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수의 카운터어택] 축구 대통령
한국에 ‘축구 대통령’이 있다. 그는 프로축구 K리그 인천 유나이티드 소속 현역 선수다. 어릴 때 이름이 ‘김소중’이었는데, 할아버지가 “큰 게 낫겠다”며 지금 이름을 붙여줬다고 한다. 인천의 등 번호 50번, 공격수 김대중이다. 전직 대통령과 이름이 같아 얻은 별명이긴 하다. 여담으로 K리그에 정치인 동명이인 선수가 좀 있다. 김대중의 팀 동료 이준석, 경남FC 김종필과 이재명, 심지어 김천 상무에는 이름이 아예 ‘정치인’이라는 선수가 있다. 참, 수원FC에는 김영삼 코치도 있다.
별명이 아닌, 진짜 ‘축구 (선수 출신) 대통령’도 있다. 1990~2000년대 ‘우승 제조기’로 불리며 국제축구연맹(FIFA) 올해의 선수에도 뽑혔던 라이베리아의 조지 웨아다. 은퇴 후 정치인으로 변신한 그는 2017년 대선에 출마해 당선됐다. 라이베리아는 2000년대 긴 내전을 겪었고, 웨아는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룬 첫 대통령이었다. 몇 년 전 그의 당선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얼마나 살기 힘들면 축구선수를 대통령으로 뽑았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 마음이 생겼다. 절대 ‘살기 힘들어서’가 아니다. ‘그럴 만한 리더십’을 보여준 선수 때문이다. 손흥민.
8라운드를 마친 19일 현재, 손흥민의 소속팀 토트넘 홋스퍼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1위다. 사실 시즌을 앞두고 토트넘의 전망은 암담했다. 골잡이 해리 케인은 우승 트로피를 찾아 다른 팀으로 떠났다. 최근 세 시즌 간 5차례(대행 포함) 감독이 바뀐 팀에 또 새 감독(엔제 포스테코글루)이 왔는데, 심지어 EPL 경험도 없다. 몇몇 선수가 들고 났지만, 전력이 뚜렷하게 보강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새 감독이 손흥민을 주장으로 지명했다. 완장을 찬 그를 보며 불안했다. 하지만 웬걸. ‘경기장 안팎에서(on and off the pitch)’ 그는 이상적인 리더였고, 현재 팀 성적이 그 방증이다.
손흥민의 리더십과 그로 인해 팀이 거둔 성과를 전하는 동료 인터뷰와 전문가 분석은 차고 넘친다(못 믿겠다면 유튜브를 뒤져 보라). 그는 슬럼프에 빠진 한때 자신의 경쟁자(히샬리송)를 무대 앞으로 이끌고, 낯설고 불안할 법한 이적생(미키 판 더 펜)에게 용기를 주며, 어린 선수(파페 사르)를 어르고 달래 기량을 끌어내는가 하면, 결정적 실수를 한 선수(쿠티 로메로·이브 비수마)를 끌어안고, 부주장들(제임스 매디슨, 로메로)과 책임 및 권한을 적절히 나눴다.
인터뷰 직후 두 손으로 마이크를 내려놓는 등 상대를 존중하는 매너에, 미디어는 물론 다른 팀 팬까지도 “일류(class act)”라고 감탄한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국격이 급상승하는 것 같아 내가 다 우쭐해진다. ‘저런 축구 선수라면, 훗날 우리나라에도 축구 대통령이 나와도 좋겠다’는 마음이 생기는데, 혹시 나만 그런가.
장혜수 콘텐트제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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