕션과 달리 류의 희생을 깊이 되새기는 결말을 보여줄 예정이다.

이용훈은 그동안 ‘투란도트’를 110~120회 정도 공연했을 만큼 인연이 깊다. 최근에도 2021~2022 시즌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2022~2023 시즌 런던 로열오페라의 ‘투란도트’에서 칼라프 역을 맡아 호평을 받았었다. 다만 그가 출연한 ‘투란도트’는 대부분 전통적인 프로덕션이었기 때문에 이번 서울시오페라단의 레지테아터 연출이 새로운 편이다.

“제가 주로 무대에 섰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등 대형 극장의 경우엔 전통적인 프로덕션입니다. 정통 오페라를 기대하는 관객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재 유럽을 중심으로 레지테아터 연출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최근 제가 독일 드레스덴에서 출연한 ‘투란도트’도 한국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일부 장면을 차용하는 등 레지테아터 연출을 선보였는데, 큰 성공을 거뒀어요.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시도도 중요하지만 원작을 많이 변형하는 것은 원작자에 대한 리스펙트(존경)가 부족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한편 이용훈은 2014년부터 서울대 성악과 교수로 재직하다 최근 사임했다. 바쁜 해외 일정 때문에 학생을 온라인 수업으로 지도하는 것에 대해 미안함을 느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는 “학생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만 선생으로서 내 자질이 부족한 것을 느꼈다. 나 자신이 더 성숙하고 훈련돼야 한다는 생각에 사임했다”면서 “내가 더 나이가 들어 학생들과 경험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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