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천의 컷 cut] 무릅쓰지 않고는 탁월함도 없다
“결말만 바꾸면 걸작이 될 수 있어.” 1970년대 한 영화감독이 촬영을 마친 영화를 다시 찍으려 한다. 제작사 회장은 “당신이 걸작을 왜 만드냐?”고 손사래를 친다. 주연배우들은 “다음 스케줄이 있다”고 발을 동동거린다. 당국은 “반체제 영화 아니냐”며 검열의 돋보기를 들이댄다. 과연 이틀 안에 촬영을 끝낼 수 있을까. 영화 ‘거미집’(감독 김지운) 이야기다.
영화 세트장에서 감독 김열(송강호)은 어떻게든 잘해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 자신도 피곤하고 힘들어 죽겠지만 배우들을 추어올리고 다독인다. “힘을 내보자.” “잘했고, 잘했는데 더 잘해봐.” 상대 여성 배우를 임신시켰다고 털어놓는 유부남 주연배우에겐 진심으로 부탁한다. “우리 영화도 좀 사랑해주라.”
그는 왜 이렇게까지 하면서 결말을 다시 찍으려는 걸까. “이걸 못 찍으면 평생 싸구려 감독이라 멸시받으며 고통 속에 살게 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거미가 싫다는 배우에게 왜 진짜 거미를 쓰느냐”는 물음에 그는 되묻는다. “한 번이라도 카메라 앞에서 진심이었던 적 있었냐?”고.
무엇이든 만들어본 사람은 안다. 무릅쓰지 않고는 탁월한 것이 나올 수 없다. “그 정도면 됐다”는 선(線)을 뛰어넘지 못하면 새로운 것이 생겨나지 않는다. 저지르고, 무리하고, 용을 쓸 때 토스터에서 식빵이 튀어나오듯 비로소 뭔가 다른 것이 출현한다. 그것은 영화든, 삶이든 다르지 않다.
‘거미집’은 직업적 열망에 대한 이야기다. 코로나 19에 이은 OTT의 공습 속에서 스크린을 지켜내겠다는 영화인의 자기 다짐이요, 존재 확인이다. 다른 직업인도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가치 아닐까. 우리 사회가 그 설렘과 떨림을 되찾는다면 많은 것이 달라지지 않을까. 세트장 화재로 배우와 스태프들이 정신없이 빠져나오는 순간에도 김열은 촬영기사에게 절박하게 외친다. “전부 다, 다 잘 찍혔지?”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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